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살람 에티오피아

나이스가이V 2015. 8. 12. 09:00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아디스아바바를 반복해 발음하다보면 왠지 아프리카적인 낭만이 느껴졌습니다.

 

공항에 내려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시선을 끌었던 것은 공항 앞에 줄지어 선 낡은 택시였습니다. ‘과연 저 택시들이 달릴 수는 있을까.’ 30년쯤 돼 보이는 택시는 너덜너덜했습니다. 차를 오래 타는 것이 미덕일 순 있지만 그것도 관리와 안전이 동반될 때나 가능한 말이겠지요.

 

 

해발 2000m가 넘는 에티오피아의 수도는 선선했습니다. 이곳의 날씨는 출장을 준비하며 알았습니다. ‘아프리카는 덥다는 것을 진리처럼 알고 산 지난 세월이 좀 민망했습니다. 공항 가까운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길에서 목격한 주민들의 남루해 보이는 삶과 우리 일행이 머문 호텔의 그 현실적인 거리는 얼마쯤 될까 싶었습니다.

 

 

 

다음날 취재지역으로 향했습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370km, 주도 아와사에서 95km 떨어진 훌라라는 지역이었지요. 수도를 벗어나는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남쪽으로 향하는 외길에는 중앙선도 명확하지 않았고 신호등도 없었습니다. 오가는 차량과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는 좌회전 차량이 꼬인 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느린 차량행렬에 매연이 강하게 눈과 코를 파고들었습니다. 트럭이며 승용차며 상당수가 공항의 그 낡은 택시 수준이었으니 매연 무방비의 도시일 수밖에요.

 

 

도시를 벗어나자 푸른 초원과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졌습니다. 교차로도 없는 2차선 도로를 하염없이 달렸습니다. 소나 염소 등 가축 떼들이 지들의 영역인 듯 수시로 도로를 가로질렀습니다. 드넓은 초원에 풀어 키워서인지, 먹는 게 부실해서인지 가축들이 걸을 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날씬했습니다. 가둬 키워 살이 오른 한국의 가축들이 비정상이겠지요.

 

 

 

초원을 좌우로 가르는 외길을 따라 주민들이 북적이는 작은 마을이 규칙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걷거나 장사를 하는 이들 사이에서 무리지어 앉은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뭐 특별히 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차량을 타고 앞을 지나는 우리 같은 이들에게 시선을 주는 것이 그나마 의미 있는 일인 듯 했습니다. ‘시간 뭉개고 앉아서 무료한 하루를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비생산적이며 삶의 낭비인가?’ ‘당신들처럼 바쁘고 분주하게 그렇게 여유 없이 사는 것 또한 비생산적이며 낭비적인 삶이 아닌가?’ 그런 문답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무리지어 앉아 시간을 때우는 것도 그들의 문화라면 문화일 테지요. 흉봐서는 안 될 에티오피아적인 문화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주도인 아와사와 취재예정 지역인 훌라의 중간쯤 되는 곳에 위치한 숙소로 향했습니다. 비포장도로 옆으로 허름하기 짝이 없는 집과 주민들이 늘어서 있어 손님을 치를 만한 제대로 된 숙박시설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길을 잘못 찾아 든 것은 아닐까 했지요. 저물녘 어둠속에서 아레가쉬 로지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로지의 철문이 열리자 대나무를 엮어 만든 아프리카 전통 가옥 여러 동이 우거진 꽃나무 사이로 보였습니다. 안에는 침대와 샤워시설 화장실 등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 깊숙이 신비스럽기까지 한 이런 숙소에서 호사를 누릴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로지의 경험은 특별했습니다. 주로 밤의 선물이었지요. 로지 담벼락 근처에는 밤새 하이에나가 울어댔습니다. 밤의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그 울음은 바로 문 밖에서 들리는 것처럼 가까웠습니다. “~에오” “~워워워” “~” “~~~” 처음에는 한 마리의 다양한 울음이라 여겼지요. 소리의 방향이 가늠되면서 각기 다른 녀석들의 울음임을 알게 됐습니다. ‘외로움인가. 구애를 하는가.’ 여하튼 울음이 구슬펐습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동물, 고상한 표범과 상반된 이미지의 하이에나지요. 노래 가사가 떠올라서인지 왠지 그 울음이 더 처량하고 짠해지더군요. 문밖에서 표범이 울었다면 이런 한가한 생각 못했겠지요. ^^

 

하이에나의 울음에 귀를 기울였던 것은 밤이면 일어나는 정전 때문이었습니다. 전기가 흔할 리 없는 지역이라 수시로 불이 나갔습니다. 현대식 로지도 별 수 없는 일상이었습니다. 아침 해가 뜨도록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주변에 다른 불빛이 있을 리 없어 초를 켜놓지 않으면 전기가 나가는 동시에 암흑이었습니다. 눈앞에서 움직여보는 제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요. 시각이 닫히면서 주변의 소리에는 민감해지기 마련입니다. 시각이 다른 감각들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지요. 사색에 쉽게 빨려 들어가는 것도 감각의 이동에 의한 것입니다. 감각의 총량을 생각할 때 시각이 완전히 닫힐 때 살아나는 다른 감각의 선명하고 구체적인 느낌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사색은 제게로 향했습니다. 만져질 것 같은 참 낯선 고독감도 경험했습니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빛의 홍수 속에서 살아왔나싶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살람(안녕하세요)’아마세께날로(고맙습니다)’ 정도의 인사에 표정을 얹어 간단한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아마세께날로는 발음할 때마다 헷갈렸고 현지인들은 들을 때마다 웃었습니다. 입에 달라붙기까지 시간이 걸렸지요. 입에 좀 익자 아프리카적(?) 리듬도 가미해 아마~세께날~를 날릴 수 있었습니다. 훌라에서 만난 에티오피안들은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악수하며 반갑거나 기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참 순수하게 드러냅니다. 오른손으로 악수를 한 채로 잡아당겨 서로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듯 부딪치는 에티오피아식 인사는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저 손잡는 악수보다는 정성스럽고 마음이 더 많이 담길 수밖에 없는 인사였지요. 이 멋진 인사법을 국내에 들여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월드비전이 사업장을 꾸리고 있는 훌라 지역 주민들의 삶은 남루했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헤지고 구멍 난 옷을 많이 걸쳤습니다. 옷차림으로 먹고 사는 수준을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이들이 사는 전통 가옥은 다져진 흙바닥 위에 지어졌습니다. 끼니를 위해 불을 지피면 지푸리기를 엮어 만든 지붕 전체에서 연기가 새 나왔습니다. 잘 빠지지 않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먹고 자고 심지어 소도 키웠습니다. 내부는 새까만 그을음이 두껍게 눌러 붙었습니다.

 

 

 

 

 

단출하고 간단한 삶에서 큰 불편함이 보였습니다. 충분한 것이 아니더라도 필수적이어야 하는 것도 눈에 띄지 않는 세간이었습니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어설픈 동정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표정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한편 정확히 어디 근거해 산출된 것인지 잘 모르지만 삶의 만족도라든지 행복지수라든지 하는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우리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빈곤할지언정 모두 고만고만한 비슷한 처지라 평균적인 표정은 밝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누군가와 비교가 되는 순간에 불행의 씨앗이 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누군가는 미개하다고 할지 모르는 삶의 모습이지만 어쩌면 가장 자연과 가깝게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여하튼 에티오피아에서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복잡해졌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사흘은 와이파이도 안 되고, TV도 없고 인터넷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세상 어디에서 이런 난감한 환경을 경험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버릇처럼 들여다보던 카카오톡과 페이스북도 접속할 수 없었지요. 철저한 단절이었습니다. 단절은 오히려 소통과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한편 ‘SNS와 인터넷에 과하게 기대어 살았구나반성도 해봅니다. 무엇보다 뉴스를 끊었던 사흘간의 시간이 참 평화로웠습니다. 뉴스를 생산해 먹고 사는 자가 뉴스의 단절로 평화로웠다는 것은 아이러니지요.

 

일정을 마치고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와이파이를 잡고 카톡과 페이스북을 잽싸게 체크하며 지난 며칠의 평화로운 고립을 보상받으려 했습니다. 병이지요. 제 안의 병적인 것들은 단절을 통해 새삼스레 발견되는 건가 봅니다.

 

비행기가 에티오피아 공항을 이륙하자 뭔가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서둘러왔다가 서둘러 간다는 그런 느낌이었지요. 다시 이곳 아프리카 땅을 디딜 기회가 있을까 싶어 아쉬워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창밖으로 멀어지는 에티오피아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려다보는 것이 나름의 작별인사였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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