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뻗치기는 숙명

나이스가이V 2013. 5. 2. 09:40

주기적으로 뻗치기에 대한 얘기를 쓰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해지지 않는 뻗치기는 기자들의 숙명입니다.

예상된 뻗치기는 마음에 준비라도 하는데 그렇지 못한 뻗치기는 두 배쯤 더 힘듭니다. ^^

 

지난 29일 개성공단 내 우리측 잔류 인원의 귀환 취재에 나섰습니다. 

입경 시간은 오후 5시 경으로 예정됐고 4시가 채 되기 전 남북출입사무소 내 작은 건물 옥상에 올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개성에서 돌아오는 차량 행렬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자리싸움이 치열합니다. 이미 이런 저런 스케치를 마감한 상태였구요. 옥상에서 차량행렬을 보고 잽싸게 내려가 데스크가 준 미션을 수행한 뒤 물류센터로 뛰어가서 짐 옮겨 싣는 것을 취재하고 차로 미친듯이 달려가 노트북 마감하는 동선을 짰습니다. 노트북은 취재차 안에서 켜진 채 이미 스탠바이 중이였구요. 

 

정신없는 동선을 생각하면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발이 근질근질 해지죠. 5시가 넘어서자 경내 방송이 나옵니다. 북측의 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5시 라는 예정시간이 쉬이 지켜지리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었지요. 이날 입경이 불발될 가능성을 생각해 기다리는 취재진, 마중나온 개성공단 관계자, 썰렁한 심사 게이트 등을 급히 스케치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전송.

 

조금 뒤 해가 집니다. 빛이 바뀌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상황은 변한게 없는데 주위가 어둑해 집니다. 좀 전에 했던 스케치를 그대로 다시 반복합니다. 그리고 전송.

 

완전히 깜깜해 집니다. 다시 반복된 스케치와 전송. 신문의 판이 바뀔때마다 업데이트가 되야지요. 안에서 필요 없다고 생각해도 현장에서는 보내야 하거든요. 가만 있고자 해도 타사 기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따라 나설 수 밖에요. ㅠㅠ 

 

소모적인 취재입니다. 여기저기서 약속을 취소하는 전화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 아빠 오늘 늦어. 아빠 지금 북한에 와 있어" 아이한테 뻥을 치는 기자도 있데요. ^^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이곳에서 기나긴 시간을 기자들은 어떻게 버틸까요.

'수다'입니다.

이런 큰 사건에는 평소 잘 못보던 동료들을 한번에 볼 수 있습니다. 딱히 할 얘기가 없어도 마주앉아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시간을 떼우는 것이지요. 남북관계가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임에도 기자들의 웃음소리가 옥상 위에 낭자합니다. 개성공단 폐쇄의 의미와 파장보다 지금 마감시간에 쫓기는 초조함과 지루함을 달래는 게 더 급한 과제이기 때문이지요.

 

찝찝해서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옥상에서 추위에 떨며 버텼습니다. 

설마설마 했는데 결국 밤 12시를 넘겨 차량들이 남쪽으로 넘어왔습니다. 급히 마감하고 나서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이 시간에라도 오지 않았으면 누군가 내일 또 이 고생을 해야할 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앞서 밤 11시가 넘어 통일부 출입 후배기자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선배 고생 많으세요" 통일부 기자실에서 마감된 사진을 보고 제가 남북출입사무소에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제가 볼 때 요즘 통일부 출입기자가 가장 고생할 때 거든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쌩유~!!

 

 

 

 

 

 

 

 

 

yoonjoong

 

 

    

       

'사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이 불편하신지요?  (0) 2013.05.16
남양유업의 사과  (0) 2013.05.13
수아레스와 굴욕사진  (4) 2013.04.24
'마더 파더 젠틀맨~'  (0) 2013.04.15
안철수는 모른다!  (11) 201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