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시나리오 사과

나이스가이V 2014. 12. 15. 21:55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12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과 승무원 하기’ 논란에 대해 사과를 했습니다.

 

조 회장의 회견 속보에 대한항공 본사 로비로 기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두 시간 후쯤 조 전 부사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인근 국토부 조사실로 출석할 예정이었기에 혹시 조 회장 부녀가 함께 사과회견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합니다. 사진기자들의 상상은 날개를 답니다. ‘회초리를 들지 않을까...’

 

3면이 기자로 둘러싸인 로비로 조양호 회장이 걸어 나왔습니다. 선채로 잠깐 앞을 주시하더니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사과문을 천천히 읽어가다 다시 인사를 했습니다. 이날 사과 회견 동안 대여섯 번 정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살면서 90도 인사를 얼마나 하셨겠습니까.

 

 

조 회장과 대한항공 측은 증폭되는 논란을 정리할 수 있는 오너의 유례없는 큰 사과라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본 저는 그 사과에 진정성은 빠졌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사과에 익숙지 않아서겠지만 조 회장은 준비된 각본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손에 쥔 사과문을 보았습니다. 기자들에게 나눠준 사과 원문과 달리 회장이 든 사과문에는 끊어 읽기 표시와 파란 글씨의 지문도 곁들여져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사과라지만 길지 않은 글을 굳이 또박또박 읽어야 했을까 싶었습니다. 글을 읽는 데 집중하느라 표정으로 드러낼 수 있는 사과의 진정성도 보이지 못한 회견이었지요. 조직의 매뉴얼대로 했겠지만 이미지와 서비스를 파는 대상인 국민과의 거리만 확인한 셈이였습니다. 

 

 

이런 사과가 사진으로 전달될 때 독자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과를 하고 있다라고 사진설명에 썼지만 사과문을 읽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캡션이지 않았을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진정성은 읽히지 않았다'라는 캡션은 어땠을까요.

 

여하튼 요즘 기자들 참 바쁩니다. 국회가 12년 만에 예산안을 싸움 없이 통과시켜 좀 조용하다 싶었더니, 국정농단과 땅콩리턴 논란으로 정신이 없습니다. 수시로 검찰에서 자리싸움과 뻗치기로 연말을 뜻 깊게(?)보내고 있습니다. 연말에 들뜨지 않고 얼굴이 피곤으로 누렇게 뜨고 있지요. 노고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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