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큐

변장복 할아버지 부부와의 만남

나이스가이V 2012. 6. 12. 17:32

포토다큐 지면을 받아 가뭄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번 다큐에 강원도 화천귀농학교를 다녀왔고, 이번에 충남 예산의 농촌마을을 다녀왔으니, 올해는 유난히 '땅'과 인연이 많은가 봅니다. 

 

다큐의 정석은 뭐니뭐니해도 발품입니다. 제 기준입니다만. ^^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헤집고 다니며 묻고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기록하는 과정의 반복이지요. 

 

                                                                                                                 <말라버린 예당저수지 상류>

 

차를 타고 돌아다녔으니, 발품이 아니라 '차품'인가요. ㅎㅎ

여하튼 발품을 열심히 팔던중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 마을에서 변장복 할아버지 부부를 만났습니다.

30도까지 오르는 땡볕에 논에 나와 계시더군요.

 

할아버지는 이틀전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물을 댄 논과 그 옆에 붙은 흙먼지 날리는 논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생 단 한 번도 놀린적이 없는 땅을 물이 없어 놀리게 생겼으니, 농사가 삶인 농부의 마음은 말라가는 땅처럼 타들어 갔겠지요.   

 

비가 봄 부텀 안왔시유. 바닥을 파도 물이 없시유. 평생 이런 거 처음이유.” 

걱정스럽게 마른 논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까웠습니다.

 

 

때가 지나가고 있지만, 며칠 내에라도 비가 오면 어린 모를 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에 할아버지는 마른 논에서 굵은 돌을 골라냈습니다.

 

 

노부부는 바닥이 드러난 작은 천에서 양수기로 살짝 고인 물을 긁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모터 탄다며 자꾸 양수기를 끈다고 면박을 줬습니다.

 

 

 

조금 무뚝뚝한 할아버지에 비해 할머니는 유머가 넘쳤습니다.   

처음 보는 제게 할아버지가 술을 너무 마신다며 일러 바칩니다.

 

이 마을에는 띄엄띄엄 농가가 있어, 노부부는 종일 둘이서 지내시 모양이었습니다.

적적한데 우연히 들린 제가 무척이나 반가웠나 봅니다.

자녀와 손주, 할아버지 건강 등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라도 대접해야는데..."하시며 틈틈이 주스와 오가피즙, 홍삼 드링크를 가져다 주셨지요.   

 

예정했던 것과 달리 긴 시간을 노부부와 함께 있었습니다.

일도 일이지만, 제가 조그마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따뜻하고 융숭한 대접에 뭔가 답이라도 하고 싶어 두 분의 기념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쑥스러워하는 할머니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 놓으시더군요.

 

아마 글을 쓰는 이 시간 쯤에 댁에서 인화된 사진을 받아 보시겠군요.

사진이 마음에 드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빨리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런 소중한 만남이 있어 좋습니다.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