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낯설게 카메라를 본다

나이스가이V 2017. 9. 6. 16:30

김선우 시인이 쓴 책 김선우의 사물들’(단비)을 읽다가 19번째 사물 사진기에 대한 글에 유독, 아니 당연히 관심이 쏠렸습니다. 시인의 눈에 사진기란 어떤 것일까. 굳이 사진기라고 쓴 것은 카메라라고 했을 때 떠올려지는 다양한 기계를 배제한 채 아날로그적 감성 유지를 위함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탁자 위에 올려둔 사진기 렌즈와 무심하게 눈이 부딪혔나 보다. 커다랗고 둥근 눈, 맑고 깊지만 심중을 헤아릴 수 없는 건조한 광택을 지닌 눈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그는 좀체 자신의 표정과 체온을 들키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내 손 안에서 외부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던지던 사진기는 손에서 놓여나 탁자 위에 섬처럼 앉은 순간 자신의 내부를 향해 오래도록 면벽한 자의 얼굴로 돌변한다. 그는 손안에서 뜨겁지만 손 밖에서 지독히 냉정하다. 극단의 적막과 무표정……

 

 

자신의 밥벌이에서 부수적일 수밖에 없는 카메라에 보내는 시인의 이런 자유로운 상상이 카메라가 핵심 밥벌이 도구인 저를 당황케 하더군요. ‘난 그 긴 시간 몸의 일부처럼 지녀온 나의 카메라에 어떤 시선을 보내왔던가?’ 묻게 됩니다. 

 

사진기는 그의 눈이 본 것, 그의 몸이 받아 안은 것을 현재형으로 사는 존재다. 셔터가 차륵, 열렸다 닫히고, 엎드린 소녀(케빈 카터의 사진 독수리와 소녀’)의 갈비뼈에서 마지막 숨이 할딱이며 빠져나가는 소리가 어두운 몸 깊이 회오리쳐올 때, 이미 과거가 되었으나 그의 몸속에서는 여전히 현재인 그 광경을 감당하고 기록해야 하는 사진기의 슬픔. 롤랑바르트의 사유가 보여주는바 사진이 상처라면, 사진기는 상처를 낳는 깊은 구멍이며 여러 겹의 슬픔으로 상처들을 감싸고 있는 창백한 알주머니다.”

 

 

나는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저 무표정한 적막 속에 실은 얼마나 뜨거운 것들이 들끓고 있는지……몸속에 어둠의 무대를 마련해놓고 자신이 허락한 순간의 빛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때, 그가 지녔을 설렘과 두근거림 같은 것. 빛이 보내온 형태를 자기 몸속에 아로새기는 동안, 과학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어둠과 빛의 교감이 그 방에서 일어날 것만 같다.”

 

시인은 사진기를 라 칭하고 감정까지 부여했습니다. 늘 곁에 있어 무감했던 카메라를 낯설게 바라봅니다. 문득 지금껏 나를 거쳐 간 카메라가 몇 대쯤일까 꼽아 보았습니다. 이래저래 일하며 쓴 것만 열두세 대쯤 되는듯합니다. 중고 카메라업자에 팔려간 한때 나의 카메라들은 지금 어디로 흘러갔을까. 다시 팔려 누군가의 취미에 기여하고 있을까. 옛 모델을 모으는 어느 수집가에 손에 들어갔을까. 고물이 돼 잘게 부서져 흩어졌을까. 적어도 4~5년씩 밥벌이를 감당해준 카메라에 대한 뒤늦은 애틋함이 솟습니다.

 

 

요즘 '나의 사진기는 기쁨도 슬픔도 설렘도 두근거림도 아닌 그저 '가벼움'만 새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한편 세상의 모든 시인들이 시를 쓰듯 사진을 찍는다면 이 가벼움이 극복될 수 있을까 상상해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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