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여행사진 그리고 발품

나이스가이V 2015. 2. 4. 08:00

데스크는 콧바람이나 쐬고 오라12일 트래블(여행) 출장 지시를 내립니다. 사진이 지면 절반을 차지하는 지면 특성상 콧바람의 여유나 설렘은 사실 없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부담을 갖고 떠나게 되더군요. 보통 여행지의 날씨에 민감합니다. 대체로 맑은 날이면 해가 뜨고 지는 주변의 시간 때에 빛의 변화나 빛의 색감으로 좋은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좀 높다는 것이지 좋은 날씨가 곧 좋은 사진을 담보하진 않지요. 완성도가 떨어지는 사진을 안 받쳐준 날씨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여행사진에서 날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발품입니다. 사진의 완성도에 발품은 상당한 기여를 합니다. 여기서 발품이라 함은 그저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발품에는 사진을 찍을 때 고려하는 수많은 조건과 요소들의 이런저런 조합을 고민하고 또 최적의 조합을 찾는 노력이 포함됩니다.

 

여행전문기자인 선배와 트래블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전북 익산 일대의 천주교 성지 등을 돌았습니다. 그중 120년쯤 된 아름다운 나바위성당을 메인으로 정했습니다. 이날 날씨는 흐렸습니다. 해질녘의 빛에 기대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해가 떨어지는 방향도 성당과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잔뜩 흐린 날이지만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겠지만 유난히 따뜻했던 이날엔 잠깐씩 비가 내렸지요. 날씨를 포기를 하면 예의 그 발품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성당 주위를 돌고 또 돌며 카메라를 이리저리 부지런히 대보았습니다. 한참 뒤 발품의 결과로 사진 찍을 포인트를 발견했습니다.

 

보물 상자가 묻힌 지점을 표시한 ‘X같은 지점이었습니다. 반 발짝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 그런 포인트였습니다. 석양은 진작 포기했고 밤을 기다려 야경을 찍는다면 반드시 이 자리여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성당이 가장 잘 표현될 지점이었지요. 날씨나 계절의 변화가 바로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는 한 이 자리가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가장 좋은 사진이 찍힐 확률이 높은 자리라 판단했습니다. 발품이 보답을 해올 때 쾌감이 있습니다.

 

트라이포드를 받치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부터 장시간 노출을 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때마침 저녁 미사를 시작한 성당 창을 통해 불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셔터 릴리즈를 누른 채 속으로 열, 열다섯, 스물 등을 반복해 세어가며 하늘이 완전히 까매질 때까지 찍었습니다.



사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색감도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습니다. 이제껏 찍힌 나바위성당 최고의 사진은 아니겠지만 이날 주어진 조건에선 저로서는 최선이었고 또 만족한 사진이었습니다. 밤에 잠을 편하게 잘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때로 마음 편하게 해주는 트래블 사진은 사진기자의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향신문의 트래블 지면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예전 경향신문 매거진 X’라는 섹션지면에 실렸던 트래블 사진을 보고 여행지를 찾은 다수의 독자들이 사진 속 그런 장소는 없더라고 했다는 '발품의 전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사진보고 여행가고 싶다는 마음만 들게 할 수 있다면 더한 바람은 없을 겁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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