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잠보~ 케냐'

나이스가이V 2015. 8. 19. 08:00

두바이 공항에서 케냐로 출발하기 전, 몇 달 먼저 케냐를 경험했던 후배의 카톡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나이로비 공항에서 경찰이 시비를 걸지 모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돈을 바라는 것이라는 뉘앙스였지요도착비자 서류 한 장 작성하고 비용으로 50달러를 지불하자 그냥 쉽게 통과됐습니다. 짐 가방을 찾아 끌고 나가는데 경찰이 막았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가방에 담배 있냐?” “담배 안 핀다.” “오케이.” 그렇게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별거 아닌데 카톡 문자에 괜히 쫄았던 겁니다. 경찰이 사람 봐가며 시비를 거는 것이라 결론지었습니다. ^^

 

 

 

숙소로 이동하며 극심한 교통 정체와 끔찍한 매연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프리카하면 초원과 밀림을 먼저 떠올리는 수준의 얕은 지식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량으로 시내로 향하는 동안 차창 밖은 온통 낯선 구경거리였습니다. 차창 밖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제 시선과 이를 더한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케냐인들의 시선이 부딪쳤습니다. 좌판에 과일을 늘어놓고 파는 이, 옷가지를 조금 쌓아둔 채 벽에 기대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이, 정체시 유용한 이동 수단으로 보이는 오토바이에 걸터앉은 이, 공사장에서 느린 곡괭이질을 하는 이 등과 차례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검은 얼굴에 유난히 흰 눈은 강렬했습니다. 차 밖이 궁금한 동양인들이 들어앉은 차 안은 이동하는 동물원이었습니다. 눈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며 빤히 바라보다가 매번 눈을 피하고 말았지요. 매연에 눈이 매웠던 겁니다. ^^

 

 

한인이 경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습니다. 높은 담과 철제 문 앞 경비 아저씨의 존재로 이 나라 치안의 심각성을 짐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은 아늑한 숙소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기장 쳐진 침대, 엔틱한 가구와 창틀창밖으로 우거진 나무 등이 근사했습니다. '괜히 불편한' 호텔과는 확실히 다른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취재 도움을 주기로 한 월드비전 현지 직원이 일정을 브리핑한 뒤 안전담당자의 별도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케냐에 대해 가난과 위험이라는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뒤 조심할 것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휴대폰을 거리에서 함부로 받지 마라며 윗옷 안쪽주머니 깊숙한 곳에 숨겨둔 것같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보였지요. “계산할 때 많은 돈 보이지 마라.” “몰에 오래 머물지 마라.”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 “차 창문 열고 있지 마라.” “눈에 보이는 귀중품 몸에 지니지 마라.” 이 모두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난 번 일어났던 나이로비 시내 백화점 테러를 언급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 안심하라면서 웃었습니다.

 

취재지역은 나이로비에서 4시간쯤 떨어진 마쿠에니 칼라와라는 곳이었습니다. 도심의 아침 출근 정체가 심각했습니다. 반대 차선에는 나이로비로 들어오는 화물트럭이 행렬을 이뤘습니다. 버스에서 쏟아져 내려 일터로 향하는 출근길 시민의 걸음이 분주했습니다. 대로를 너도나도 자연스럽게 무단 횡단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나이로비였습니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가 모호했습니다. 도시를 미처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가축 떼와 마주쳤습니다. 고층건물들이 사라지면서 허름한 단층의 상점들이 길을 따라 이어졌습니다. 강렬한 붉은 색과 초록색 등 원색의 컬러들이 낡은 건물들은 바라보는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검은 피부와 황토색의 땅과 이 원색들이 잘 어울렸습니다. 붉은 색과 초록색이 많은 이유를 현지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코카콜라의 빨강과 통신업체의 초록이라고 했습니다. 업체에서 페인트칠을 무료로 해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색의 근원을 물은 것인데 영어가 짧아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빨강은 피요, 초록은 자연의 상징이라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케냐에 왔으니 간단한 인사 정도는 예의지요. 간단한 스와힐리어를 익혔습니다. “잠보(hello)”, “아싼테(thank you)”, “하바리 야코(how are you)”, “므주리(good)”, “포레(sorry)”, “카리부(welcome)”, “꽈헤리(bye).” 간단한 단어지만 입에서 겉돌았습니다. 따라 발음하면 뭐가 재밌는지 현지인은 낄낄댔습니다.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요. “코리안 잠보가 뭐냐?”고 묻기에 .....”라고 또박또박 발음해줬더니, 글로는 표현할 수도 없는 웅얼거림으로 돌아왔지요. ㅋㅋ그런 재미 아니겠습니까.

 

 

칼라와는 월드비전이 후원하는 지역입니다. 마을의 자립을 돕고 궁극적으로 지역 아동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널찍한 황토색 비포장도로 좌우로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거친 길을 따라 듬성듬성 집이 나타났습니다. 한 농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뭘 먹고 사는지를 보기 위해서지요. (경향신문 8월18일자 기획시리즈 '지구의 밥상 - 가뭄이라는 아이(케냐편)'참고) 

 

 

 

안주인은 벽돌을 쌓아 만든 부엌에서 불씨를 불어서 살린 뒤 솥 하나를 돌 사이에 걸었습니다. 쾌쾌한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옥수수와 붉은 콩 등을 섞어 끓인 뒤 두어 그릇 퍼냈습니다. 그리고 일곱 개의 숟가락이 그 위에 얹혔습니다. 일곱 식구는 최소한의 밥을 짧은 시간에 먹었습니다점심식사였습니다. 작은 규모의 농사지만 직접 키운 것을 따고 말리고 삶아서 먹는 식사는 초라해 보여도 어떤 경건함이 배어 있는 듯 했습니다.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최소한의 끼니에도 행복이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너무 많이 먹고 사는구나하는 반성을 하게 됐지요.

 

 

 

 

 

 

이 집 막내 꼬마에게 사탕하나를 꺼내 주었습니다. 아이는 작은 사탕 봉지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지요. 뜯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사탕을 먹어 본 적이 없었나?’ 싶어 좀 짠해졌지요. 한편 아이에게 사탕을 주는 모습을 아이의 부모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신경도 쓰였습니다. 문화와 정서를 모르니 행동 하나하나가 상처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습니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선했습니다. 무표정하게 일행을 바라보는 남성들은 다소 무서워 보이기도 했지만 먼저 손 내밀며 잠보~”하고 짐짓 발랄한 표정으로 인사하면 열에 아홉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수줍게 손을 잡았습니다. 먼저 다가가면 표정 없던 얼굴이 금세 환한 웃음으로 덮였지요. 사람 사는 세상이 다르지 않습니다.  

 

칼라와 취재일정을 마치고 작별의 시간을 앞에 두고 월드비전 현지 직원들과 우리 일행은 보고 느낀 것, 서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나눴습니다. 이틀이면 한국인과 케냐인 사이에 작지 않은 정이 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시 만나자"는 왠만해선 지켜질 것 같지 않은 약속으로 헤어짐의 아쉬움을 다독였습니다. 악수와 포옹으로 앞날의 행운을 빌었습니다. “브라더” “프렌드라는 진심 섞인 단어들이 귀전에 전해졌습니다. 헤어질 때 비로소 만남의 인연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도대체 이 지구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확률은 얼마이며 그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평생 한 번 갈까말까 한 케냐에서 가까운 사파리도 못가 볼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보냈습니다. ‘미련했다는 것을 한국에 와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깨닫고 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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