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468

복귀 첫날 본 눈물

내근 생활 1년을 하고 다시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첫날 일정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를 만들고 판매한 기업의 전직 대표들에 대한 1심 선고였습니다. 재판을 앞두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관련 단체 활동가들이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고, 법원 관계자들이 청사에서 집회 금지 등의 규정을 근거로 회견을 막으면서 승강이가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을 카메라에 담다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조순미씨. 2019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사진다큐를 하며 그를 만났습니다. 나를 기억할까, 마스크까지 썼으니 알아보겠나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나온 현장의 서먹함에다가 다툼이 벌어진 상황에 인사 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기자회견 하면 안 된다’ ‘매번 해오던 거다’ 승강이는 이어졌..

사진이야기 2021.01.15

크리스마스 선물

제주 출장 나흘째 밤입니다. 밤마다 다음날 아침 날씨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해가 떠 줄까. 새해 지면에 게재할(수도 아닐 수도 있는) ‘신년호’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매일 해 뜨기 전 시간쯤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아침 날씨는 연일 ‘흐림’을 예보하고 있지만, 극적으로 하늘이 열리고 여명의 기운이 카메라 안에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제주에 오기 전 주간 날씨예보를 체크했고, 수요일(어제) 아침에는 원하는 느낌의 사진을 찍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정작 당일 아침엔 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뭐, 그런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출장 일정을 연장했고, 코로나에 들뜰 일 없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출장지에서 홀로 보내고 있습니다. 꼽아보니 송·신년호 사진을 찍기 위한 출장을 꽤 오랜만..

사진이야기 2020.12.24

마라도나를 위한 작은 애도

10년 전 2010남아공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일찌감치(아마도 경기시작 10시간 전쯤ㅎㅎ)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좋은 사진취재석을 잡으려면 한발이라도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 선착순으로 자리를 고를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내내 서 있는 건 아니고요. 모노포드나 가방 등 자신의 물건으로 줄을 세워놓습니다. 나쁘지 않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물론이고 메시, 이과인, 테베스 같은 유명 선수들이 저의 카메라 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그 현장성이 문득 사진기자의 행복이라 생각했습니다. 카메라는 대체로 축구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선수들의 다툼에 주목합니다. 메시가 공을 잡는 순간 손에는 더 힘이 들어가고 렌즈는 바짝 긴장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

사진이야기 2020.12.02

B컷이란 무엇인가

광화문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한글날을 앞둔 8일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어학당 교원들이 노동환경 개선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진기자 선후배들과 주먹을 부딪치며 인사를 나누는데 부장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마감할 ‘B컷’이 없다." 토요일자 지면 고정코너 ‘금주의 B컷’에 쓸 만한 사진이 없다는 얘깁니다. 추석 연휴 뒤라 사진이 부족했으리라 짐작했습니다. 문자가 아닌 육성 전화는 어떤 절실함이 배어있기 마련입니다. 이는 ‘현장에서 마감용 B컷을 챙겨보라’는 완곡한 지시였지요. ‘B컷이란 무엇인가?’ 솟는 질문을 눌러놓고, 바삐 움직였습니다. 뭐가 되든 찍어야했기 때문입니다. ‘B컷을 찍는다는 건 또 무엇인가?’ 때마침 발언자로 나선 한 교원의 간결..

사진이야기 2020.10.11

'어쩔 뻔 했나...'

‘그 순간을 그냥 지나쳤다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5일장을 취재했습니다. 여러 차례 찍었던 현장이지만, 그런 이유로 부담입니다. 보던 사진이 아닌 것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 추석은 좀 특별했습니다. 코로나로 고향방문을 자제해달라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었지요. ‘코로나 시대, 명절을 앞둔 5일장’이 취재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느낌은 알겠는데 사진으로 표현이 잘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예년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진에 그저 사진설명으로 우길 수밖에 없는 상황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지난달 28일 전남 구례군에서는 구례5일장이 열렸습니다. 새벽에 장터를 한 바퀴 돌고 숙소에 들어왔다가 다시 숙소를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취재차량이 숙소 앞 삼거리에서..

사진이야기 2020.10.03

10년 전 눈물사진 한 장이...

사진 한 장을 보며 10년 전 요맘때를 떠올립니다. 새삼스럽게 지금이 ‘2020년 6월’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기억을 더듬다 세월의 속도를 실감합니다. 사진은 10년 단위 같은 날 경향신문 기사를 살펴보는 모바일팀의 ‘오래 전 이날’이란 코너에 실렸습니다. 사진에는 짧은 머리의 청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상황을 몰랐다면 눈물을 닦아주고 싶을 만큼 처절하게 우는 모습입니다. 정대세. 북한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한 그는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10년 전 저는 남아공에 있었습니다. 월드컵 출장 중이었지요. 정대세의 눈물은 2010년 6월16일 요하네스버그에서 펼쳐진 조별경기 ‘북한-브라질’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인민 루니’ ‘인민 호날두’라 불리는 청년의 울음에는 월드컵 출전의 감동 이..

사진이야기 2020.06.23

'오월 어머니들'

일주일간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국내 출장치고는 길었습니다. 내근에서 잠시 벗어났습니다. 현장으로 갔다왔더니 이렇게 글이 남네요. 현장 없이는 이 블로그도 존재할 수 없는 겁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부서의 사진기획 회의가 열렸습니다. 저도 기획 아이템을 하나 냈습니다. 아이템을 낸 자가 취재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낸 자와 일하는 자가 따로인 경우도 드뭅니다. 출장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의지의 근거는 내근의 갑갑함이었습니다. 출장을 떠났습니다. 5월18일자에 한 면이 배정됐고, 무엇이 되었든 채워야했습니다. 내근을 벗어나는 자유도 잠시, 어찌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찾아듭니다. 그게 현장이지요. 오랜만에 경험하는 설렘 같은 긴장도 따라붙습니다. 정해진 일정은 5·18유족회 사무실을 찾..

사진이야기 2020.05.21

재갈을 물다

두 달이 지나간 얘기를 꺼냅니다. ‘왜 갑자기?’라고 물으신다면.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누가 고통을 많이 받는가, 누가 더 많이 아프고, 힘든가”를 물어야 한다는 김승섭 교수의 인터뷰 문장에서 한 번, 노동절을 지나면서 또 한 번 자연스럽게 떠오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진을 한 장 올립니다. 누군지도, 어디에 소속이 됐는지도 알 수 없는 두 인물의 사진입니다. 지난해 11월 지면에 게재된 사진이지만, 지금 이 블로그에 다시 쓰면서 ‘이제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 사진인가?’하고 묻게 됩니다. 무력한 물음이자, 나름의 시위입니다. 지난 2월 어느 날 두툼한 문서가 사진부장 책상 위에 놓인 것을 지나치듯 봤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진 강의를 한 적이 있는 부서장에게..

사진이야기 2020.05.04

에세이 출간 보고드려요

이 블로그에 한 번이라도 들어오셨던 분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책을 냈습니다. 지난 3일, 인쇄기의 온기가 남은 따끈한 책을 손에 쥐었습니다. 책은 이라는 제목의 사진에세이입니다. ‘사진기자 강윤중의 렌즈 너머로 본 세상’이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뭉클’은 읽는 이가 감당해야 할 감정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그보다 먼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서 맞닥뜨린 여러 상황에서 느낀 저의 감정이 ‘뭉클’이라는 제목에 녹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지은 제목은 아니지만 제겐 그렇게 중의적으로 다가옵니다. 에세이집은 블로그의 글과 사진을 모았습니다. 블로그에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는 이유지요. 2004년 회사의 은근한 압박으로 시작한 블로그 ‘나..

사진이야기 2020.04.07

"잘 가세요, 강길이형"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설 연휴 중에 받은 부고문자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 잠깐 부모상이겠지 생각했습니다. [부고] 이강길(영화감독)씨 별세.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입니다. 저에게 이 감독은 새만금과 같이 떠오릅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망가져가던 어촌마을이었습니다. 14년 전 새만금 갯벌을 소재로 사진다큐를 하겠다고 나서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전북 부안의 계화였고 그곳에 있는 갯벌 배움터 '그레'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당시 취재 메모를 바탕으로 써두었던 글에 이 감독과 첫 만남의 기록이 남았습니다. “…그때 자다 일어난 듯 부스스한 모습으로 방안으로 들어서는 이를 계화도 어민 고은식씨가 소개해 준다. 새만금을 수년 간 영상으로 기록해온 이강길 감독이다. 서..

사진이야기 202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