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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올린 글 새가 없는 풍경에 이어지는 얘깁니다. 있어야 할 곳에 새가 없었으므로 당황했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다른 철새를 수소문했습니다.

 

순천만 습지의 흑두루미. 고창의 아름다운 석양을 아쉬워하며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흑두루미는 가능할까?’ 불안했지요.

 

순천의 한 모텔에서 잠을 설쳤습니다. 인근 나이트에서 나온 유흥객들 취기 섞인 말소리가 잠결에 들려왔습니다. 불편했던 잠은 다음날 일정의 불안감을 가중시키지요. 전날 꺾인 전의는 회복 기미가 없었습니다. 

 

순천만생태공원. 취재지원을 하는 직원분은 때마침 해외출장 중이었지요. 난감했습니다. 전망대 망원경으로 멀찌감치 앉아 있는 흑두루미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고맙게도 전망대에서 만난 명예습지안내인이 저를 대신 안내했습니다. 그는 순천만 습지의 기초생태조사와 자료수집 등의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논에 앉아 낙곡을 먹는 흑두루미는 너무 멀었습니다. 들고 간 망원렌즈로는 모자랐습니다. 새에 직접 다가갈 수도 없었습니다.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나 차량 출입이 멀리서부터 통제됐습니다.

 

안내인은 철새사진은 인내를 갖고 지켜봐야 된다며, 조바심에 독이 오른 제게 얘기했습니다. 11시경 혹시 독수리가 날아오면, 흑두루미떼가 일제히 날아오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독수리를. 

 

 

 

그때 방역차량이 들어왔습니다. 방역차량을 얻어 타면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하는 순간, 흑두루미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올랐습니다. “방역차량이 들어옵니다.” 정탐 담당 흑두루미가 무리에게 알린 모양입니다. 독수리가 아니라 방역차량이 군무를 유도한 것이지요. 정신없이 찍었습니다.

 

 

 

 

 

거리가 있어 점처럼 보였습니다. 하늘에 검은 점들이 찍혔습니다. 검은 점들의 군무. 저 배경이 석양이었으면... 석양에 대한 집착은 남았습니다. 안내인이 새들의 움직임을 보더니, 갯벌로 이동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흑두루미들이 날아가 버린 텅 빈 하늘에 이번엔 1500여마리의 가창오리들이 군무를 펼쳤습니다. 전날 물 먹인 것에 대한 위로일까요?

 

 

 

물때가 맞아 관광객들과 생태체험선을 탔고, 30분정도 순천만 물길을 둘러봤습니다. 갯벌로 날아와 쉬고 있는 흑두루미떼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전날 좌절이 없었다면 이날의 성취도 없었겠지요.

 

철새의 군무를 가까이서 처음 본다는 관광객들의 탄성에 덩달아 참 좋네요를 연발했더니, 철새의 종과 개체수를 체크하던 안내인이 가만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볼 땐 멋진 군무지만, 쟤네들한테는 그저 스트레스죠.”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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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맘때면 철새 사진을 한 번씩 찍습니다. 이왕이면 스케일이 크면 좋겠지요개인적으로 한 번도 찍지(성공하지) 못한 석양 속 가창오리의 군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해봤습니다. 수일 전 올라온 어느 블로그 영상에서 새들의 멋진 군무를 볼 수 있었지요. '그래 가창오리 한 번 찍어보자.'

 

영상 속의 장소인 전북 고창으로 향했습니다미세먼지에 황사가 더해져 제대로 보일까 걱정이 들더군요. 이 상태로 저물녘에 군무가 펼쳐진다면 가창오리떼가 미세먼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군무를 펼치고 있다고 설명을 쓰기로 했습니다.

 

오후 4가 못 돼 도착한 동림저수지는 바람이 불었고, 그래선지 걱정보다 하늘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석양은 더없이 좋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망원렌즈를 장착해 저수지 이곳저곳을 살펴봤습니다. 저물녘 주변의 빛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무를 펼쳐야 할 가창오리가 없었습니다. 곳곳에 작은 무리를 지어 있었지만 군무로 장관을 이룰 개체수는 아니었습니다. '왜 없지? 어디로 갔나?'

 

 

당황했습니다. 새가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새가 없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습니다. 지나가는 주민들에 물었더니, 군무를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물 위에 새카맣게 앉았다가 해질녘에 일제히 날아오르는 장관을 물가에 사는 주민들이 모를 리가 없지요. 뭐가 잘못됐나, 그제서 복기를 했습니다. 영상을 의심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날에 올라온 영상이지, 그날 찍었다는 어떤 설명도 없었던 것을 희미하게 기억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묻고 따지지도 않고 서둘러 고창으로 왔던 겁니다.

 

찍고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망연해져서 물을 바라보고 섰습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동안 산과 물 주변이 물들어가는 게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석양 위에 무수한 가상의 점들을 찍으며 까맣게 날아올라 군무를 펼치는 가창오리를 상상합니다. 눈앞 현실의 풍광에 공허한 셔터를 몇 차례 눌렀습니다보기 좋은 석양 위로 새 한 마리도 없는 풍경. 새는 없지만 평온하고 그래서 위안이 되는 풍경

 

생태사진은 인내가 미덕인데 조급해져 덤볐으니 경고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사진을 찍지 못해 무의미한 하루가 되었지만, 또 그런 이유로 의미를 갖게 된 날이라 할 수 있겠지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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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옥 쪼~옥 쪽쪽~

 

노들장애인야학을 떠올리면 환청처럼 따라붙는 소립니다. 11년 전인 2007년 취재한 야학은 서울 구의동 정립회관에 있었지요. 술 한 잔 생각나는 날, 학생과 교사들에게 10cm도 안 되는 술집의 문턱은 까마득한 벽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곳은 지하철 출입구 옆 포장마차. 그곳은 턱이 없던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단골이었지요. 사장님은 단골이 들어서자, 종이컵과 빨대를 재빨리 테이블 위에 세팅했습니다. 손이 굽어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종이컵 가득 부은 소주를 빨대로 빨았습니다. 그 속도와 구체적인 소리.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중증장애를 가진 이들 또한 '한 잔'의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그런 생각조차 없었으니까요. 경험해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지요. “~~.”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지만, 즐겁게만 추억할 수 없는 씁쓸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당시 노들야학은 정립회관 측에서 업무 공간 부족을 이유로 퇴거요청을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공부할 곳을 잃을 처지에 놓인 장애인들과 교사들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지요. 야학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 참에 접근성 좋은 새로운 공간을 기대하기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후 천막을 친 채 야학을 이어갔고, 2008년 마로니에공원 뒤편에 독자적인 교육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정수연씨, 2007

 

   정수연씨, 2018

 

처음 노들야학을 찾은 지 11년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그때 얼굴이 있을까. 두번 째 찾은 날, 당시 사진다큐 메인 사진의 주인공 정수연씨를 만났습니다.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수연씨의 뒷모습을 찍었었지요. 어떤 간절함이 배어나오는 사진이었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연씨의 몸을 고정한 커다란 휠체어는 여전히 수연씨의 어머니가 밀고 있었습니다. 나이보다 앳돼 보이는 수연씨에 비해 어머니는 지난 세월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 대한 또렷한 기억이 없으신 듯 했지요. “수연씨 저 기억하세요?” 그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짧은 소리를 몸을 흔들며 밀어냈습니다. 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요. 

 

    이영애씨, 2018

 

    이영애씨, 2007

 

또 한 명의 사진 속 주인공 이영애씨. 40대였던 그는 50대가 되었습니다. 35년 동안 집에만 있다 2002년 야학에 들어가 처음 한글을 배웠지요. 그러니까 야학에 17년을 다니고 있는 것이지요. "오래 다녀 좀 지겨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나오면 재밌고딱히 갈 데가 없으니까.” 그러고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눈 내리던 11년 전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수업 중 창밖으로 굵은 눈발이 날렸고 곧 쌓였습니다. 하굣길에 교사와 학생들이 눈싸움을 벌였지요. 그나마 두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는 이들만 가능했습니다. 조그만 몸의 영애씨는 휠체어에 누운 채 내리는 눈과 눈싸움을 하는 동료들을 큰 웃음으로 지켜봤었지요. 이후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긴 경사로에서 미끌어내리는 육중한 전동휠체어를 붙들고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1년 만에 기록한 노들야학의 모습입니다. 이제 다큐도 크게 한 바퀴를 돌아온 것 같습니다. 

 

▶▶ [포토다큐] 세상을 조금씩 바꿔 온 노들야학 25년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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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J선배와 사진다큐 회의를 했습니다. 보통 그렇지만 회의는 막연한 가운데 시작합니다. 막연함이야말로 회의의 조건인 셈이지요. 정동길의 어느 한적한 아지트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나눕니다. 적당한 조바심에 한숨도 더해 지곤합니다. 

 

막연함을 떨쳐내지 못한 채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며 회의 장소를 나서다 배롱나무 낙엽 앞에 멈췄습니다. 낙엽을 주웠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특유의 모양과 다양한 색의 변화가 보였습니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뭉뚱그려 무슨 나무의 낙엽으로 불리기엔 이파리마다 개별성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회의 중에도 단풍으로 할 수 있는게 없을까’하는 얘기는 있었지만, 역시 막연했지요. 고개들고 걷다보면 그냥 밟고 지났을 것을, 회의에 한마디 나왔다고 낙엽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지요. ‘뭔가 될 것 같다.’

 

정동길을 걸으며 낙엽을 주웠습니다. 단풍과 은행나무 정도 아는 수준으로 말이지요. 줍고, 찍고, 묻고, 찾아가며 이파리가 떨어져 나온 나무의 이름을 적어넣었습니다. 벚꽃, 라일락처럼 절정의 꽃에만 주목했던 걸 반성하게 되더군요. 가을낙엽에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쓸쓸함이 있고, 흔히 말하는 삶의 여러 지점들과 만난다는 것도 새삼 새겼습니다. 낙엽이 어쩌면 나무의 절정일지도 모르지요.  

 

 

 

낙엽을 한 움큼 주워들고 바닥을 보며 걷는 중년 남자 둘을 지나는 이들이 힐끔거렸습니다. ‘뭐하려고 저럴까싶었겠지요. ‘다큐하겠지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더이상 낙엽을 주울 일이 없어진 직장인들이 기억 속 낙엽 줍던 어느 날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여섯 종의 낙엽을 사무실로 들고 들어와 신문지 위에 펼쳐놓았습니다. 이름을 비교하며 순서대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지요. 신문 위에 놓인 낙엽도 그림이 꽤 좋았습니다.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놀라운 건 낙엽을 이고 있는 지면에 서울식물원기사가 딱. 다큐의 필연성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

 

다큐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내내 낙엽은 신문지 위에서 말라갔습니다. 사무실 통로에 놓인 낙엽을 지나가며 본 선후배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왜 가져다 놓았는지?’ ‘낙엽이 어떤 다큐로 나올지?’ 이런 것도 이번 다큐에 의미를 보탰습니다. 낙엽 뒤에 플래시를 비춰 색과 모양이 더 도드라지게 한 뒤 접사렌즈를 이용해 하나씩 찍었습니다.

 

 

J선배는 다큐 글에서 말라가는 낙엽을 연탄불 위의 오징어같은 감각적 표현을 구사하기도 했지요. 가까이서 지켜본 자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겠지요. ㅎㅎ '이제 치워야지' 했는데 J선배는 편집된 지면을 미리 출력해 낙엽 위에 붙여놓았습니다. ‘지나며 보던 낙엽이 이런 다큐가 되었습니다라는 것이지요.

 

좀 과장해 이번 다큐는 "설치미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평가합니다. ^^ 동료들과 과정을 공유한 것도 즐거움이었고요. 

 

 

[포토다큐] 정동길에 가을이 떨어져내렸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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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김의정씨(가명)는 홀로 사는 50대 남성입니다. 그는 가난하고 아픕니다. 이틀을 함께 보냈습니다. 다친 다리에 통증을 느끼면 12개의 알약을 털어 넣었습니다. ‘식후 30이라 써 있는데 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 했지요. 애초에 ‘50대 고독사가 많다는 뉴스에서 시작한 다큐였습니다. 고독사를 찍을 수 없어, ‘고독사 위험군에 속하는 대상으로 섭외를 했습니다.

 

혼자 밥 먹는 모습을 찍고 싶었습니다. “평소 어떻게 드시냐?” 물었더니, “뭐 대충 고추장에 비벼서 먹는다고 했습니다. 밑반찬도 없이 말이지요. 취재를 마무리할 무렵, 그가 쌀을 불려 밥을 지었습니다. ‘마지막 사진 컷이 되겠구나.’ 그는 반쯤 남은 카레 가루를 들어보더니 야채를 사왔습니다. 10500원을 썼습니다. 그에겐 가볍지 않은 지출이었습니다. 과거 중국집 주방장의 솜씨로 뚝딱 카레를 완성했습니다.

 

사실, 평소대로 반찬 없이 고추장에 비빈 밥을 먹는 모습이 혼자 사는 병들고 가난한 남성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제 마음을 모르는 그는 오늘은 제대로 먹는 날이라고 했지요. 좀 더 극적인 걸 바라는 건 사진기자의 경험에서 비롯한 버릇입니다. 아쉬웠지만, 홀로 먹는 카레덮밥도 차선은 되겠구나했지요.

 

 

밥을 두 그릇을 퍼서 카레를 떠서 부었습니다. 그리고 세탁기 위에 밥상을 차렸습니다. 혼자 먹는 밥이 핵심인 사진인데, 두 그릇이 놓였으니 잠시 난감해졌습니다. 한 그릇을 잠깐 치우고 찍을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두 그릇의 밥. 세탁기 앞에 선 채로 후다닥 먹는 저녁이지만 어쩌면 그가 가장 바라는 식사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마주보고 얘기하며 먹는 밥. 며칠 지나고 보니, 한 그릇보다 두 그릇이 놓인 사진이 더 깊은 쓸쓸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큐사진 캡션에는 한 그릇은 기자를 위한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에 개입하지 않았음으로 개입하게 된 그런 사진이 되었습니다. 그날 카레는 이틀 동안 말벗이 된 한 사진기자를 위한 특식이었던 겁니다.

 

▶[포토다큐] 외로울 때면 크게 외쳐요, 나 여기 있다고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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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제가 사는 집 가까이에 백사마을이 있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이사 와서 자주 다녔습니다. 끊어진 듯 연결되는 골목을 무작정 따라 걷는 게 좋았습니다. 골목이 주는 묘한 위안이 좋더군요. 미로 같은 골목을 뛰며 놀던 어릴 적 추억이 소환되곤 했습니다.

 

 

13년 전 포토르포라는 기획면에 사진과 글을 실었습니다. ‘달동네 골목골목 꿈이 익는다는 제목으로 나간 기삽니다. 고단한 삶이 드러나는 곳이지만 골목마다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꿈을 읽으려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습니다. “중계동 산104번지에는 여느 해바라기보다 고개를 더 길게 빼고 있는 해바라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동네의 바라기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심은 꿈이 아닐까.” 좀 오그라들지요?

 

최근 백사마을 재개발에 관한 기사가 여기저기서 보였습니다. 가까이 살아서 눈에 더 잘 띄는 모양입니다. 그동안 마을에 빈집이 엄청 늘었다는 건 오가며 봐서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 놀던 구멍가게가 사라졌다는 것도 이미 알고 아쉬워했었지요. 문득 구멍가게 앞 평상에서 딱지놀이 하던 아이들은 어디로 떠나갔을까?’ 궁금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로 시작하는 다큐를 한 번 해보자 마음먹게 됐습니다.

 

 

 

 

13년 전 찍었던 구멍가게, 골목, 야경사진을 놓고 같은 자리에서 되도록 비슷한 앵글로 사진을 찍어보려 했습니다. 떠난 사람들, 사람이 떠난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3년 전과 현재를 나란히 보여주는 편집도 염두에 뒀었지요.

 

 

다큐를 하며 가난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말하는 것에 조심해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사진과 글이 깊지 못하고 언저리를 배회하다 만 것 같은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변명 같지만)

 

가난해도 정답던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으로 2018년 백사마을이 지난 6일 포토다큐면에 게재됐습니다. 온라인으로 기사가 나가고 곧 댓글이 하나 붙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읽은 댓글인데 부끄러웠습니다.

 

가난해도 정답다?
강윤중씨 당신이 가난을 알아?
실제 가난한 것이 얼마나 비통한지를...
바보네.”

 

기사 내에 가난해도 정답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제목으로 뽑은 표현이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던 이들이 흔히 쓰는 상투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섬세하지 못했습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는 것은 늘 부담입니다.  

 

▶▶포토다큐-13년 만에 다시 찾은 백사마을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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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추석을 앞두고 신안군 안좌도 오동리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왜 하필 그곳에 갔을까, 궁금해 하는 분들이 주변에 서너 명 있더군요. ^^ 오동리 마을은 사진기자 ㅂ선배가 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그 선배의 소개로 마을 이장님과 통화하고 다큐길에 오르게 된 것이지요.

 

수년 전 다큐하러 어느 농촌을 찾았다가 사기꾼으로 의심을 산 적이 있습니다. 이거다 싶은 사진을 못찍어 다양하게라도 찍으려다보니 긴 시간이 필요했지요. 종일 옆에서 이것저것 묻고 사진 찍고 하다보니 ‘이 사람 뭐지?’ 했던 것이지요. 기자라고 다시 신분증을 내밀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안전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사람을 보증으로 내세웠던 것이지요.

 

안좌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선배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좀 누추해도 우리집 가서 자면 된다. 울 엄니께는 얘기했어. 엄니가 요즘 공공근로 나가셔서 아침 드시는 시간이 좀 빠르기도 하고... 그래도 손님인데 반찬도 없다고 하시길래, 그냥 아들이라고 생각하시고 식사하실 때 수저랑 밥 한 그릇만 더 놓고 드시라고 했으니... 찬 없고 그래도 이해하시길

 

 

ㅂ선배의 엄니, 김순례 어머님과 밥상을 놓고 마주 앉았습니다.

 

내 집이다 생각허고, 어려워 말고.”

나름 서먹한 가운데 예의를 갖추려하자 즉시 말씀하셨지요.

 

찬 없어도 맛나게 묵어라고 하셨지만, 평소 집에서 먹던 반찬보다 많았습니다. 어머님은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이것저것 차리셨던 겁니다. 어머님은 밥을 먹는 동안에 문득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던졌습니다.

 

둘이 묵으이 맛나네.”

 

 

5남매 키워 모두 뭍으로 내보내고, 대부분의 끼니를 혼자 차려서 드셨을 테지요. 문득 던진 그 말을 곱씹다가 먹먹해졌습니다. 평소 김치와 나물 두어 가지쯤 놓고 드셨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낫을 챙겨 공공근로를 나서면서도 제게 점심 꼭 챙겨먹으라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지요.

 

목포로 나오는 배에서 어머님의 밥상을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상에 계란찜이 올라왔습니다. 일찍 일터로 나가는 바쁜 아침에 계란찜은 확실히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삼겹살과 동그랑땡도 번갈아 밥상을 차지했지요. 선배가 좋아하던 찬이었겠다 싶었습니다.

 

마을 회관에서 만난 어르신이 말씀하셨지요. 맛있게 묵어야제. 그래야 (밥상 차린 사람이) 안 미안허제

맛있게 잘 먹어보여 드렸어야 했는데 깨작거리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석에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자식, 손주들과 함께 밥상에 둘러앉으셨겠지요. 그 넉넉한 미소와 털털한 웃음이 그려집니다. 연휴 끝나고 다시 밥상 앞에 홀로 앉으실 때 참 허전하고 적적하시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섬을 떠나기 두어 시간 전 기사를 마감하고 있는데 일 나가신 어머님이 집전화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찬 없으니 계란후라이라도 해묵어~”

 

어머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둘이 묵으이 맛나네.”

이 세상의 못난 자식들을 민망하게 하는 말입니다.

 

 

 

[포토다큐] 세월만큼 굽은 허리, 펼 틈 없는 어머니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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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펫로스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반려동물의 부재(죽음 또는 가출)’ 정도로 짐작했습니다만, 그리 간단한 게 아니더군요. ‘펫로스증후군이 흔한 병리적 현상이란 걸 알게 됐지요. 개인적으로 개나 고양이를 좋아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키울 계획도 없어 애초에 제 관심 영역으로 들어올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펫로스기사와 관련된 사진을 찍기 위해 병들어 입원했거나 죽음을 앞둔 반려동물을 찍기 위해 분당의 한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주인이 있는 반려동물을 함부로 찍을 수 있을까싶었지요. 병원장이 취재에 앞서 주의사항을 말할 때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전이든 사후든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사진을 찍고 쓸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막상 사진을 찍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 속으로 투덜대지요.세상이 이리 변했나.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병원을 둘러보다 CT실에서 검사를 받고 있는 대형견을 발견했습니다. '이거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지 의료진에 물었으나 단박에 거절당했습니다. 기계 속으로 들어가는 반려견의 머리(얼굴)가 보이지 않았기에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했던 거죠.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 의료진의 표정에서 설득의 의지는 꺾였습니다.

 

응급중환자의료센터에는 병들어 입원한 크고 작은 반려견들이 층층이 쌓인 병실 케이지에 들어있었습니다. ‘중환자라는 말이 반려동물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생경했습니다. 대상이 동물일 뿐 의료기기나 약제, 의료진 모두 사람에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단 찍고 쓸 사진에 한해 허락을 받으면 되겠다 생각습니다. 

 

막상 입원한 반려견의 모습을 찍다보니 병든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가 좀 그랬습니다. 기사의 취지에 가장 가까운 사진일 텐데도 말이지요. ‘동물권을 생각하는 시대에 꼭 그런 사진을 써야했나라는 반응을 살짝 의식했습니다. 쉽게 허락하지 않을 보호자의 반응도 짐작했습니다. 병원 측의 난처한 입장도 있고 말이지요.

 

  

그럼 모자이크 처리를 해볼까?’ 동물의 얼굴 모자이크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림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얼굴이나 눈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을 본 적이 없고,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저 재밌는 상상이었다며 넘겨버렸지요.

 

  + 펫로스 이미지 컷 위해 동원된 동물병원 반려견 정우.

 

결국 이래저래 불편하지 않은 사진게재를 위해 연출된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동물병원에서 키우는 반려견 동건이와 정우가 모델이 되었습니다. 멋진 배우의 이름을 딴 개들이 이미지 사진을 위해 연기(?)를 한 것이지요. 미안했지만 최선이었습니다.    

 

   +병원 반려견 동건이.

 

새삼스럽지만, 반려동물 사진 찍기도 조심스러워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동물 초상권에 대한 논의가 떠들썩하게 일어날 지도 모르겠습니다. 궁금해서 동물 초상권을 검색하니, <동물 초상권까지 보호하는 영국>이라는 한 시사주간지 기사가 시선을 붙듭니다. 한 남성이 말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다가 징역 3년 선고받았고, 영국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피해 말 사진의 눈 부분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는 겁니다.

 

그저 먼 나라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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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사진다큐는 소재를 찾고 회의하고 결정하고 연락하고 일정을 잡으면서 시작합니다. 일단 취재원을 만나 얘기 나누고 카메라를 들면 웬만하면 다른 소재로 갈아타기는 어렵습니다. 대체로 어렵게 취재를 허락한 취재원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요. 마감시간이 제법 남았는데도 이미 급해진 마음에 이건 아니다. 다른 거 찾자는 결단은 좀처럼 내리지 못합니다.

 

이번 다큐도 그랬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를 찍어보자고 시작했지만 머릿속에 미리 그렸던 그런 휴가는 없었습니다. 달리 전개되는 상황과 애초의 의도 사이에서 수시로 갈등했습니다. 어정쩡한 상태로 이정도면 됐다’며 버릇처럼 합리화를 했지요. 

 

결국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는 바다로 놀러가는 하루짜리 캠프로 대체됐고, 피하고 싶었던 평범한 기념사진이 메인사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나절도 안 되는 해수욕장 나들이로 지면을 채울 수 없어 다음날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의 공간을 찾았습니다. 전날과 상반된 분위기를 끌어들이는 것이었지요. 좀 억지다 싶었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었습니다. 

 

명색이 사진다큐인데 사진이 상황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글을 위한 사진을 찍어 모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처음 기획한 그대로 결과물이 나오면 그것은 실패한 기획이라고 하더군요. 예상대로 되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며,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기대보다 좋은 결과물을 얻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예민한 촉수로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찾아지는 것일 텐데 다큐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런 노력이 없다는 얘기겠지요.

 

머리가 굳어졌습니다. 더 알려고 하지 않고 경험으로 아는 수준에서 소재를 찾고 사진을 찍고 있는 겁니다.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니라 후퇴하는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연차에 쌓인 경험으로 부딪쳐 볼 것도 피해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부서 막내였던 20029장애인이동권으로 생애 첫 다큐를 했습니다.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지면에 다큐가 게재된 날 아침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편집국 오전 회의가 끝난 시간, 열차에서 당시 부장이셨던 노재덕 선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큐 좋았어. 수고했어.” 3년차 때의 기억이 지금을 더 부끄럽게 합니다. 

 

대체로 경험(연차)이라는 건 내가 안다라고 착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안다고 생각할 때 고민과 질문은 사라집니다. 고민과 질문 없는 다큐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포토다큐] 이주노동자의 여름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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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날씨사진은 사진기자들이 일상적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보통 날씨스케치라 부릅니다.

 

스케치라 하여 다소 가볍게 들리지만 지면 내에서는 비중인 큰 사진거리입니다. 날씨는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관심사 중 하나지요. 대게 날씨스케치는 덥다’ ‘춥다처럼 몸으로 느끼는 것을 시각화하거나, ‘’ ‘같이 눈에 보이는 것에 적절한 의미를 담아 표현합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염도 아주 더운 날씨이지만 기록적이라는 수식이 붙으며 사건과 사고의 영역입니다. 재난이지요. 폭염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은 폭염스케치라는 취재명으로 사진부기자의 주요 일정이 되었습니다.

 

보통 일간지에서 더위스케치는 늦봄이면 시작됩니다. 광화문광장 분수대나 여의도 물빛광장이 대체로 그 시작입니다.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 한강다리 그늘 속 시민들, 한강공원 수영장·계곡·해수욕장 개장과 절정의 인파, 강과 호수의 녹조 등을 번갈아 씁니다. 더위가 채 가시기 전 입추즈음해서 가을의 단서를 서둘러 찾습니다. 더위가 아직 남아있을 때 성큼 다가온 가을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게재되곤 합니다.

 

관측 이래 최고의 폭염이라는 이 대형사건은 예년과 달리 매일 스케치에 대한 강박을 불렀습니다. 유례없이 길어지는 폭염 앞에서, 기존 스케치 정보에 새로운 걸 보태지만 소재는 고갈되지요. “더 이상 찍을 게 없다는 푸념을 선후배들의 SNS에서 종종 읽습니다. 늦봄부터 시작한 더위스케치 아니겠습니까. 상상력과 창의력이 한계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더위에 상상과 창의가 제 구실을 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최근 새로운 폭염사진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히트상품처럼 등장한 열화상카메라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기자들 사이에 장비에 대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공유됩니다. “사진 좋더라. 그 열화상카메라 어디서, 얼마주고 샀니?”라는 물음에 몰라라고 할 야박한 기자는 없지요. 폭염에 더운 모습이나,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모습 대신 더위 그 자체, 뜨거움의 정도를 색으로 보여주려는 시도가 일단은 신선해 보입니다. 산업용으로 쓰이던 장비가 언론사 사진부의 기본 장비로 편입된 것이지요.

 

 

   +열화상사진 폭염취재 전담 이준헌 기자

 

불볕더위에 에어컨 바람 쐬기도 어려운 취약 계층과 땡볕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을 떠올리면 짜증도 호사라는 생각이 드는 날들입니다. 사진기자들 역시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는 긴급재난문자를 들여다보고도 가장 더운 시간, 가장 뜨거운 곳에서 축축한 셔터를 누릅니다. 먹고사니즘의 엄숙함을 새삼 느낍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로의 말조차 약발이 떨어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염 잘 견디시길 바랍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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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달 전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후배 사진기자가 술기운(?)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형님 사진은 늘 그대로에요.”

이 새끼 주글래?”

 

웃음 띤 채 말하기에 장난처럼 받았지요. 늦은 밤 형님,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그저 웃자고 했던 말이 아니었음을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친하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평소 느낌을 말한 것일 테지요.

 

며칠 전엔 한 친구가 제 사진에는 저만의 색이 있다고 하더군요. ‘너다운 사진’ ‘너니까 찍는 사진같은 평가도 덧붙었습니다. 과찬이지요. ‘내 사진에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고마웠고 한편 부끄러웠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칭찬과 돌직구가 엉켰습니다. 익숙한 시선과 몸에 새겨진 버릇이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반복적으로 찍어댔겠지요. 고민하는 척(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하다, “이쯤하자며 누구나 찍는 고만큼에 타협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상반돼 보이는 평가가 결국 다르지 않은 말이라 느껴집니다. 앞의 평을 이어붙이면 늘지 않아 머물러 있는 사진이 나의 색이다라는 서글픈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사진을 좀 더 까다롭게 읽는 사진기자나 사진가, 소위 업자들의 말이 더 아프게 남습니다.

 

 

나아지지 않는 사진에 대해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다. 생각만큼 되지도 않는 사진을 반복해 찍으며 짜증을 냅니다. 어느 날 조바심과 낙담 사이에서 카메라를 바꿔들다가 셔터가 그냥 눌렸습니다. 사진 마감을 하다 그렇게 눌린 사진에 시선이 멎었습니다. 버릴 사진을 버리지 못하고 남겼습니다. 찍은 것도 찍지 않은 것도 아니며, 어디 쓸데도 없는 사진에 묘한 끌림이 있었지요. 이 말도 안 되는 사진이 답답함을 토닥입니다. 이 맥락 없는 위로는 뭡니까?  

 

 

사진이 안 돼서 몹시 짜증이 났던 2018년 폭염 속 어느 날의 기록으로 남깁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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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지난 주 마감했던 <포토다큐>는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번식연구에 대한 것이었지요. 작년 가을 무렵 반달가슴곰 취재를 시도했다가 시기가 맞지 않아 다음을 기약했었습니다.

 

잊고 있던 반달곰을 다시 떠올린 건 지난 3월 취재했던 평창동계패럴림픽이었지요. 마스코트가 반달가슴곰 반다비였습니다. 뭐 이런 순간에 몇 달 후 지면을 어렴풋이 그려보기도 하지요. 마음을 굳힌 건 반달가슴곰 세계 최초 인공수정 출산 성공이라는 뉴스였습니다.

 

지난해 한 차례 취재시도, 패럴림픽 마스코트, 세계 첫 인공수정 출산 등 일련의 과정이 ‘거부할 수 없는' 계시로 다가왔습니다.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 반달곰 인공수정 연구진

 

반달곰 복원에 애쓰는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에 연락을 하고, 그날 밤 구례로 달려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암컷 반달곰 증식연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지요. 인공수정 연구라는 것이 연구진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 암컷 반달곰의 몸 상태에 달린 일이었습니다. '곰의 일'을 사람이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반달곰의 인공수정을 위한 발정을 기다렸습니다.

 

주말이 지나도록 발정 소식은 없었습니다. 가슴을 졸였습니다. 마감을 이틀 앞두고 다시 구례로 가서 곰의 상태를 지켜봤습니다. 여전히 인공수정을 할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열흘의 시간이면 충분할 거라 판단했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필연적취재라 운 좋게 인공수정 과정을 담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했습니다. 제 조바심으로 자연이 움직여 주리라 바랐던 건 오만이었지요.

 

계획대로 다큐가 진행되지도 않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지도 못했습니다. 마감 시간까지 연구진 옆에서 무엇인지 모를 극적인메인 사진을 기다리다 결국 포기하고 현장에서 마감을 했습니다. 

 

   +암컷 반달곰 발정상태의 질세포 색과 형태

 

지면 특성상 소재를 고를 때 사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똘똘한 반달곰 사진 한 장이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부터 꼬였습니다. 마취상태에서 혀를 길게 늘어뜨린 반달곰 사진을 메인 컷으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세포사진을 크게 쓰게 된 이유입니다.

 

사진다큐 하나 내놓으면 후련함과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뭘 놓쳤지?’ 하는 찜찜함이 며칠은 따라붙습니다. ‘게재된 다큐기사를 본 독자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싶기도 합니다. 밀린 방학숙제처럼 마감에 쫓겨 영혼 없이 때웠나(?) 싶어 돌아보게 됩니다.

 

[포토다큐] '인공수정 1호' 아기 반달곰은 동생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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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조금 열린 차창으로 케냐 초원의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이게 초원의 냄새겠지. 바람을 한껏 들이마셨다. 멀리 초원 끝에 걸린 구름과 그 사이에 내민 저물녘의 태양, 붉어지는 하늘색에 압도되었다. “참 좋다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일 예상치 못했던 일로 가슴을 졸였던 첫 일정이 저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마무리 되고 있다는 것에 나름 안도했다. 그때 운전하던 사이먼이 오른쪽을 가리켰다. 초원의 웃자란 나무사이로 야생 얼룩말 무리가 지나고 있었다. “우와~” 환호했다. ‘이건 아프리카의 축복이야.’

 

  +해질녘 케냐 초원

 

시야를 가리지 않는 초원 위로 펼쳐진 하늘은 가늠할 수 없이 넓었다. 어디쯤인지 저 먼 곳의 하늘은 맑았고 일행이 달리던 거친 길 위의 하늘은 구름이 짙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주위가 서둘러 어두워져갔다. 전날에 이어 다시 비를 머금은 진흙탕 길은 얼음판처럼 미끄러웠다. 핸들을 움직이는 사이먼의 손이 분주하고 불안했다. 길 앞쪽에 비스듬하게 길을 막은 채 멈춘 버스가 헛바퀴를 돌리고 있었고 몇몇 마사이 승객들이 버스를 밀었다.

 

해가 졌고 갈 길은 멀었다. 사이먼은 가로막은 버스와 길 옆 깊은 도랑 사이 공간을 통과하려차를 몰았다. 아슬아슬 지나던 차는 미끄러지며 버스와 척 달라붙었다. 두 차량을 떼어놓으려 사이먼이 엑셀을 밟았고 마사이 남성 서너 명이 차를 밀어냈다. 왼쪽 앞바퀴가 급기야 깊은 진창에 빠지고 말았다. 장정들 여럿이 달라붙어 차를 밀었지만, 흙탕물만 잔뜩 뒤집어썼다. 주위는 깜깜했고 빗발은 굵어졌다. 난감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조난을 당한 것이다.

 

                  +조난 지점

 

   +이날 세번째 빠진 차량

 

저물녘 하늘이 유난히 좋더니만아프리카의 축복 운운하며 까불었더니

 

헛바퀴를 돌리던 버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승객을 태운 뒤 유유히 떠났다. 안내와 통역을 하던 마사이 여성 셀리나가 “(버스 탔던) 마사이가 집에 가서 사고소식을 전하고 도울 방법을 찾을 것이라 했다. ‘버스는 이 험한 길을 따라 언제 도착할 것이며, 그들이 제대로 연락을 취해 우리를 구할 것인가.’ ‘연락을 취하면 또 얼마나 걸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막막했다. 불신과 불안이 가득 차올랐다.

 

비에 젖은 몸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이 밤을 여기서 꼬박 셀 수도 있겠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무엇보다 다음날 일정이 어그러질 거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셀리나는 친구가 가까운 마을의 트랙터 가이를 불렀다고 했다. ‘부를 것이라는 건 지, ‘불렀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아듣지 못해 시간을 두고 몇 번을 확인했다. 그저 트랙터 가이가 올 것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 수밖에. “가까운 마을이라고 했지만, 마사이의 화법에서 가깝다라는 거리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진짜 와주기는 할까.’

 

빗소리는 거칠었고 주위는 칠흑이다. 보기 좋던 초원도 어둠에 싸이자 그저 막막한 어둠일 뿐이었다. 사방으로 작은 빛도, 인가의 단서도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이 일었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철저하게 무기력했다.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서 길을 향해서 차량 앞 유리창에 걸쳐뒀다. 누구라도 이 불빛을 조난의 신호로 봐주길 바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휴대폰의 손전등을 길을 향해서 차량 앞 유리에 올려뒀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검은 밤이었다. 이날 진창에 세 번째 차량을 빠뜨린 기사 아저씨는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웃었다. 그러고는 하쿠나~마타~~(스와힐리어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뜻)”를 읊조리며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이 양반이 정말.’ 속 타는 출장자들의 마음도 모르고 유쾌하고 여유롭기 짝이 없는 안내자 셀리나는 차 안에서 콧노래까지 불렀다. ‘지금 노래가 나오나?’

 

   +두번째 빠진 진창에서 차를 밀어올린 뒤.

 

  +셀리나와 사이먼

 

셀리나는 휴대폰을 붙들고 친구와 현지어로 긴 통화를 했다.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겠지싶으면서도 통화중에 짓는 표정이나 목소리, 웃음으로 짐작했다. ‘너 잡담하고 있니?’ 긴 통화 끝에 차에서 내린 그녀가 제안했다. “트랙터 가이가 올 때까지 인근 마사이 집에 가 있자는 것. 인가를 추정할 만한 불빛도 흔적도 없는데 휴대폰 손전등을 밝힌 셀리나가 앞장섰다. “트랙터가 곧 온다면서 왜 가는가?” 격앙된 어조가 빠진 채 건조하게 영어로 던져진 질문은 그냥 묻혔다. ‘마사이 가정에서 하루를 묵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누군지도, 어딘지도 모르는 마사이 가정으로 무작정 찾아가는 것이었다. 길 같지 않은 길을 비추며 셀리나는 초원을 향해 걸었다. 불안과 의심으로 신경이 곤두섰지만 화를 낼 처지도 못됐다. 전적으로 그녀에게 의지할 수밖에.

 

  +마사이 가정 찾아가는 길

 

 마법처럼 마사이의 집이 나타났고, 셀리나가 가까운 이웃집처럼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수바~” 인사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마사이 가족이 일행을 맞아주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늘 해오던 것처럼 당연하게반겼다. 작고 낡은 TV가 틀어져 있었고, 벽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두어 줄 장식처럼 걸렸다. 작은 화롯불 앞에서 떨리던 몸을 녹였다. 긴장도 의심도 따라서 녹는 듯했다. 세계 어디서든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의 방문은 큰 구경거리다. 잠들지 않은 서너 명의 아이들이 방의 커튼을 젖히고 신기한 듯 내다봤다.

 

 딱히 할 말도 찾지 못한 채 작은 거실에 앉아있는 동안, 막막함 속에서도 이 마사이 가족의 환대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문 밖을 내다보고 있던 사이먼이 멀리서 트랙터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가만히 귀기울여보니 깊은 어둠 속, 먼 곳에서부터 희미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희망의 소리를 확인해서인지, 그 순간 마사이의 환대가 한층 더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셀리나는 밤에 불쑥 찾아든 낯선 사람들을 집 안으로 들이고 대접하는 마사이의 따뜻한 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진창에서 우리를 구해 줄 트랙터 가이는 몸을 사리지 않고 진흙탕에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 조난 차량에 사슬을 걸었다. 믿음직했고 눈물겹게 고마웠다. ‘뭐지?’ 지금 이 구원의 순간에 구원자와 사이먼의 표정이 어두웠다. 트랙터와 조난 차량에 연결할 쇠사슬 고리의 사이즈가 맞지 않았던 것. ‘결국 여기서 아침을 맞아야 하는가?’ 초면에 막중한 미션을 떠안은 두 파트너는 끙끙대며 차량 아래 어딘가에 고리를 고정했다.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끌었다. 차는 그대로 둔 채 쇠사슬만 떨어져 나갔다. ‘다시 한 번. 다시 쇠사슬만 끊어지듯 튕겨져 나갔다. ‘여기까지구나.’ 세 번째 시도. ‘진짜 마지막이다. 제발차량이 구덩이 가장자리를 밟으며 길 위로 겨우 올라섰다. 우리는 일제히 환호했다. 숙소인 나이로비로 갈 길은 멀고도 멀었다. 다시 진창길을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트랙터 가이가 나타났다.

 

 구조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했다. 트랙터 사나이의 마을에 다리가 부러진 한 남성을 차에 실어 병원으로 옮겨주는 것. 고통스러워하는 남성의 신음을 들으며 포장도로에 진입한 차량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이로비는 오른쪽인데내일 일정은 어찌하나.’ 나이로비로 가는 도로가 끊어졌을 거라는 얘기도 들렸다. ‘나록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길고 지친 하루를 내려놨다. 하루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되뇌자 허탈인 듯 안도인 듯 웃음이 새 나왔다. 2주 출장의 첫날 일정이었다.

 

'그래도 길에서 아침을 맞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막막한 사고와 극적인 도움의 손길.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쿠나~마타~~”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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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남북정상회담 이후 가진 포토다큐 회의에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는데 DMZ의 생태 어때요?”라 던졌습니다. “그거 좋네. 해봐라는 즉답이 왔고, 저는 바로 막막해졌습니다. 참 큰 말들이죠. ‘한반도의 긴장완화‘DMZ 생태’가 어떻게 연결되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DMZ 생태를 찍겠다는 건 함부로 할 말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취재가능성과 접근성을 고려않고 던졌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생태를 모르면서 쉽게 생태 운운하는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생각 끝에 생태의 자리를 고라니로 대체했습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보다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 하나로 승부를 걸자는 것이었습니다. 고라니 역시 비무장지대 생태의 주요한 구성 종이니까요.

 

공문을 넣고 군부대 협조를 받았습니다. 허가받은 시간은 대략 첫날 오후와 다음날 오전 서너 시간이었지요. 철책선 안쪽 물웅덩이를 주시했습니다. 그곳에는 고라니가 좋아하는 연잎이 가득했습니다. 물에 들어가거나 말거나는 순전히 고라니의 의지지요.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자연 앞에서 초조해하는 생명체는 오직 저 하나 뿐이었습니다.

 

고맙게도 고라니는 저의 마감을 위해 나타나주었습니다. 풀을 뜯고, 헤엄을 치고, 철조망을 바라보는 여러 고라니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마감을 하며 신문에 쓰려니 한 장이면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여러 장은 쓸데없는 부연, 구질구질한 변명 같았습니다. 인간에겐 수십 년 동안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이어진 공간에서 고라니는 세상 어디에 있을까 싶은 가장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었습니다.

 

다큐의 착안과 시작은 남북 정상들의 만남이었으나,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완전한 비핵화, 한반도 긴장완화, 정전선언 같이 수없이 쏟아졌던 단어를 쓰지 않고 글을 쓰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애초에 발제하며 고라니 빙의’ ‘고라니 시점으로 쓰자고 장난처럼 말했는데 실제 그리 되고 말았습니다.

 

다큐 글은 나는 고라니다라고 시작합니다. 난생 처음 동물이 되어 글을 썼습니다. 다소 유치하거나 부끄러울 수 있다는 것을 감수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진에는 딱 맞는 글이라고 내심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포토다큐] DMZ의 고라니 (2018.6.23 14면)

 

나는 고라니다. 풀숲에서 아침을 맞았다. 초여름 햇볕이 이른 아침의 찬 기운을 밀어냈다. 간밤에 함께 풀을 뜯던 녀석이 남쪽 물웅덩이에 ‘개연꽃’이 한창이라고 귀띔했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물웅덩이로 향하는 길은 늘 즐겁다. 이어지는 무더위에 물이 그립던 터였다. 거친 수풀을 헤치고 개활지를 만나면 겅중겅중 뛰었다. 인적이 없고, 천적도 드물어 살기 좋은 이곳은 남과 북으로 긴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65년 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정착해 살았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때 이후 아무도 철책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


북쪽 평강에서 남쪽의 철원까지 4㎞쯤 걸었을까. 더운 공기 사이로 물 냄새와 연꽃향이 훅 끼쳐 왔다. 덤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만치 물 위에 노란 개연꽃이 활짝 피었다. 주위를 살피며 다가갔다. 목을 축이고 발을 살짝 담갔다. 아 시원해. 연잎을 한 입 크게 물었다. 연한 이파리가 입 안에서 녹았다.

 

수영이나 한 번 해볼까. 이래봬도 나의 학명 ‘Hydropotes inermis’는 ‘물(Hydro-)을 좋아하는(-potes)’이라는 뜻이 들었다. 심지어 영어명은 ‘워터디어(water deer·물사슴)’다. 


이 여유가 참 좋다. “착착착” 철책 너머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누굴까. 군 초소 쪽에서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든 인간들이 나직한 음성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문득, 얼마 전까지 남쪽과 북쪽에서 경쟁하듯 들려오던 확성기의 소음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로로로록” “휘휘루루” “끼약” “뻐꾹” 확성기에 묻혔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또렷하다 못해 투명하게 느껴졌다.          

 

동물적 감각, ‘야생의 감’이라는 게 있다. 철책 밖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고 있구나. 며칠 전 철원평야를 날아온 철새의 말이다. “모내기 끝난 논에 한반도기가 펄럭이고 있더라.” 낙원의 평화와 아름다움 위로 대립과 적대의 긴장이 흐르던 이곳 ‘비무장지대’에도 변화의 기운이 전해지는 것 같다. 저 견고한 철책이 열릴 수 있을까. 바깥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대와 설렘 속에 내 가족과 이웃 야생종들의 걱정이 하나 생겼다. 우리 삶의 터전이 망가지지 않겠냐고.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인간이 그리 무정한 종은 아니라고 들었다. 어떤 변화에도 ‘공존’의 가치를 저버리지는 않을 게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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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서랍 속 외장하드를 꺼냈습니다. 목적을 가지고 꺼낸 게 아니라 꺼낸 다음 목적을 찾았습니다. ‘2010폴더를 열었습니다. 거기엔 ‘2010남아공월드컵이라는 하위 폴더가 들었습니다. 그때 사진을 보고 싶었던 겁니다.

 

사진을 넘겨보는 동안 당시 기억들이 불려나옵니다. 사진을 찍던 훈련장, 경기장, 도시와 이동하던 거리 등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 주변의 풍광들이 생각보다 또렷하게 그려졌습니다. 8년 전으로의 여행이었지요.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사진은 8년 전의 시간에서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려 놓았습니다. 재밌는 사진이었습니다. 8년 이라는 시간의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찍을 당시에는 그저 밋밋한 훈련사진이었는데 말이지요.

 

사진설명에는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2010남아공월드컵 나이지리아전이 열리는 더반에 입성한 20일, 선수들이 프린세스 마고고 경기장에서 헤딩패스를 이어가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돼있네요. 짐작하시겠지요? 사진 속 이영표, 박지성, 안정환 세 선수는 8년 후 각각 KBS, SBS, MBC의 2018러시아월드컵 해설위원이 되었습니다. (서 있는 순서가 시청률의 순일까요?)

 

 

당시 기분 좋은 첫 승 상대, 그리스와의 경기 선발출전 선수들 기념사진도 흐른 시간을 느끼게 합니다. 저 선수들 중 러시아월드컵엔 기성용만 뛰고 있네요. 차두리는 코치로 대표팀에 합류했지요. 가깝고도 가깝지 않은 과거가 된 사진은 세월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공평하게 흐른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당시엔 30대였군요. ㅎㅎㅎ

 

 

남아공월드컵은 우리 대표팀이 해외에서 16’에 오른 대회였지요. 그때 저는 역사적인 월드컵을 기록하는 사진기자로서 16강 진출의 기쁨이 작지 않았습니다만, 한 경기 추가로 출장이 닷새 이상 늘어나 투덜거리기도 했었지요. 지쳤고 기쁨 이전에 일단 긴장되는 일이다 보니...

 

하지만,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제 인생샷’이라고 할 만한 사진을 건지게 됩니다. 블로그에 한 번 썼던 사진인데 다시 보니 또 그 현장의 리얼한 영상이 되살아나는군요. 후반전, 우루과이 공격수 수아레스가 굵은 빗줄기 속에서 역전골이자 결승골을 터뜨린 뒤 골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입니다. 흥분한 수아레스가 경기장을 돌아 A보드 광고판을 뛰어넘는 순간, 사진을 찍던 제가 그의 발아래에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외신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돼 전 세계에 타전됐습니다. '한국의 8강행 좌절'이라는 묘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악동' 수아레스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활약이 대단하더군요. 어쨌든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비록 굴욕적일지언정 인상적인 제 기념사진을 남겨주었습니다. 저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월드컵 명장면'입니다.

 

4년 마다 한 번쯤 열어보는 외장하드 속 남아공월드컵 사진들. 4년 뒤에는 어떤 말을 걸어올까요.

 

러시아월드컵 우리 대표팀을 응원합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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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날이 덥습니다. 지난 주 취재차 수락산에 올랐다가 땀을 엄청 흘렸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서일까요.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다 문득 굴뚝 위에서 농성 중인 박준호씨를 떠올렸습니다. ‘굴뚝 위은 지금 얼마나 더울까, 좁은 공간에 달궈진 시멘트와 철제 난간은 얼마나 뜨거울까.’

 

작년 여름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공사현장에서 준호씨를 만났습니다. 취재하러 갔다가 일을 좀 거들면서 그와 두세 차례 작업을 했었지요.

 

당시 취재일기엔 이렇게 남아 있네요.

 

오늘 시마이~”하고 외친 박준호씨가 부루스타에 쥐포를 구웠다. “물보다 시원합니데이~”하면서 맥주 한 깡통을 내게 건넸다. 그는 내내 싱글벙글했다. “즐겁게 일하니까 힘든 줄도 모르겠다는 그다. 이 더위에, 무보수에도 말이다. 여전히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그에게 꿀잠은 그런 곳이었다. 이날 작업이 끝나자 박씨와 노순택 작가 등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농성장으로 향했다. (2017725)

 

   지난해 7월, '꿀잠' 공사현장의 준호씨.

 

파인텍 노동자 준호씨는 동료 홍기탁씨와 11월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높이의 굴뚝에 올랐습니다. 파인텍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노조와 약속한 고용승계, 단체협약 등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땅에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하늘감옥이라 부르는 곳에 스스로를 가뒀습니다. 그리고 200일이 지났습니다. 추운 겨울을 다 보내고 봄을 지나 세 번 째 계절을 맞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정지윤 기자 촬영

 

  굴뚝농성 200일,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촬영

 

농성 시작한 지 한 달을 넘어섰던 지난해 12, 송년호 사진을 찍으며 농성 1년이 될 때 어떤 사진기획물을 내 놓을까하는 잔인(?)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농성이 길어지리라 예상했습니다. ‘하늘감옥옥바라지를 하고 있는 동료 차광호씨가 앞서 408일 동안 펼쳤던 고공농성의 아픈 기록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노동자의 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저 굴뚝농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치는데 들어주는 이가 없습니다. 농성이 길어지고 다시 새로운 기록이 세워지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게 될까요. 미안하고 한편 무력감을 느낍니다.

 

준호씨는 저와 동갑입니다. 환경과 인연, 의지와 우연, 삶 앞에 펼쳐진 수많은 선택이 같은 해 태어난 그와 제 삶을 굴뚝 위아래로 나누었습니다. ‘어쩌면 저 굴뚝에 내가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물론 용기는 없습니다 ㅠㅠ)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그 뜨거웠던 여름날, 준호씨가 땀을 비처럼 쏟고 있는 저에게 시원합니데이~”하고 건넨 차가운 맥주의 맛이 입 안에 머금은 듯 느껴집니다. 굴뚝농성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까요.

 

제가 준호씨에게 시원한 맥주 한 잔건넬 날이 서둘러 왔으면 좋겠습니다. 날이 참 덥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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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7년 전 게이(남성동성애자)를 소재로 사진다큐를 했습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얘기를 모아 4회에 걸쳐 부서 블로그에 취재기를 올렸습니다. 일간지 취재 시스템에서 제법 긴 시간을 들여 취재했고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습니다.

 

당시 블로그에 혐오의 표현과 종교적 교리로 반박하는 댓글이 몇 있었습니다. 그중 또렷이 기억에 남는 글은 당신, 게이지?”였지요내가 잘 써서 그랬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흘렀고 그때 인연은 이어졌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이고, 법과 제도로 인정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을 사진다큐로 다뤘습니다.

 

 

무지개집은 다양한 성적지향의 입주자들이 모여 사는 집입니다. “다큐가 되겠는지, 얼굴도 익힐 겸 간을 보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다 다소 차분해진 시간. 그 자리에서 동갑이라 말을 튼 한 친구가 저를 가만히 보다가 게이냐?”고 물었습니다. “난, 스트레이트(이성애자)”라고 하자, “왜 성소수자를 취재하느냐?”며 이어 물었지요.

 

좀 난감했습니다. 이미 취재 의도를 설명했는데 다시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지요. 언론은 소외받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를...”같은 틀에 박히고 고리타분한 얘기를 했습니다. 반응은 시큰둥했지요. 문득 생각했습니다. ‘약자’ ‘소수자라는 말도 거슬렸을까. ‘강자’ ‘다수자의 입장에서 너무 쉽게 던지는 단어가 아닌가 싶었지요.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적극 나서는 입주자들이지만, 불특정한 뉴스 이용자들에게 자신을 노출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매체를 통한 커밍아웃인 셈이지요. 우리사회의 혐오를 댓글로 마주하고 상처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그런 혐오에 대적해 싸워줄 인권감수성의 소유자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이 블로그를 통해 무지개집 입주자들의 용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누군가 저더러 성소수자(게이) 전문이라고도 하더군요. 1년에 한 번쯤 기획지면에 쓸까, 말까 한데 말이지요. ‘안다고 얘기하기엔 부끄럽고, 더 알려고 하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어설픈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저 보여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애자들이 공기처럼 누리는 권리를, 비이성애자들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성숙한 사회의 척도라 믿습니다.

 

7년 전 낯설었던 질문이 기억납니다.

왜 동성앱니까?”라 물었더니, 되물었습니다.

왜 이성애자인지 스스로 물어본 적 있나요?”라고 말이지요.

 

 

[포토다큐] 달라도 괜찮아요, 우리는 서로의 울타리...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 사람들

경향신문 5월26일자 15면

 

 지난 20일 ‘무지개집’ 입주자들이 1층 공동공간에 둘러앉았다. 전날 이사 온 입주자가 공용주방에 내놓은 독일제 주방용품과 방대한 1인 살림살이로 얘기는 시작됐다. 입주하게 된 사연들, 간밤의 꿈, 사랑과 이별, 선거와 투표, 집 보수공사 등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주위를 맴돌던 반려묘 ‘온돌이(‘굴러온 돌’을 줄임)’가 나른한 하품을 해대는 동안 시끌벅적 수다와 웃음 속에 밤이 깊어갔다. 


서울 망원동에 자리 잡은 ‘무지개집’은 성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다. 이 주거 기획에 참여한 전재우씨는 2011년부터 성소수자들의 공동체와 공간 그리고 주거 문제를 고민했다. “기존 집의 기능이 성소수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꿈꿀 수 있는 집이 필요했어요.”
 

전월셋집과 고시원을 전전하던 이들이 전월세금을 빼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전전긍긍하다 ‘주거문제를 공동이 해결하자’는 가치를 내세우는 ‘함께주택협동조합’을 만났다. 모두 조합에 가입하고 입주자격을 얻었다. 조합의 도움으로 사회투자기금 융자를 얻고, 부지를 찾아 집을 올렸다. 2016년 “안전한 곳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재밌게 살아보자”며 입주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 실험은 이제 만 2년을 넘어섰다.

 

현재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등의 성적 지향을 가진 13명의 사람들과 5마리의 반려묘가 함께 살고 있다. 전문직, 정당인, 예술가, 활동가, 취업준비생 등 직업도 다양하다. 나이는 20대에서 40대 후반까지. ‘생물학적’ 남녀 성비도 고려됐다. 지난 주말 성소수자가 아닌 비혼여성 영화인이 거주자 회의 끝에 ‘특혜(?)’로 입주했다. “잘 아는 분이라 모두 같이 살면 좋겠다고 하는데 비성소수자라 고민이었어요.” ‘킴(닉네임)’이 웃었다. 회의 결론은 이랬다. “비혼여성도 성소수자다!”      
 

공동체와 공간을 깊이 고려한 무지개집은 구조가 복잡하다. 1층 ‘흥다방’은 회의, 파티, 바자회, 소규모 전시회 등을 여는 공용공간이다. 2층은 1인 가구들이 같이 쓰는 거실, 주방, 화장실과 5개의 작은 방이 미로처럼 배치됐다. 3층은 커플 가구와 위기에 처한 성소수자가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쉼터 ‘홍인재’가, 4, 5층에는 2인 단독 세 가구와 공용세탁실이 있다. 누군가 집의 구조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아담하고 귀여우면서 답답하다.”

 

각기 다른 습관과 기대를 가진 이들이 어울려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집안 곳곳에 생활규칙과 청소당번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계단 및 공동청소와 쓰레기 수거, 외부인의 숙박, 세탁실과 공용공간 사용 등의 규칙을 세웠다. 그 외 필요사항은 입주자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썼다. 끝에 두 문장이 생활의 핵심이다. “시시때때 연중무휴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불편한 점이 발생할 경우에는 곧바로 소통한다. 각자 사생활을 존중하고 지켜준다.”  

 

무지개집 사람들은 서로에게 울타리였다. 입주자들은 ‘성장’ ‘안정감’ ‘디딤돌’ ‘자양분’ ‘도전’ ‘꿈’ ‘기회’ ‘가족’ 같은 단어로 공동체의 삶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맏형인 전재우씨는 “시간이 지나, 이 집을 거쳐 간 친구들이 여기 살면서 얻은 것을 재산으로 멋지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공동체’가 무지개빛 꿈과 희망을 함께 일궈가고 있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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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한인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편하고 안전한 차량렌트를 권했습니다. 10여 년 전 이곳 방글라데시에 와서 처음 오토릭샤(CNG)를 타던 날 사고가 나 그 이후 절대로 타지 않는다면서 말이지요. 오후에 잡혀있는 인터뷰를 앞두고 아침밥을 먹고 숙소를 나선 일행은 그냥 오토릭샤를 탔습니다. 여행지로는 좀처럼 추천되지 않는 다카라는 도시를 경험하기엔 가장 적절한 교통수단이었지요. 조그만 불편과 위험은 감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인터뷰 약속 장소인 다카국립대로 향했습니다. 서둘러 출발한 건 인근에 있는 방글라데시국립박물관 관람을 위해서였죠. 외국인이라 5배를 더 내고 들어가 신속하게 둘러봤습니다. 거리의 사람과 차량의 밀도가 공간을 인식하는 기준인 듯 전시물들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었지요. 식물부터 현대미술까지 모든 것이 망라돼 있었지요. 시인 타고르가 방글라데시인이라는 것에 놀랐고, 한국관이 따로 있는 게 신기했고, 세계적인 화가의 명작이 좀 어설프게 프린트된 채 걸려 있는 것이 의아했지요.

 

한 끼 때우려 다카대학 야외 카페테리아로 갔습니다. 햄버거세트를 먹기로 결정한 순간 돈을 달라는 아이가 달라붙었습니다. 경계심이 발동하고 그 집요함에 짜증이 났지요. 햄버거를 포기한 채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뒤 눈치를 챈 건, 여기 사람들은 돈을 달라는 이들에게 생각보다 쉽게 돈을 쥐어준다는 것이었지요. 구걸이 당당하고 주는 것도 인색하지 않아보였습니다. ‘다수가 가난한 나라에서 나름 나눔의 방식일까?’ 싶었지요.

 

결국 다카대 구내식당에 들어섰습니다. 20타카(260원쯤)의 저렴한 점심식사 메뉴는 오직 하나. 노란 밥에 작은 닭조각 하나가 허무하게 빠진 묽은 카레. “익스큐즈미, 두유헤브 포크 올 스푼?” 주방 사람들에게 참 낯선 질문이었습니다. 일단 학생들을 따라 손을 씻고, 잠시 머뭇거리다 카레를 밥 위에 흩뿌리고 손가락으로 밥을 이리저리 비벼 모았습니다. 따로 노는 밥풀을 힘주어 붙들고 입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절반은 흘리고 입 주위에 밥풀을 붙여가며 먹었습니다. 우릴 둘러싼 대학생들의 뭇 시선을 느꼈습니다. 큰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던 겁니다.

 

 

오후 2시 인터뷰 대상인 샤킬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기획 취재 출장지인 이곳 방글라데시에서 취재팀의 통역을 맡았던 분입니다. (경향신문이 곧 멋진 기획을 선보입니다!!) 16년간 한국에서 노동자로, 이주노조 활동가로 살았습니다.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지는 10년이 되었답니다. 사실 출장의 공식일정은 마무리됐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았던 취재기자가 전날 인터뷰(경향신문 55일자 보도)를 요청했던 것이지요.

 

인근 공원에서 샤킬씨의 인터뷰가 진행됐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독재반대 운동을 했고, 20대에 한국에 가서 노동자로 살다가 이주노조 운동에 뛰어들었지요. 2008MB정권 때 활동가에 대한 표적단속으로 다카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 40대 중반. 청춘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그와 내가 활동가와 사진기자로 어느 현장에서 마주치지 않았을까.' 왠지 한 번은 마주쳤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얘기에 어렴풋이 제 기억이 포개지는 부분이 있었지요. 이 글을 쓰다말고 회사 사진DB를 뒤졌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찾았습니다. 그와 저의 인연은 2007년 한국에서 시작되었지요.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다카적인거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이동할 때 샤킬 선생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털어 놓으니 정말 속이 시원합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가슴에 쌓아둔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 말에 미안했고, 조금 짠했습니다. ‘참 다행이다. 인터뷰를 할 수 있어서.’ 그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샤킬씨는 다음날 자신의 집으로 우릴 초대했습니다.

 

 

 

듣던 것보다 안전하고 차보다 매력적인 오토릭샤를 올라타고 샤킬씨의 집이 있는 남다카 주레인으로 갔지요. 낡은 상가건물 앞에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얼굴이 좀 더 하얗다는 이유(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로 일행은 벵갈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을 개념이 아니라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밀려서 오고가는 사람들과 꼬리를 문 각종 차량이 얽히고설켰고, 정지한 듯 거리를 메웠습니다. 진창길과 곳곳에 파인 물구덩이, 그 안에 떠다니는 쓰레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샤킬 선생이 남다카에서 진짜 방글라데시를 볼 수 있다고 한 것이 이런 거구나 했지요.

 

 

 

샤킬씨를 만나 다시 동네 CNG’ 올라탔습니다. 골목길을 한참 달렸습니다. 골목 곳곳에 물이 넘쳤습니다. 오토릭샤 바퀴 절반이 물에 잠긴 채 비릿한 냄새의 하수를 튕겼습니다. 어느 골목 끝에 초록과 노랑, 주황으로 채색된 그의 집은 골목 하수에 무거워졌던 이방인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샤킬씨의 아내 시에다가 차려준 점심상은 정성이 가득했고 입맛에 잘 맞았습니다. 그의 집 1층에는 이웃의 릭샤 운전사, 가사도우미 등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 수업이 한창이었지요. 그가 운영하는 기쁨공부방입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안녕하세요하고 반겨주었습니다. 옆에서 그가 뿌듯하고 넉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샤킬 선생은 인터뷰에서 다시 26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한국에 가지 않을 거라 했습니다. 고단했던 삶과 상처를 짐작했습니다. 40대 중반에 고국에 돌아와 뒤늦게 이룬 가정과 그로 인한 행복이 지난날을 더 아쉽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샤킬씨는 출국을 위해 북다카로 돌아가는 일행의 오토릭샤를 잡아주고 흥정까지 대신해 주었습니다. 릭샤가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정말 보고 싶어요." 그의 인터뷰 마지막 말은 함께 활동했고 또 도움을 주었던 한국인 동지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었지요. 옛 동료들과 가끔 찾았다던 "해운대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찍혀비자발급이 안 될 거라 했습니다

 

샤킬씨가 아내 시에다, 딸 이디다의 손을 잡고 해운대 백사장을 밟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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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앗살라말라이쿰

엉성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이 웃습니다. 수줍은 듯 혼잣말 같은 답인사가 돌아옵니다. 피부색과 옷차림이 다른 아저씨의 등장에 아이들의 호기심이 커졌습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비행기로 40분 거리의 라즈샤히주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빠져들었습니다. 크고 또렷한 눈에 시선을 뺏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요. 게다가 그 안에 궁금증이 잔뜩 들어앉았습니다. 카메라는 반사적으로 작동합니다. “! ! !”셔터 소리는 , 저 눈 좀 봐하는 감탄사처럼 울려 퍼졌지요.

 

 

 

꼬마들의 눈에 사진을 찍고 있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있지요. 때 묻지 않은 선한 눈에 사진 찍는 아저씨에 대한 느낌이 드러나는 것 같아 재밌습니다. 어쩌면 저를 통해 마을 밖, 나라 밖의 세상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요. 바깥세상을 향한 아주 작은 창이 열리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기획의도에 충실한 멋진 그림을 찍고 모아서 돌아가야 할 해외 출장의 강박과 긴장 속에서 아이들의 눈망울은 제가 찾은 휴식처요, 위안이었지요.

 

 

 

앞서 머물렀던 케냐에서 , 방글라데시에서는 아이들의 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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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이야기

검은 대륙 위를 달립니다.

 

끝이 어디쯤일까 싶은 녹색의 초원을 양쪽 날개인 듯 거느리고 길은 이어집니다. 길게 뻗은 2차선 아스팔트를 질주하고, 때론 몸이 튀어 오르는 비포장 길을 달렸습니다.

 

차창을 통해 바라보는 길에 끌렸습니다. 아니, 그 길을 딛고 선 사람들에 끌렸습니다. 어디로,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없는 막연한 걸음이 낯설고, 한편 그 고된 걸음이 짠했습니다.

 

지구 반대편,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나와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했던 삶들을 길 위에서 만났습니다. 스쳐 지났지만 내가 바라본 순간의 인연이 가볍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동시에 내 안의 탐욕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 낭만, 자유, 만남, 인연, 함께 같은 단어를 품고 있는 길 위에서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을 떠올리며 마음가는대로, 눈 가는대로 셔터를 눌러 케냐를 담았습니다.

 

 

 

 

 

 

 

 

 

 

 

 

 

 

 

 

 

 

 

 

 

20180413~20180420 케냐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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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