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설상의 까막눈들

나이스가이V 2018. 3. 16. 15:26

평창동계패럴림픽을 취재하는 하루하루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일과를 끼적거려 일기처럼 모았습니다. 훗날 사진과 함께 돌아볼 때 좀 더 입체적으로 기억이 소환되리라 믿어서지요. 패럴림픽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 블로그를 서둘러 쓰게 했습니다.       

 

 

관심이 이어질까 (3월6일)

관심을 받던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이어지는 패럴림픽 개막 사흘을 앞두고 평창으로 향하는 동안 설렘과 걱정이 뒤섞였다. ‘관심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관심이 줄어들겠지만 그 폭이 최소화됐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취재 온 동료 사진기자들의 수가 앞선 대회보다 줄어든 것으로 관심'의 정도를 가늠한다. '언론의 외면일까, 국민 외면의 언론 반영인가?' 닭이냐, 달걀이냐 같은 물음이다. 답 없고 소모적이다.

 

 

  <아이스하키 대표팀 훈련, 강릉>

 

사진기자들 평창에 모이다(3월7일)

국내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이고 앞선 올림픽에 대한 인기의 여운인지 각사의 동료기자들이 속속 평창에 모였다. 대부분이 패럴림픽을 취재해 본 경험이 없다. 이 대회를 경험한 기자들이 앞으로 장애와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10년 전 베이징패럴림픽 취재로 내 시선과 이해가 많이 바뀐 경험이 있어서다. 한편, 올림픽에도 위계가 있어 보인다. 하계올림픽>동계올림픽>하계패럴림픽>동계패럴림픽. 간극을 줄이는데 내 사진이 얼마나 보탬이 될까?

 

 

  <알파인 스키 훈련, 정선>

 

정신은 안드로메다에 (3월8일)

개막을 하루 앞두고 분주하다.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을 미리 답사한답시고 경기도 없는 경기장을 두루 다녔다. 몸은 새로운 일과 생활에 적응하느라 피로했다. 미처 피로를 풀기도 전에 일을 시작하는 날이 되풀이 됐다. 문득 아직 개막도 안 했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난다. 폐막은 까마득해 보였다. 사무실에서 당연하게 사진을 기다리지만 그 사진을 생산하는 자의 긴장은 늘 있는 법이다.

숙소로 돌아와 뭐라도 정리하려 노트북 꺼냈다. 충전케이블이 없었다. 어디에 두고 왔을까. 생전 처음 일어난 일이라 당황했다. 수소문해 선수촌 미디어센터에 꽂은 채 남겨진 케이블을 확인했다. 개막도 안 했는데 정신은 안드로메다를 오가고 있다.

 

   <북한 선수단 입촌식, 평창>

 

'이제 개막이라니...' (3월9일)

평창에 새벽부터 큰 눈이 이어졌다. 이날 안희정 전 지사의 검찰출석, 배우 조민기씨의 자살, 북미관계 청신호, MB검찰소환 예정 등 큰 뉴스들이 서울발 속보로 전해졌다. 평창에서는 이 뉴스들이 참 멀게 느껴졌다. 이 큰 뉴스들 틈에서 패럴림픽 개막 소식이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뤄질 것인가를 생각했다.

개막식 사진기자석 옆자리에 중국장애인협회 소속 직원이 평창의 눈을 배경으로 자신을 찍은 사진과 영상을 자랑하듯 보여줬다. 느닷없이. ‘러브스토리의 명장면을 패러디까지 했다. 눈은 그저 스케치의 대상이거나, 일에 방해가 되는 것쯤으로 여기는 내게 그의 해맑음이 낯설었다. 내게 눈을 즐길 날이 오긴 할까.

공연과 선수입장 등 개막행사가 이어졌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한 아이스하키의 한민수가 성화를 등에 진 채 줄을 잡고 성화대를 향해 급경사를 올랐다. 감동이 몰려왔다. 울컥했다. 그 모습에 그가 살아낸 시간과 인내와 도전이 읽혔다. 성화를 건네받은 컬링의 안경선배김은정과 휠체어컬링의 서순석이 성화를 점화했다. 패럴림픽이 개막했다. 뭔가 한참 한 것 같은데 이제 시작이라니.

 

    <패럴림픽 개막식 한국 선수단 입장, 평창>

 

  <한민수의 개막식 성화 봉송, 평창>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성화 점화, 평창>

 

설상의 까막눈들 (3월10일)

말로만 듣던 바이애슬론을 난생 처음 찍는다. 나뿐 아니라 옆자리의 타사 동료들도 마찬가지. 그 넓은 경기장 앞에 난감해하며 서로 묻는다. ‘어디서 출발하고 어디로 들어오나?’ ‘경기시간은 얼마나 걸리나?’ ‘사격을 찍으려면 어디로 가나?’ ‘사격벌칙은 뭔가?’ ‘어디가 사진 포인트인가?’ ‘몇 바퀴 도는 거지?’ 물어봐야 큰 도움이 될 리 없다. 이렇게 무지한 상태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가 싶었다. 뭐든 처음이 있게 마련이지만 허둥대는 게 민망했다. 심지어 사진설명을 쓰는데 바이슬론인지 바이슬론인지 머뭇대기도 했다. ㅎㅎㅎ

 

  <신의현의 바이애슬론 역주, 평창>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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