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큐

거리로 몰린 '노들장애인야학'

나이스가이V 2007. 11. 26. 13:05
[포토다큐 세상 2007]제발, 우리 ‘불빛’을 끄지마세요
입력: 2007년 11월 25일 17:59:18
“…그래도 배워야지. 나를 나로 봐주지 않던 이 사회에서 내가 내가 되기 위해 난 오늘도 수업을, 야학을 사수한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정수연(26)씨가 노들야학의 중학교 과정인 ‘불수레반’에서 수학수업을 듣고 있다. 야학에 다니기 전 집에서만 생활했던 정씨가 어머니의 도움으로 등교한지는 3년째다. 정씨의 어머니는 “야학에 다니면서 밝아졌다. 공부에 대한 열의도 대단하다”며 흐뭇해 했다.

“혼자살기 어려웠고 사람들한테 얘기하기도 두려웠다. 살 희망이 없었는데 야학에 와서 깨달은 게 많다. 친구들을 만나 추억이라는 게 생겼다. 노들야학에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서울 구의동 정립회관 내에 자리 잡고 있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 이곳은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장애성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반, 청솔반, 불수레반, 한소리반 등 초등학교 이전과정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4개반을 운영하고 있다. 2개의 교실을 돌려쓰지만 이도 부족해 좁은 교무실까지 교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 17명의 교사와 39명의 장애인들이 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얇은 나무 벽을 사이에 두고 나뉜 두 교실에서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야학은 초등학교 이전과정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4개 반이 운영되지만 교실은 단 2개뿐이다.

차가운 초겨울 바람이 창문을 때리던 날, 중등과정 ‘불수레반’은 수학수업이 한창이다. 교사는 ‘집합’강의에 목청을 높였고 8명의 장애인들이 휠체어에 앉은 채 수업에 열중했다. 교사의 질문에 발음이 쉽지 않은 학생의 대답은 동료의 도움과 교사의 기다림으로 소통되고 있었다. 장난기 스민 엉뚱한 대답과 갑작스런 음식 얘기에 터진 한바탕 웃음소리가 창밖 바람소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과정 ‘청솔반’이 뺄셈을 배우는 동안 교실과 교실 사이에 놓인 얇은 나무벽과 문틈으로 옆 교실 국사수업 내용이 걸러지지 않고 들여왔다. 문제를 푸는데 집중한 교사와 학생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수업은 더디고 느리게 진행됐지만 밤이 깊어갈 수록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갔다. 창 밖엔 조용히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최미은씨가 수업 중 밝게 웃고 있다. 학교를 다닌다는 것,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노들야학은 장애성인들의 배움터로 15년째 이곳을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정립회관 측에서 업무공간부족을 이유로 올해 말까지 나가줄 것을 요청해 왔다. 심정구 교사(34)는 “마땅한 교육공간도 임대료 보장도 없이 쫓겨나게 됐다”며 “모든 장애인 야학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현실의 절박함은 장애인과 교사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매주 토요일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새로운 교육공간마련과 장애성인 교육권 보장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들야학 장애인들과 교사들은 매주 토요일 오후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새로운 교육공간 확보와 장애성인의 평등한 교육권 보장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립회관 측에서 업무공간부족을 이유로 올해 말까지 떠날 것을 요청해 온 상태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이영애씨(41)는 “야학에 나오기 전 35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며 “야학에서 한글을 처음 배웠다”고 했다. 또 이씨는 “공부할 수 있는 것, 친구 사귀는 것이 너무 좋다”면서 “서운하지만 야학이 멀리 옮겨간다 해도 꼭 다닐 것”이라 말했다. 이곳 장애인들은 야학이 주는 의미를 ‘노들은 나에게’라는 복도 게시판에 적었다. 노들은 ‘친구’요, ‘정’이요, ‘에너지’요, ‘고민해결사’다. 사람과 사회와 통하는 ‘문’이며, 삶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해’이고, 새로운 것을 꿈꾸고 그려낼 수 있는 ‘크레파스’라 정의했다. 야학을 통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이 표현돼 있었다.

거리에서 ‘노들(노란들판)의 봄’을 외치는 장애인과 교사들에게 현재 장애성인 교육의 현실은 추운 겨울이다. 극심한 학력소외계층인 장애성인들이 평등하고 당당하게 교육과 삶의 권리를 누리며 노란 들판을 내달릴 수 있는 ‘봄’은 정부와 이 사회가 바로 지금 함께 만들어 가야할 과제다.

“나도 ‘학교’에 다닌다”고 쓴 글에 새 삶에 대한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설렘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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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 강윤중기자 yaja@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