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어쨌거나 "하쿠나마타타~"

나이스가이V 2018. 7. 13. 15:10

조금 열린 차창으로 케냐 초원의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이게 초원의 냄새겠지. 바람을 한껏 들이마셨다. 멀리 초원 끝에 걸린 구름과 그 사이에 내민 저물녘의 태양, 붉어지는 하늘색에 압도되었다. “참 좋다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일 예상치 못했던 일로 가슴을 졸였던 첫 일정이 저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마무리 되고 있다는 것에 나름 안도했다. 그때 운전하던 사이먼이 오른쪽을 가리켰다. 초원의 웃자란 나무사이로 야생 얼룩말 무리가 지나고 있었다. “우와~” 환호했다. ‘이건 아프리카의 축복이야.’

 

  +해질녘 케냐 초원

 

시야를 가리지 않는 초원 위로 펼쳐진 하늘은 가늠할 수 없이 넓었다. 어디쯤인지 저 먼 곳의 하늘은 맑았고 일행이 달리던 거친 길 위의 하늘은 구름이 짙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주위가 서둘러 어두워져갔다. 전날에 이어 다시 비를 머금은 진흙탕 길은 얼음판처럼 미끄러웠다. 핸들을 움직이는 사이먼의 손이 분주하고 불안했다. 길 앞쪽에 비스듬하게 길을 막은 채 멈춘 버스가 헛바퀴를 돌리고 있었고 몇몇 마사이 승객들이 버스를 밀었다.

 

해가 졌고 갈 길은 멀었다. 사이먼은 가로막은 버스와 길 옆 깊은 도랑 사이 공간을 통과하려차를 몰았다. 아슬아슬 지나던 차는 미끄러지며 버스와 척 달라붙었다. 두 차량을 떼어놓으려 사이먼이 엑셀을 밟았고 마사이 남성 서너 명이 차를 밀어냈다. 왼쪽 앞바퀴가 급기야 깊은 진창에 빠지고 말았다. 장정들 여럿이 달라붙어 차를 밀었지만, 흙탕물만 잔뜩 뒤집어썼다. 주위는 깜깜했고 빗발은 굵어졌다. 난감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조난을 당한 것이다.

 

                  +조난 지점

 

   +이날 세번째 빠진 차량

 

저물녘 하늘이 유난히 좋더니만아프리카의 축복 운운하며 까불었더니

 

헛바퀴를 돌리던 버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승객을 태운 뒤 유유히 떠났다. 안내와 통역을 하던 마사이 여성 셀리나가 “(버스 탔던) 마사이가 집에 가서 사고소식을 전하고 도울 방법을 찾을 것이라 했다. ‘버스는 이 험한 길을 따라 언제 도착할 것이며, 그들이 제대로 연락을 취해 우리를 구할 것인가.’ ‘연락을 취하면 또 얼마나 걸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막막했다. 불신과 불안이 가득 차올랐다.

 

비에 젖은 몸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이 밤을 여기서 꼬박 셀 수도 있겠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무엇보다 다음날 일정이 어그러질 거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셀리나는 친구가 가까운 마을의 트랙터 가이를 불렀다고 했다. ‘부를 것이라는 건 지, ‘불렀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아듣지 못해 시간을 두고 몇 번을 확인했다. 그저 트랙터 가이가 올 것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 수밖에. “가까운 마을이라고 했지만, 마사이의 화법에서 가깝다라는 거리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진짜 와주기는 할까.’

 

빗소리는 거칠었고 주위는 칠흑이다. 보기 좋던 초원도 어둠에 싸이자 그저 막막한 어둠일 뿐이었다. 사방으로 작은 빛도, 인가의 단서도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이 일었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철저하게 무기력했다.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서 길을 향해서 차량 앞 유리창에 걸쳐뒀다. 누구라도 이 불빛을 조난의 신호로 봐주길 바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휴대폰의 손전등을 길을 향해서 차량 앞 유리에 올려뒀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검은 밤이었다. 이날 진창에 세 번째 차량을 빠뜨린 기사 아저씨는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웃었다. 그러고는 하쿠나~마타~~(스와힐리어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뜻)”를 읊조리며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이 양반이 정말.’ 속 타는 출장자들의 마음도 모르고 유쾌하고 여유롭기 짝이 없는 안내자 셀리나는 차 안에서 콧노래까지 불렀다. ‘지금 노래가 나오나?’

 

   +두번째 빠진 진창에서 차를 밀어올린 뒤.

 

  +셀리나와 사이먼

 

셀리나는 휴대폰을 붙들고 친구와 현지어로 긴 통화를 했다.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겠지싶으면서도 통화중에 짓는 표정이나 목소리, 웃음으로 짐작했다. ‘너 잡담하고 있니?’ 긴 통화 끝에 차에서 내린 그녀가 제안했다. “트랙터 가이가 올 때까지 인근 마사이 집에 가 있자는 것. 인가를 추정할 만한 불빛도 흔적도 없는데 휴대폰 손전등을 밝힌 셀리나가 앞장섰다. “트랙터가 곧 온다면서 왜 가는가?” 격앙된 어조가 빠진 채 건조하게 영어로 던져진 질문은 그냥 묻혔다. ‘마사이 가정에서 하루를 묵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누군지도, 어딘지도 모르는 마사이 가정으로 무작정 찾아가는 것이었다. 길 같지 않은 길을 비추며 셀리나는 초원을 향해 걸었다. 불안과 의심으로 신경이 곤두섰지만 화를 낼 처지도 못됐다. 전적으로 그녀에게 의지할 수밖에.

 

  +마사이 가정 찾아가는 길

 

 마법처럼 마사이의 집이 나타났고, 셀리나가 가까운 이웃집처럼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수바~” 인사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마사이 가족이 일행을 맞아주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늘 해오던 것처럼 당연하게반겼다. 작고 낡은 TV가 틀어져 있었고, 벽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두어 줄 장식처럼 걸렸다. 작은 화롯불 앞에서 떨리던 몸을 녹였다. 긴장도 의심도 따라서 녹는 듯했다. 세계 어디서든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의 방문은 큰 구경거리다. 잠들지 않은 서너 명의 아이들이 방의 커튼을 젖히고 신기한 듯 내다봤다.

 

 딱히 할 말도 찾지 못한 채 작은 거실에 앉아있는 동안, 막막함 속에서도 이 마사이 가족의 환대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문 밖을 내다보고 있던 사이먼이 멀리서 트랙터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가만히 귀기울여보니 깊은 어둠 속, 먼 곳에서부터 희미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희망의 소리를 확인해서인지, 그 순간 마사이의 환대가 한층 더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셀리나는 밤에 불쑥 찾아든 낯선 사람들을 집 안으로 들이고 대접하는 마사이의 따뜻한 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진창에서 우리를 구해 줄 트랙터 가이는 몸을 사리지 않고 진흙탕에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 조난 차량에 사슬을 걸었다. 믿음직했고 눈물겹게 고마웠다. ‘뭐지?’ 지금 이 구원의 순간에 구원자와 사이먼의 표정이 어두웠다. 트랙터와 조난 차량에 연결할 쇠사슬 고리의 사이즈가 맞지 않았던 것. ‘결국 여기서 아침을 맞아야 하는가?’ 초면에 막중한 미션을 떠안은 두 파트너는 끙끙대며 차량 아래 어딘가에 고리를 고정했다.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끌었다. 차는 그대로 둔 채 쇠사슬만 떨어져 나갔다. ‘다시 한 번. 다시 쇠사슬만 끊어지듯 튕겨져 나갔다. ‘여기까지구나.’ 세 번째 시도. ‘진짜 마지막이다. 제발차량이 구덩이 가장자리를 밟으며 길 위로 겨우 올라섰다. 우리는 일제히 환호했다. 숙소인 나이로비로 갈 길은 멀고도 멀었다. 다시 진창길을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트랙터 가이가 나타났다.

 

 구조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했다. 트랙터 사나이의 마을에 다리가 부러진 한 남성을 차에 실어 병원으로 옮겨주는 것. 고통스러워하는 남성의 신음을 들으며 포장도로에 진입한 차량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이로비는 오른쪽인데내일 일정은 어찌하나.’ 나이로비로 가는 도로가 끊어졌을 거라는 얘기도 들렸다. ‘나록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길고 지친 하루를 내려놨다. 하루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되뇌자 허탈인 듯 안도인 듯 웃음이 새 나왔다. 2주 출장의 첫날 일정이었다.

 

'그래도 길에서 아침을 맞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막막한 사고와 극적인 도움의 손길.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쿠나~마타~~”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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