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그냥 노동입니다

나이스가이V 2013. 10. 22. 08:00

가을이 깊어져 강원도 일대 산에는 단풍이 절정을 이뤘답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출근해 오대산의 단풍을 담으러 갔습니다. 산행객들이 붐비기 전에 월정사를 지나 옛길인 선재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처음 걷는 길이라 마음이 분주했지요. 대략 목적지까지의 왕복시간을 계산했습니다. 상원사나 비로봉이 목표가 아니라 신문에 쓸만한 그림이 있는 곳이 바로 목적지지요. 왕복 4시간 정도로 예정했습니다. 그 시간 내에 그림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밥 먹고 마감시간을 맞출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습니다.

 

마음처럼 발걸음도 바빴습니다. 저의 걸음은 일반 산행객의 두 배 정도의 속도를 유지했습니다. ‘저 사람 이 좋은 산에서 왜 저리 급할까?’하는 시선을 느꼈지요. 산에서는 오가는 사람 사이에 양보가 미덕이라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 귀한 미덕을 실천할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일하러 온 사람입니다라고 써 붙여 놓고 걸을 수도 없고. 금방 땀이 찼습니다. 길이 가파르지 않아 그나마 수월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두세 군데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처음보다 두 번째 포인트에서, 두 번째 보단 세 번째 포인트에서 그림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좀 더 나은 그림이 있지 않을까하는 유혹을 애써 떨쳐버렸습니다. 이미 계산된 왕복 4시간을 넘길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찝찝한 마음을 냉정히 외면하고 뛰듯이 내려왔습니다. 늦은 점심을 서둘러 먹으며 마감을 하고 밀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꾸역꾸역 서울로 왔습니다.

 

주위에서 단풍구경도 하고 좋겠다고 하데요. 남들이 이야 좋구나를 연발하며 한가로이 가을을 만끽할 때 오직 앞만 보고 급한 걸음을 옮기는 것이 구경이겠습니까. ^^ 출근해 등산하고 돈을 버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일을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은 그냥 노동입니다. 제게 놀이나 건강을 위한 산행의 조건은 카메라를 반드시두고 가는 것이지요. ^^

 

가을 끝자락 입니다.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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