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속도는 병이다

나이스가이V 2015. 3. 26. 16:30

서울을 벗어날 때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그것이 출장이어도 그렇습니다. 잠시 떠남의 설렘과 탁한 공기를 뒤로하는 상쾌함보다 오히려 도시의 숨가쁜 속도를 잠시 벗어나는 것이 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산수유가 만발했다하여 전남 구례를 다녀왔습니다. ‘꽃을 보고 즐긴다는 것은 확실히 느림의 영역이지요. 그런 느긋한 마음으로 산수유 사진을 찍고자 했습니다. 6년 만이자, 네 번째로 산수유마을을 찾은 것이지요.

 

마감에 임박해 헉헉댔던 지난 세 번의 취재보다 훨씬 여유로웠습니다. 연차인지, 나이인지 여하튼 세월이 제 안에 무언가 다른 무늬를 새겨놓은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안의 여유를 발견하자 이 느낌 유지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주말 마을 초입에는 산수유 축제 채비로 분주했습니다. 차량들이 몰려와 금세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차에서 서둘러 내린 나들이객들이 흐드러진 산수유꽃을 보자 감탄사를 토해냅니다. 그리고 빠르게 걸었습니다. 신속하게 휴대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 저 산수유 꽃이 곧 져버릴지 모른다는 강박을 보는 듯 했습니다. 느리게 보고자 했더니 주위의 그런 속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급 카메라를 든 한 여성은 앵글에 방해가 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뭇가지를 꺾었습니다조급증이지요. 

 

꽃 축제를 찾는 누구나 나름의 삶의 속도를 늦추고 봄의 정취에 느끼려하지 않았겠습니까. 생각은 시종 느림을 주문해도, 속도에 익숙한 몸에 곧 밀려버리지요. 꽃 축제에 와서 꽃에 빠지지 못하고 점심 먹을 맛집이 어딘가?’ ‘언제 출발해야 집 가는 길이 안 막힐까?’ 고민하지요. 저 역시 느림을 누려보려 했으나 빛 좋은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셔터를 누르는 마음이 분주해 졌습니다. 몸의 기억이 마음을 지배해 버리지요.

 

몰려드는 차량과 인파에 기겁해 서둘러 서울로 향하는 동안 산수유마을의 밤을 그려보았습니다. 해 질 무렵 온통 노란 마을과 그 위로 드리운 하늘빛의 조화, 나뭇가지 사이로 밤하늘에 선명히 박히는 별들, 밤에만 들려줄지 모르는 다채로운 자연의 소리들'이번엔 그냥 가지만 다음에는 꼭 사진에 담아 오리라' 변명같은 다짐을 합니다.

 

속도는 병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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