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배신당한 프레스 프렌들리

나이스가이V 2015. 2. 12. 09:19

몇 달 전부터 다시 국회에 출입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진이라 1진 선배의 부재 시에 국회 사진을 전담합니다. 1,2진 부재 시엔 후배인 3진이 커버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국회사진이란 기본적으로 회의 사진입니다. 모든 사진거리가 회의, 회견, 토론회의 범주를 여간해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로 앉아서 얘기하는 회의 사진에 회의를 갖기도 합니다. 내부적으로도 정적이고 심심하고 밋밋하고 늘 보던 사진은 지양하는 추세입니다. 회의 사진을 다르게 찍는다는 게 어디 쉽나요.

 

국회에 다시 와서 보니 사진기자 선후배들이 총리 후보인 이완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참 좋아하더군요. 이유는 표정이 풍부하고 제스처가 다양한 것이 이유입니다. 밋밋한 회의 사진에 다양성을 제공해주는 것이지요. 그는 사진기자들이 사진이 아쉽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기가 막히게 알고 소위 그림을 만들어 주기도 하더군요. 대표적인 게 귓속말 같은 건데요. 무슨 말인지는 당사자인 두 사람만 알겠지만, 오늘 점심 뭘로 하실래요?”라는 말이라도 심심한 회의 사진보다 10배쯤 낫습니다. 이완구 전 원내대표를 보면서 연기자구나싶다가도 그것 역시 정치적 감각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치판에서 사진은 중요한 수단입니다. 사진에 나온다는 것은 정치 쟁점이나 이슈의 중심에 있다는 말이지요. 여야의 대표와 지도부의 사진이 대부분인 이유입니다. 사진에 얼굴이 드러내는 것과 사진 속에 서있는 위치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사진 찍을 땐 분명 없었는데 나중에 사진 작업을 할 때 보면 얼굴을 내밀고 있는 중진 의원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카메라가 집중하는 곳에 발 디딜 틈만 있으면 자신과 그다지 관계없는 사안에도 앵글 속으로 들어온다는군요. 좌우 끝에 서면 트리밍으로 잘라낼 수 있지만 가운데 서면 방법이 없습니다.

 

다시 이완구 총리 후보자로 얘기를 돌리면, 그는 확실히 프레스 프렌들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기자의 필요까지 챙긴다면 꽤 섬세한 분이지요. 총리 지명되기도 전에 차기 총리 물망에 오른 분이고 총리 지명이 되자 잘 할 것이라는 말도 기자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자신감이었을까요. 언론 외압 의혹으로 낙마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인사청문회 첫 날 후보자석에 앉은 그를 주시했습니다. 여전히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여유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긴장하고 불안해 보였습니다. 청문회 중 야당 위원이 언론 외압을 추궁하자 답변 중 일어나서 깊이 허리를 숙여 사죄했습니다. 카메라는 그의 고개숙인 사과에 집중했습니다. 누구보다 미디어를 잘 아는 분이지요.

 

 

정치적 매니지먼트는 잘했는데 정작 말의 관리를 못한 것이 화를 불렀습니다. 부동산과 병역 등 여러 의혹들을 차치하고라도 기자들에게 했다는 녹취록 내용을 들어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이더군요. 또 이에 대해 거짓으로 일관한 것도 그가 총리의 자질로 소통을 강조하는 것과도 배치가 되지요. 그의 정치적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습니다. 정치인도 말실수 할 수 있습니다만, 이번 녹취록의 말은 실수처럼 들리지는 않더군요.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지요. ‘프렌들리뒤에 감춰뒀던 그의 언론관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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