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큐 51

10년 기록, 새만금 갯벌

10년 전 새만금 방조제의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2주일쯤 뒤에 새만금을 찾았습니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새만금 개발 반대의 목소리도 잦아드는 때였습니다. 정보도 없이 ‘뭔가 있겠지’하고 새만금을 향해 떠났었지요. 물이 막힌 뒤 갯벌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말이지요. 당시 그 넓은 새만금 갯벌을 돌아다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마감일이 정해져 있는 지면을 메울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조급함에 여기저기 전화하던 끝에 전북 부안군 계화도로 찾아들게 됐습니다. 갯벌을 살리자는 어민들의 목소리가 남아있던 곳이었지요. 어민들은 평생직장인 갯벌을 잃게 될 불안감 속에서 ‘그레질(조개 캐는 도구)’을 이어갔습니다. 자연의 물때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방조제 공사의 필요에 의해..

사진다큐 2016.05.24

"다큐 하나 하자"는 그냥 안부였을까?

지난 6월 해외 출장 중 부서 단체 카톡방에 안부 인사를 남겼습니다. 경향신문 ‘지구의 밥상’ 기획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에서 일정을 소화한 뒤 에티오피아로 출발하기 전날이었습니다. 케냐 일정을 끝낸 뒤 사진을 정리하며 골라낸 몇 장의 기념사진을 안부문자와 함께 보냈습니다. 뉘앙스를 알 수 없는 “(포토)다큐 하나 하자”는 K선배(보조데스크)의 답글이 즉시 돌아왔습니다. ‘건강 잘 챙겨라’는 통상적인 인사대신 말이지요. 그저 ‘잘 지내고 있구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쯤으로 이해했습니다. 국내 메르스 취재로 장기간 시달리던 터라 제가 보낸 한가한 기념사진에 골이 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 기획에 집중해야 하는데 또 다른 기획을 도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거부의..

사진다큐 2015.08.09

만화 보고 건진 다큐

새해 첫 포토다큐는 이왕이면 밝고 희망적인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한 10년 전쯤 새해에 한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를 다큐지면에 썼던 기억도 났습니다. 소재를 고민할 즈음해 장안의 화제 고졸사원 장그래의 분투를 그린 드라마는 못 보고 대신, 만화 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만화를 덮자마자 이거다 싶었습니다. ‘고졸 신입사원’을 다큐 소재로 결정한 것이지요.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두 곳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한 곳의 취업학생 명단과 담당교사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이미 사회인이 된 세 친구를 섭외했습니다. 각기 다른 직업이어야 할 것 등 나름의 기준으로 엄선(?)한 친구들입니다. 다큐 취재를 하면서 결국 ‘성공’한 친구들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취업하지 못한 더 많은 친구들..

사진다큐 2015.01.25

전교생 2명, 산골분교 이야기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오면 강원도 어딘가 산골분교를 취재해 다큐 지면에 실어야겠다고 일찌감치 마음먹었습니다. 가슴에 담고 있는 사진 한 장 때문입니다. 강재훈 사진가의 ‘들꽃 피는 학교, 분교’ 사진집에서 본 사진이지요. 조회 시간인 듯 작은 조회대 위 선생님과 아래에 선 학생 하나. 차렷 자세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웃는 아이. 가슴 먹먹해지게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본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만, 길게 마음 한켠에 간직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강원도 교육청에서 올해 입학생이 없는 강원도 내 분교의 자료를 받았습니다. 몇 군데 학교로부터 연달아 정중한 거절을 당했지요. 쉽지 않은 섭외에 다소 의기소침해져 학교 자료를 초점 없이 멍하게 바라보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학교. 인제초등학교 가리산분교. 이상하..

사진다큐 2014.03.31

[포토다큐]'철거민'이라는 죄로

고민하고 발품 팔아 게재한 ‘다큐’에 애착이 더한 건 말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그간 장애인,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등 주로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만 다큐가 결국 바라는 것은 조그만 변화입니다. 오랜 세월 익숙하고 공고했던 틀이 단숨에 깨지거나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단한 벽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넓은 강에 작은 돌다리라도 하나 놓고 있다’면서 감지되지 않는 변화에 그리 자위하곤 합니다. 이번엔 겨울을 앞둔 철거민을 만났습니다. 개발지역에서 만난 철거민들은 저를 보자마자 자신들의 억울한 사연을 토해 냈습니다. 목소리는 금세 젖어들었고 눈시울은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얘기 끝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습니다. “들어줘서 고맙다. 말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진다..

사진다큐 2013.12.09

다큐 뒤에 남는 것은-프린지 예술가들

이번 다큐에서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6년 전쯤 축제 현장 모습을 스케치해 다큐로 한 번 다뤘기에 이번에는 예술가에게 직접 다가가기로 일찌감치 마음을 굳혔습니다. 참여한 수 많은 예술가 중에 어떤 예술가를 선택할 것인가, 긴 고민을 한 끝에 한 영화감독의 작업에 꽂혔습니다. 그는 프린지에 참여한 예술가들을 즉흥적인 방식으로 담아내는 낯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포함해 그의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만나는 예술가들의 얘기를 엮어 담아보자는 생각에 미친 것이지요. 이참에 저도 예술가가 되어봅니다. ‘사진을 찍는 내가 영화감독이 파인더를 통해 찍는 예술가와 그 작업을 찍는다’ ‘예술을 담는 그 예술을 담는다’ 장고 끝에 닿은 개념이라 뭔가 그럴듯했고, 스스로 이 시도가 ‘예술적이다’라..

사진다큐 2013.09.16

다큐의 개운치 않은 뒤끝-난민, 그들에게 한국은

포토다큐를 지난 토요일 지면에 내 보내고 찜찜한 뒤끝이 계속 되네요. 이번 다큐엔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난민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책 등 난민 관련 책을 두 권 읽고, 난민지원단체 간사의 권유로 논문도 하나 읽었습니다. 지면에서 8매 정도의 글로 전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온 난민들이라 신변의 위험은 늘 잠재되어 있는 것이지요. 카메라를 드는 것도 한참을 망설이고 머뭇거렸습니다. 난민을 돕는 단체를 통해 한 가족을 소개받았습니다. 코트디부아르 난민 마마두의 가족입니다. 부부와 두 아이가 서울 모처에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

사진다큐 2013.07.11

'나는 아름답다'

"4월이구나,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는구나, 싶었어요" "기자들이 (장애인에게) 대우 받으려면 4월 빼고 연락해야 돼요" 윤수씨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평소 잠잠하던 기자들이 최근 연락이 잦아지자 조금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유독 저의 방문을 허락한 것은 11년 전 '장애인 이동권' 취재의 인연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난 2002년 제 생애 첫 다큐의 '메인사진'이 휠체어 탄 윤수씨 사진이였지요.(맨 아래 사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궁금했고, 또 다큐가 게재되는 날이 공교롭게 '장애인의 날'이다보니 민망함을 무릅쓰고 연락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대우 받지 못할 연락에 미안함을 표했고 윤수씨는 쿨하게 받아주었습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는 윤수씨의 유머스러운 어법은 지난 세월에 전혀 녹슬지 ..

사진다큐 2013.04.22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올림픽

사진다큐 소재로 장애인을 가급적 많이 다루려 합니다. 2002년 생애 첫 다큐가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한 것이었으니 저와의 인연이 깊습니다. 다큐를 시작하며 내세운 기획의도와 잘 부합하고 의무감, 책임감 같은 것도 생겼지요. 누가 물어오면 보통 위와 같은 식으로 답을 했습니다. 사실 10년 전 첫 다큐를 힘들게 한 뒤, 다음 다큐도 장애인 관련 소재를 찾고 있는 저를 보면서 ‘내가 왜 장애인이라는 소재에 집착 하는가’ 자문해 보았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학교 인근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같은 교회에 다녔고 어머니끼리 친했고 해서 함께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몸을 휘청거리며 걷는 친구의 한 쪽 팔을 붙들어 주며 느린 걸음의 보조를 맞춰야 했습니다. 집..

사진다큐 2013.01.28

"혹시 게이세요?"

"저...강기자님...혹시...?""아니요. 저는 '일반'입니다"공연을 앞둔 게이합창단 G_Voice의 연습을 취재하고 뒷풀이 자리에 끼었습니다.처음 본 한 여성 객원 단원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물었습니다. 1년 반 전 '게이'에 대한 사진다큐를 한 뒤 형·동생하는 게이 친구들이 좀 생겼습니다.게이는 일간지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는 소재중 하나지요.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게이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었습니다.그래서 이번에는 국내 유일의 게이합창단을 다큐 소재로 잡았습니다. 연습실을 찾은 첫 날. "여기 경향신문 강윤중 기자입니다. 아쉽지만 '일반'이예요.""아~~" 단원들은 아쉬워하는 감탄사로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지난해 인연으로 단원의 3분의 1정도는 낯이 익..

사진다큐 201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