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식겁한 날

나이스가이V 2014. 8. 7. 18:30

어제 아침 ‘오늘은 조심해야지하고 휴가 뒤 첫 출근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 때 외우는 징크스 같은 주문입니다. 몸 다치거나 '물'을 먹거나 하는 것을 조심하자는 의미지요. 결과적으로 이날 정말 식겁했습니다

 

군 사망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국방부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국방부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위병들이 철제문을 닫아걸었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철제문을 부여잡고 오열했습니다. 그때 한 어머니가 철제문을 타고 올라 고함을 질렀습니다. 저는 뒤쪽에 서서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를 끼고 이 장면을 담았습니다. 잠시 뒤 뷰파인더 안에서 이 분이 제 쪽으로 떨어지더군요. 그 짧은 순간에 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 찰나의 상황에 비해 생각이 조금 더 길었던 탓인지 피하지 못했습니다. 들고 있던 카메라를 치우면서 떨어지는 이 어머니를 몸으로 받은 상황이 되었지요. 왼쪽 어깨에 걸린 다른 한 대의 카메라는 옆으로 튕겨져 나갔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카메라에 부닥친 입술 부위와 무게와 속도에 눌린 허리춤이 괜찮은 지 가늠해 보았습니다. 주위의 모든 시선은 바닥에 누운 어머니에게 갔고 누군가는 그새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 그 어머니는 일어났습니다. 사진기자 사정은 사진기자가 안다고 옆에 있던 타사 선배가 괜찮나. 니 아니었으면 저 아주머니 큰일 났을 거다라고 말해 주더군요.

 

놀란 마음이 진정되고 그제야 생각했습니다. 만약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다면 반사적으로 피했을 것이고, 이 어머니가 절규하며 철제문을 잡고 흔들다 윗부분이 부러지며 머리부터 떨어진 상황이라 그 충격은···. 큰 사고가 났다면 비겁하게 피했던 제가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카메라를 들여다보면 거리감과 현실감이 좀 떨어지는 것이 도움이 된 것이지요. 큰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었지요.

 

살면서 다시 이런 시험에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yoonjoong


'사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건 위로였을까?  (2) 2014.08.17
'4시간 16분 동안의 사진전'  (0) 2014.08.14
사진가 노순택  (0) 2014.08.06
버리지 못할 사진  (0) 2014.07.28
고마워요 샤이니  (34) 2014.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