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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뻔 했나...'

‘그 순간을 그냥 지나쳤다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5일장을 취재했습니다. 여러 차례 찍었던 현장이지만, 그런 이유로 부담입니다. 보던 사진이 아닌 것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 추석은 좀 특별했습니다. 코로나로 고향방문을 자제해달라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었지요. ‘코로나 시대, 명절을 앞둔 5일장’이 취재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느낌은 알겠는데 사진으로 표현이 잘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예년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진에 그저 사진설명으로 우길 수밖에 없는 상황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지난달 28일 전남 구례군에서는 구례5일장이 열렸습니다. 새벽에 장터를 한 바퀴 돌고 숙소에 들어왔다가 다시 숙소를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취재차량이 숙소 앞 삼거리에서..

사진이야기 2020.10.03

10년 전 눈물사진 한 장이...

사진 한 장을 보며 10년 전 요맘때를 떠올립니다. 새삼스럽게 지금이 ‘2020년 6월’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기억을 더듬다 세월의 속도를 실감합니다. 사진은 10년 단위 같은 날 경향신문 기사를 살펴보는 모바일팀의 ‘오래 전 이날’이란 코너에 실렸습니다. 사진에는 짧은 머리의 청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상황을 몰랐다면 눈물을 닦아주고 싶을 만큼 처절하게 우는 모습입니다. 정대세. 북한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한 그는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10년 전 저는 남아공에 있었습니다. 월드컵 출장 중이었지요. 정대세의 눈물은 2010년 6월16일 요하네스버그에서 펼쳐진 조별경기 ‘북한-브라질’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인민 루니’ ‘인민 호날두’라 불리는 청년의 울음에는 월드컵 출전의 감동 이..

사진이야기 2020.06.23

'오월 어머니들'

일주일간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국내 출장치고는 길었습니다. 내근에서 잠시 벗어났습니다. 현장으로 갔다왔더니 이렇게 글이 남네요. 현장 없이는 이 블로그도 존재할 수 없는 겁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부서의 사진기획 회의가 열렸습니다. 저도 기획 아이템을 하나 냈습니다. 아이템을 낸 자가 취재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낸 자와 일하는 자가 따로인 경우도 드뭅니다. 출장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의지의 근거는 내근의 갑갑함이었습니다. 출장을 떠났습니다. 5월18일자에 한 면이 배정됐고, 무엇이 되었든 채워야했습니다. 내근을 벗어나는 자유도 잠시, 어찌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찾아듭니다. 그게 현장이지요. 오랜만에 경험하는 설렘 같은 긴장도 따라붙습니다. 정해진 일정은 5·18유족회 사무실을 찾..

사진이야기 2020.05.21

재갈을 물다

두 달이 지나간 얘기를 꺼냅니다. ‘왜 갑자기?’라고 물으신다면.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누가 고통을 많이 받는가, 누가 더 많이 아프고, 힘든가”를 물어야 한다는 김승섭 교수의 인터뷰 문장에서 한 번, 노동절을 지나면서 또 한 번 자연스럽게 떠오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진을 한 장 올립니다. 누군지도, 어디에 소속이 됐는지도 알 수 없는 두 인물의 사진입니다. 지난해 11월 지면에 게재된 사진이지만, 지금 이 블로그에 다시 쓰면서 ‘이제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 사진인가?’하고 묻게 됩니다. 무력한 물음이자, 나름의 시위입니다. 지난 2월 어느 날 두툼한 문서가 사진부장 책상 위에 놓인 것을 지나치듯 봤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진 강의를 한 적이 있는 부서장에게..

사진이야기 2020.05.04

에세이 출간 보고드려요

이 블로그에 한 번이라도 들어오셨던 분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책을 냈습니다. 지난 3일, 인쇄기의 온기가 남은 따끈한 책을 손에 쥐었습니다. 책은 이라는 제목의 사진에세이입니다. ‘사진기자 강윤중의 렌즈 너머로 본 세상’이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뭉클’은 읽는 이가 감당해야 할 감정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그보다 먼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서 맞닥뜨린 여러 상황에서 느낀 저의 감정이 ‘뭉클’이라는 제목에 녹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지은 제목은 아니지만 제겐 그렇게 중의적으로 다가옵니다. 에세이집은 블로그의 글과 사진을 모았습니다. 블로그에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는 이유지요. 2004년 회사의 은근한 압박으로 시작한 블로그 ‘나..

사진이야기 2020.04.07

"잘 가세요, 강길이형"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설 연휴 중에 받은 부고문자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 잠깐 부모상이겠지 생각했습니다. [부고] 이강길(영화감독)씨 별세.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입니다. 저에게 이 감독은 새만금과 같이 떠오릅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망가져가던 어촌마을이었습니다. 14년 전 새만금 갯벌을 소재로 사진다큐를 하겠다고 나서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전북 부안의 계화였고 그곳에 있는 갯벌 배움터 '그레'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당시 취재 메모를 바탕으로 써두었던 글에 이 감독과 첫 만남의 기록이 남았습니다. “…그때 자다 일어난 듯 부스스한 모습으로 방안으로 들어서는 이를 계화도 어민 고은식씨가 소개해 준다. 새만금을 수년 간 영상으로 기록해온 이강길 감독이다. 서..

사진이야기 2020.02.02

'아는 형님'

사진치유자라는 생소한 직업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사진치유자 임종진. 제가 좋아하는 선배이자 친한 형이기도 합니다. 이웃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다 어느 날 훌쩍 캄보디아로 떠나 국제구호기구 활동가로 일했습니다. 돌아와서는 ‘달팽이사진골방’이라는 사진교실을 열었습니다. 느리고 깊게 사유하는 사진 찍기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이 정신없는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 말이지요. 그의 도전은 이어졌습니다. 뜻을 품고 대학원으로 가서 상담심리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치유적 사진행위”를 개척하는 사진치유자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그를 소개하는 키워드는 김정일과 김광석이었습니다. 6차례 방북해 ‘뿔 달리지 않은’ 현지 주민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김정일이 아는 남한의..

사진다큐 2019.10.14

홍콩시위 출장기 ② "힘내세요"

지난 17~19일 다녀왔던 홍콩시위 출장기 ②편을 올리려는데 25일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기사가 났습니다. 경찰이 권총을 뽑아든 사진이 아찔합니다. 저기 있었다면 저 장면을 찍을 수 있었을까. 늦지 않게 접근은 했을까. 뭐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제가 목격한 평화시위와는 딴판인 기사가 업데이트 되다보니 미리 써 둔 이 출장기를 올릴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어쨌든 그날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고, 홍콩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의미에서 올리기로 했습니다. 18일 일요일 홍콩. 집회는 오후 2시로 예정됐습니다. 홍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아침의 여유를 즐겼습니다. 그래봐야 숙소 주변을 한 시간 남짓 걸어 다니는 정도였지만요. 사는 게 별 다를 것도 없지만 이국의 일상을 걸으며 보는 것은 즐겁습니..

사진이야기 2019.08.26

홍콩시위 출장기 ① 현장에서 안전이란...

“안전이 우선이야!” 편집국장께서 홍콩출장을 떠나는 제게 당부하셨지요. 말씀의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안전이 우선이라 하셔서 결과물(사진)이 이것 밖에는...” 이런 말이 조직에서 먹힐 리 없지요. ^^ 급히 출장이 결정됐습니다. 쉬는 날 영화보러 가려다 부장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허겁지겁 회사 나가서 여권과 헬멧,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홍콩 시위를 취재하는 이들의 복장과 장비를 참고해 방독마스크와 고글, 형광조끼 등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저의 출장 소식이 알려지자 선후배 동료들이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몸조심하라”고. 목소리와 문자에는 친분만큼의 걱정이 스며있었지요. 전례가 드문 해외출장에 대한 부담에다 전장에 보내는 것 같은 주변의 반응에 괜한 찜찜함이 생겼습니다. 부..

사진이야기 2019.08.22

불빛빌딩과 물빛광장

열대야 사진을 찍는 명소가 있습니다. 여름에 빼먹지 않고 한 번은 찾는 곳입니다. 여의도 한강변의 '물빛광장'이지요. 폭염의 기운이 그대로 남은 광장의 물가에서 해 지기를 기다립니다. 열대‘야’이므로 밤 분위기는 나야지요. 출근 때 반바지를 챙기지 못한 걸 후회했습니다. 땀에 들러붙은 청바지에 두 대의 카메라를 어깨에 멘 제 모습은 지나며 마주치는 이들을 더 덥게 만들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요. 해가 저물기까지 제법 긴 시간. ‘치맥’을 잠시 떠올렸습니다만, 근무 중이라는 이유보다 혼자 앉아 먹는 청승승이 싫어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오후8시. 조금 어둑해졌고 셔터를 누릅니다. 매시 정각에 뿜어져 나온다고 써 있는 분수를 기다렸는데 안 나오더군요. 관리직원이 휴가 갔거나, 이 더위에 뭔가 문제가 생겼으리라 ..

사진이야기 2019.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