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몸싸움

나이스가이V 2015. 8. 5. 12:47

취재현장의 몸싸움은 사진기자들에게 일종의 '취재 기술'입니다몸싸움이란 것은 정당한 것이고 어깨를 부딪치면서도 동료를 배려합니다. 좁은 현장에서 어깨를 밀어가며 사진을 찍다가도 위치가 좋지 않은 동료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기도 하는 암묵적이고 신사적인 룰입니다. 밀려서 좋지 못한 결과물을 얻었다고 동료를 탓하며 화내면 쪼잔하고 무능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몸싸움은 거칠다기보다 밀고 밀림이 유연한 물의 흐름과 같았습니다. 최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롯데 집안의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더 이상 '고상한' 몸싸움은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들어오던 모습을 뉴스 화면을 통해 봤습니다. 화면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경호원과 취재기자, 사진기자, 영상기자들이 서로 엉겨 붙어 고성이 오가는 모습이 민망했습니다. 한편 위험해 보였습니다. 보통 이런 현장에서는 모든 영역의 기자들이 서로의 원활한 취재를 위해 이런저런 약속을 합니다. 이날도 그랬을 겁니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취재기자들이 튀어나가 붙으면서 아수라장이 됐다는 겁니다. 현장 취재기자 후배에게 물어보니 한 명이 뛰어 들어가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더군요. 다음날 신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입국 역시 난장판이었습니다뉴스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취재하는 기자의 모습이 더 인상적인 뉴스가 돼버렸습니다.

 

묵묵부답의 취재원과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경호원의 변수가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취재기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분위깁니다. 요즘 대부분 휴대폰 녹음기능을 사용하다보니 취재원 입 근처까지 휴대폰을 밀어 넣어야 합니다. 몸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마감을 앞두고 노골적인 질문과 간단한 답으로 기사와 기사의 제목이 바뀔 수 있는 판국이라 더욱 필사적입니다. 튀었던 한 기자의 목소리가 기억납니다. “정신이 온전하세요?” 각자가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답을 자신의 폰에 담아야하지요. 출입처도 매체 성격도 달라 서로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게 정리가 되지 않는 이유라더군요. 욕심을 조금만 놓으면 가능할 텐데 말이지요. 한 번 무너진 취재현장은 복구되지 않습니다. 엉망이 돼버린 현장에서 기자들은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에서 돌아오던 날 김포공항에는 엄청난 수의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앞선 아수라장의 경험 때문인지 현장에 나온 롯데그룹 직원들의 얼굴에 긴장과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협의 하에 입국장부터 공항 건물 밖으로 향하는 출입문까지 포토라인을 쳤습니다. 신 회장이 걸어 나가는 이동 공간을 확보해주고 사진기자, 영상기자들이 라인 밖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신 회장의 동선 확보이자 '취재 안전선'이기도 합니다. 수월한 취재와 민망하지 않은 취재를 위한 약속과 양심의 선입니다. 의견이 분분했던 취재기자들도 장시간 논의 끝에 예닐곱 명의 대표 취재자를 극적으로 구성했고 포토라인에 서기로 한 회장에게 던질 질문도 추렸습니다. 이날 보기 드물게 '예행연습'까지 진행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준비에도 만약의 사태, 즉 '돌발적 아사리판'을 대비해야 합니다

 



 

신 회장이 입국해 포토라인에 서서 여러 개의 질문을 받았고 동선을 따라서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취재기자가 든 무선마이크 꾸러미에 머리가 부딪치기도 했지만 비교적 서로 민망하지 않은 선에서 취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매체가 많아져 기자들의 현장 질서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만, 자율적 통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현장 질서와 취재 경쟁 사이의 균형이 기레기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답이라 생각합니다. 뭐 하나마나 한 말이지요. “조금씩 양보하면 같이 잘 할 수 있다는 말에 양보하니 바보 되더라는 말로 받는 현실입니다. 구를 위한 취재 경쟁이며 몸싸움인가 싶습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추한 밥벌이 경쟁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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