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안녕하지 못한 이유

나이스가이V 2013. 12. 26. 08:00

지난 일요일 아침 선배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도착한 회사 앞은 경찰, 철도노조원 등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입사 이후 정동길이 이렇게 밀도가 높았던 적은 본적이 없습니다. 회사 신분증을 내밀며 인파를 비집고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로비에서 상황을 지켰습니다.

 

현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노조원이 대치했습니다. 철도노조 간부를 연행하려는 경찰의 경고 방송과 노조원의 구호가 뒤섞였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경찰 체포조가 현관 유리문 앞으로 바짝 다가섰습니다.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밀어 붙이는 경찰에 노조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여의치 않았던 경찰은 망치 등을 동원해 현관 바깥쪽 유리문을 부수고 유리문 사이에서 저항하던 노조원들을 연행됐습니다. 내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다시 힘겨루기를 하던 중 경찰은 벌어진 문틈으로 노조원들의 얼굴을 향해 최루액을 발사했습니다. 게임을 하듯 쏘았습니다. 최루액 총질 앞에서 노조원은 인격체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최루액을 피하지 못해 그 매운 맛에 눈을 한참이나 뜨지 못했습니다.

 

 

                                                                                                           김정근 기자 취재사진

 

 

 

 

밀어붙이는 경찰과 버티는 노조원들 사이에 다시 119구조대의 특수장비가 동원되고 내부 유리창마저 깨졌습니다. 경찰이 들이닥치는 동안 뒤로 바짝 물러난 노조원들이 서로의 팔짱을 끼고 스크럼을 짰지만 서너 명의 경찰이 한 명씩 붙들자 힘이 소진된 이들이 더 견디지 못하고 한 명씩 끌려나갔습니다.

 

최루액이 무자비하게 발사되고 경향신문이라 써진 현관문이 무기력하고 깨지고 노조원들이 무차별적으로 연행되는 과정을 보며 씁쓸하고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지나고 생각하니 참 분노해야 할 상황에 너무도 차분하게 사진을 찍어댔다 싶었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이겠지요. 그 순간은 반드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사건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해야할 요즘, 잠을 한참이나 못 잔 것처럼 예민해지고 또 찜찜하고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 저는 확실히 안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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