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낙타 접촉 금지된 두바이에서

나이스가이V 2015. 6. 22. 13:12

지난 15일 새벽 두바이에 도착할 때 살짝 긴장했습니다. 메르스로 괜한 트집 잡히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적어도 관련된 질문 하나쯤은 할 줄 알고 안 되는 영어로 모범답안도 중얼거려봤습니다. 새벽 4시라는 시간의 덕을 본 것인지 입국절차는 아주 간소했습니다. ‘이 자들이 아직 소식을 못 들었나싶기도 했지요. ‘뭐 하러 왔느냐?’는 질문 하나 없이 웃음으로 재빨리 입국시킨 것은 길게 얘기하면 감수해야할 위험 때문이었을까요. ^^

 

공항을 나서자마자 목욕탕 사우나 기운이 후욱~하고 끼쳐왔습니다. ‘이것이 중동이군. 낙타의 숨결도 녹아들었겠지.’ 꺼놓았던 휴대폰을 켜자, 외교부에서 보낸 낙타 접촉 금지령 문자가 떴습니다. ‘지긋지긋한 메르스는 호텔의 아침식사 자리에도 달라붙었습니다. ‘저 우유는 낙타 젖이 아닐까, 저 햄은 낙타 고기를 함유하고 있을까평소 이게 혀인가 싶게 둔한 미각이 예민해지면서 맛보는 낯선 음식마다 낙타 고기의 향과 맛을 의심했습니다.

 

BBC월드뉴스에는 자막과 짧은 영상으로 한국인의 메르스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나라밖에서 접하는 한국의 뉴스는 현실적이지 않았지만, 국내에서 접하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내전처럼 엄청 심각하게 보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두바이의 인상에 대해 짧게 쓰려고 시작한 글이 온통 메르스네요.  

 

두바이 지하철을 타고 다녔습니다. 지하철 내에는 이용객들이 풍기는 향신료 냄새가 짙었습니다.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드는 이질감이 냄새입니다. 냄새는 식생활 습관이지요. 그러면서 가장 먼저 익숙해지는 것 또한 냄새입니다. 보통 냄새에 적응할 무렵 여행이나 출장이 끝나더군요. 지하철에는 아랍에미리트 시민보다는 인도파키스탄인, 동남아시아인 등 이민자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습니다. 이 중 상당수가 건설과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며 부자 나라의 하층민을 구성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들의 복장과 무표정에서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고층 건물 숲 거리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거대한 건물이 솟고 있었습니다. 도시가 공사장이더군요. 더위에 그대로 노출된 이들은 건설노동자 뿐이었습니다. 날이 덥다보니 소비, 오락, 취미, 여가생활은 대형 몰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10분 이상을 걸어야하는 몰까지 그 긴 통로에 무빙워크를 깔았고 그 위로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습니다. ‘돈질이지요. '어떻게 사나' 싶은 더위에도 불구하고 중동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두바이가 꼽힌다는 것은 교통, 금융 등의 허브라는 이유보다, 더워도 더운지 모르고 살수 있다는 이유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두바이몰, 에미리트몰 등 대형 몰에는 바깥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덥지만 덥지 않은 도시를 느끼게 하려는 두바이의 진정성은 에어컨의 풀가동으로 다소 싸늘한 추위를 선사했습니다. 고급 몰인 두바이몰이 다른 몰보다 더 추웠다는 건 돈과 지위에 대한 대접처럼 느껴지더군요.

 

 

몰에는 전통복장(남성은 칸두라, 여성은 아바야)의 남녀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요. 편해서 입는다기 보다 시민권자라는 특권의식이 녹아있는 듯 보였습니다. 고급 브랜드 매장에는 주로 이들이 물건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세계적 명품을 사 입어도 전통복장보다는 선택 순위에서 밀릴지도 모릅니다벌건 대낮에 분위기 좋은 카페테리아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칸두라의 남성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세계적인 도시로 부상했고 중동에서 꽤 개방된 도시로 알려졌지만, 일부는 전통복장으로 계급과 특권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두바이몰 앞은 북새통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젤 높은줄 알았더니 밀렸더군요)로 높다는 부르즈할리파는 조명을 밝히고 그 앞에 조성된 인공호수에서 음악에 맞춰 분수 쇼가 펼쳐지기 때문이지요. 광객들은 저녁이 되어도 가시기 않는 더위에 온몸의 적셔가며 휴대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두바이에서 이만한 볼거리는 없다고 시위하듯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두바이 관광객의 절반쯤은 그곳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떠나는 날 빼면 온전히 이틀 머물렀는데 부르즈할리파 배경으로 펼쳐지는 분수 쇼를 연이틀 봤습니다.

 




 

건물 밖 더위에 금세 땀이 흐르고 목이 탔습니다. 맥주가 땡겼습니다. 종교적인 이유가 작용하겠지만 오픈된 공간에서 편하게 맥주를 마실 수 없는 것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술주정 하는 이 없고 맑은 정신으로 두바이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삶에 위안을 얻을까, 하고 다시 안타까웠습니다. 종교가 이를 다 채워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지요. ^^ 

 

이틀 머물렀지만 볼 건 다 봤다고 단정했습니다. 두바이 관광에서 부르즈할리파을 뺀 나머지 절반쯤 될 것 같은 사막투어를 못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시간도 없었지만 낙타와의 접촉을 허하지 않은 나라의 국민으로 사막투어는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여하튼 또 언제 오겠나 싶은 두바이를 여운없이 떠나왔습니다.

굿바이~ 두바이~!!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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