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아웃포커스를 허하라'

나이스가이V 2013. 10. 28. 07:30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배제된 윤석열 전 팀장이 국정감사에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사진기자의 카메라가 향할 대상은 자명합니다. 

 

다음날 황교안 장관은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23일자 경향신문 1면을 포함해 몇몇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 뒤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황 장관의 사진을 게재 했습니다. 전날밤 청와대에서 이 사진을 다른 사진으로 교체해 달라고 했다더군요. 사진 앵글 왼쪽에 있는 박 대통령의 얼굴이 아웃포커스됐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파문이 커지는 국정현안에 침묵하는 대통령과 수사 외압 의혹에 함구하는 황 장관을 한 컷에 잘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청와대에는 보통 신문사의 고참급 사진기자가 출입합니다. 생각해보면 그 한 컷의 사진은 뉴스에 대한 해석과 기다림 그리고 순간적 포착 등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응축된 것이지요황 장관의 표정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당연합니다. 한편 산전수전공중전의 경험을 가진 사진기자도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과 황 장관을 둘 다 또렷하게 찍을 방법은 없습니다. 망원 렌즈의 기계적인 특성이 그러하기 때문이지요.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을 바꿔달라며 청와대가 저자세로 사정을 하는 모양새였을지라도 최고 권력을 쥔 곳의 전화 한 통은 묵직한 압력이 아니겠습니까. 그 밤에 여러 신문사에 전화를 돌렸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몇 신문이 교체하지 않고 사진을 썼습니다. 간밤의 요구는 이미 지난 일이 되었습니다만, 이런 경험이 학습이 되고 은연중에 사진에 대한 자기검열이 이뤄진다면 앞으로가 더 끔찍할 것 같습니다. 

 

현안에 둔감하고 사진에 민감한 청와대의 모습이 씁쓸합니다.

대통령의 모습이 아웃포커스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정부가 침묵으로 포커스아웃 시키는 것들이 문제가 아닐까요.

 

yoonjoong

'사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울림 김창완의 주름  (3) 2013.11.08
사진기자의 한국시리즈  (0) 2013.10.31
그냥 노동입니다  (0) 2013.10.22
사진 편집의 묘미  (2) 2013.10.18
진정성을 가르쳐 준 시인  (0) 2013.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