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뻗치며 산다!!

나이스가이V 2010. 10. 22. 12:12
'뻗치기'라는 기자들이 쓰는 은어가 있습니다.
군대에서의 얼차려를 연상케하는 단어인데요.
단어의 뉘앙스가 그러하듯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약이 없지만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어떤 상황이나, 뉴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마냥 기다리는 
조금은 무식하고 단순한 취재방법이지요. 
지겹습니다. 하지만 왠만큼 간이 크지 않으면 자리를 떠서 다른 무엇을 할 수도 없습니다.
꼭 자리를 비운 잠깐동안 상황이 발생해 버릴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지요. 

그제 태광그룹 회장의 어머니 집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는 뉴스를 보고 
바로 장충동으로 향했습니다. 기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지요. 
그저 '압수수색 영장발부'라는 사실에 '설마 이 늦은 밤에 하겠나'하는 의심을 가지면서도 모여든 것이지요.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한 일간지의 수습기자라 소개한 친구가 다가옵니다. 검찰이 언제 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 물었고,
뉴스보고 왔다. 정확한 건 없다,고 답해 줬습니다.
지난 사흘간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이곳을 지켰다는 이 친구는 기자들이 몰려들자,
홀로 있던 외로움에서 벗어난 기쁨과 이제 지난 사흘간의 별 소득없는 뻗치기가 막을 내리는 구나, 하는 
기대감에 표정이 밝았습니다.

건너편 빌라 옥사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인내의 시간을 벌서듯 보내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는 진돗개와 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에 돌아다니는 데요" 자신만이 확인하고 본 유일한 모습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예의 그 밝은 표정으로.

밤 12시가 넘어서자, 기자들이 하나둘씩 '오늘은 아니구나'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리 허무할지 알면서도 '혹시나'나는 마음에 움직이는 이들이 기자들이지요.
그 수습기자는 또하루 늘어난 '뻗치기'에 한 숨을 내쉬겠지요.

결국 다음날 압수수색이 실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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