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계란후라이'와 연대

나이스가이V 2018. 1. 15. 07:30

광화문 천막농성장에서 아침을 맞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김경봉, 임재춘씨가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주저 없이 들어서는 것으로 보아 늘 이용하는 식당인 듯 했습니다. 누룽지를 시켰습니다. 3000. 가장 싼 메뉴였습니다.

 

 

식사를 절반쯤 했을 때 식당 주인아저씨가 누룽지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볶음김치를 한 접시를 내왔습니다. 밑반찬으로 김치, 멸치볶음, 어묵 등이 있어 부족하지 않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인양 스윽~’ 테이블에 밀어 넣었습니다. “밥 다 먹었는데 진작 안 주시고...” 고마움에 슬쩍 농담을 건넵니다. 조금 뒤 이번엔 계란후라이를 인원수만큼 그릇에 담아 내려놓았습니다. 후라이는 순식간에 사라졌지요. 단골에 대한 서비스겠지만, 저는 그 밥상에서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작은 계란후라이지만, 길고 힘든 싸움을 이어가는 해고노동자와 함께한다는 식당 주인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J선배는 퇴근 후 운동하러 집근처 산에 자주 오릅니다. 그곳에서 얼마간 떨어진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을 본답니다. “얼마나 고생일까.” 두 번째 굴뚝을 바라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했습니다. 그 위에 파인텍 조합원 박준호, 홍기탁씨가 올라가 있습니다. J선배는 지난달 굴뚝에 올라있는 두 노동자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당장 어찌할 수 없지만, 보고 알게 되었으니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지요. ‘하늘감옥이라는 굴뚝으로 향하는 시선이 연대’의 마음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진 정지윤 기자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끝이 언제인지 모를 싸움을 하며 거리에 있습니다. 가끔 떠올립니다. 그들이 겪는 아픈 현실이 내 삶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 있다는 것과 내 자식이, 또 내 자식의 자식이 맞게 될 슬픈 현실이 될 가능성을 말입니다. ‘남의 일이 아닌 것이지요.

 

최근 농성장을 배경으로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보며,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일이 100일 혹은 1000일 단위가 늘 때마다 다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우리 사회의 ‘잔인한 외면’에서 오는 서글픔과 제 사진의 무력함과 초라함을 동시에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이지요.

 

굴뚝에서는 파인텍의 408+60일이, 땅에서는 콜트콜텍의 4000일이 지났습니다. 이 '아픈기록이 매일 경신되고 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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