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무기력이 씁쓸한 위안으로'

나이스가이V 2016. 7. 16. 14:23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드 배치와 관련, 주민 설득을 위해 15일 경북 성주를 찾았습니다. 주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설명회는 파행됐지요. 과정이 생략된 일방적이고 전격적인 발표와 대통령 해외순방 시작 날 황급히 달려와 수습하려는 정부의 빤하고 딱한 '매뉴얼'에 화가 나더군요. 여기에 더 화가 났던 건 이를 사무실에서 TV 화면을 통해 지켜본 것이었습니다.

 

뉴스를 보는 동안 갑갑했습니다. 저는 정부가 사드 지역을 발표하던 날(13) 성주에 갔다가 다음날(14) 밤에 올라왔거든요. 총리의 전격방문이 이날 밤늦게 결정되었고 이 일정을 미처 체크하지 못해 사진부에서는 현장에 기자를 보내지 못했습니다오전 9시 넘어 기사를 통해 체크한 총리의 일정은 11시 성주였지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었습니다.

 

총리가 화난 주민의 계란세례와 물세례를 받는 생방송 화면을 보며 , 오늘 1면 사진이구나했지요. ‘왜 어제 하루 더 성주에 머물지 못했을까?’ ‘왜 서둘러 왔을까?’ 자책이 시작됐습니다. 총리를 태운 버스가 몇 시간째 트랙터에 막혀있는 현장 사진을 페이스북에서, 통신 사진에서, 온라인 기사에서, TV화면에서 확인할 때 , 늦게라도 출발했다면...’하고 아쉬움이 들었지요. “지금이라도 가봐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려 해도 3시간 이상 걸려 가는 동안 상황이 종료될 것이라는 짐작에 말을 삼켰습니다. 데스크가 나름의 판단을 했기에 따로 얘기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반복되는 뉴스화면을 보며 주요현장에 저나 저희 부원이 없다는 것이 하루를 얼마나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지 경험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져 큰 한숨을 주기적으로 뱉게 되더군요. 옆자리 선배도 간혹 헛웃음과 한숨을 흘렸습니다. 사진기자와 현장은 이런 관계인 것이지요.

 

다음날(16일자) 조간신문을 보니 예상대로 모두 1면에 총리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사진은 보는 이들에 따라 달리 읽힐 것이지만, 기사 제목이나 사진 제목 등을 미뤄볼 때 같은 사진에도 신문사의 의도가 묻어나는군요. 저희 신문을 비롯해 매일신문 사진을 제공받아 게재한 신문이 많습니다. 주민의 거센 저항과 삼엄한 경호 속에 그와 같은 사진을 찍어내는 데는 판단, 의지와 함께 운이 조금 받쳐줘야 합니다. 운이라는 게 애써 저를 피해갈 리 없겠지만, ‘내가 갔다면 저런 사진을 찍어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어제 생생했던 현장 부재의 무기력이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씁쓸한 위안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ㅠ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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