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수첩 찍기의 함정

나이스가이V 2015. 1. 18. 16:30

수첩 사진 한 컷의 파장이 큽니다.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이 한 매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한 메모가 적혀있었고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누가 그러길래 그냥 적었는데 그게 찍힌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날 저도 본회의장에 있었지만 김무성 대표를 주시할 이유는 딱히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물 먹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끔 국회 본회의장에서 찍힌 의원들의 메모나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이 이슈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국회 본회의가 열리면 뒤쪽 2층에서 의장석 방향을 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국회의원들 역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 때문에 사진기자들은 의원들의 뒤쪽에서 내려다보게 됩니다. 인터넷으로 무엇을 검색하는지, 무슨 자료를 읽고 있는지, 휴대폰으로 무슨 문자를 보고 있는지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습니다. 망원렌즈와 고화질의 카메라가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정치인들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민감합니다. 본회의장에서 뒤에 진을 치고 있는 사진기자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의원들이 누드 사진이나 불륜을 의심하게 하는 문자를 보다 걸린 경우야 다르겠지만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찍히는 동시에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그 의도성에 의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일부러 찍힐 수 있지요. 수첩을 보는 동안 등 뒤에서 들려오는 셔터 소리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고의성을 의심받아도 아니다. 몰래 수첩을 찍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하면 달리 더 확인할 방법도 없습니다.

 

이번 수첩 사진은 전 신문과 방송에서 받아썼을 만큼 파급이 컸습니다. 한 매체의 특종은 나머지 수많은 매체의 낙종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낙종의 뒤끝은 불 보듯 뻔합니다. 사진기자들의 카메라가 정치인의 수첩과 문자메시지를 더 주시하겠지요. 이를 모를 리 없는 정치인들이 아주 조심하거나 반대로 적극 이용할 수도 있겠지요. 정치인들에게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는 이미 정치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의도된 행위에 카메라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확인되지 않는 의도 앞에 안 찍을 방법이 없습니다

 

수첩 사진을 찍은 매체의 사진기자에게 직접 사진 파일을 받아 제공사진으로 경향신문에 썼습니다. 이 기자는 김 대표가 1~2초 정도 수첩을 펼치는 순간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그는 어떻게 김 대표를 찍을 생각을 했을까, 나는 왜 못 했을까, 내가 찍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한 번에 밀려들었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텍스트를 찍은 사진은 글입니까, 사진입니까. 사진 안에 글자를 넣는 것을 피하는 추세입니다만, 국회에서 찍힌 이런 글들은 늘 예외입니다. 이미지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것과는 달리 수첩 글이나 문자메시지가 사진에 담기는 순간 더 강력한 증거와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다루는 자로 좀 혼란스런 대목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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