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큐

전교생 2명, 산골분교 이야기

나이스가이V 2014. 3. 31. 07:30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오면 강원도 어딘가 산골분교를 취재해 다큐 지면에 실어야겠다고 일찌감치 마음먹었습니다. 가슴에 담고 있는 사진 한 장 때문입니다. 강재훈 사진가의 들꽃 피는 학교, 분교사진집에서 본 사진이지요. 조회 시간인 듯 작은 조회대 위 선생님과 아래에 선 학생 하나. 차렷 자세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웃는 아이. 가슴 먹먹해지게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본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만, 길게 마음 한켠에 간직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강원도 교육청에서 올해 입학생이 없는 강원도 내 분교의 자료를 받았습니다. 몇 군데 학교로부터 연달아 정중한 거절을 당했지요. 쉽지 않은 섭외에 다소 의기소침해져 학교 자료를 초점 없이 멍하게 바라보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학교. 인제초등학교 가리산분교. 이상하게도 취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왔습니다. 교사와 본교 교장선생님 허락까지 득했습니다. 이른 봄바람이 살랑거리던 날 가리산분교를 찾았습니다.

 

지난 2006년 인제에 큰 물난리가 나 고립됐던 마을의 분교였고, 그해 말 관련 취재를 위해 일대를 헤집고 다니다 잠깐 취재차를 댔던 기억이 있는 학교였습니다. 이런 걸 인연이라 하지 않나요? 취재 의지가 살짝 꺾일 무렵 극적으로 눈에 들어왔던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

 

 

<전교생 2명, 인제초등학교 가리산분교의 봄>

 

바람에 봄기운이 실려 오던 지난 17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초등학교 가리산분교를 찾았다. 인제읍내에서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따라 차로 30분 쯤 가면 닿는 아담한 분교다.

 

등교시간이 되자 선생님이 학교 밖에 나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올해 3학년인 세욱이는 인근 다리까지 아빠 손을 잡고와 선생님을 보자마자 누렁이(학교 뒤뜰에서 키우는 개)’(집에서 키우는) 수탉 꽁지를 다 물어 뜯었어요하고 전날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풀어 놓았다. 조금 뒤 같은 반 선빈이가 포터 트럭에서 서둘러 내려 누렁이를 한참 쓰다듬은 뒤 해맑게 웃으며 선생님 손을 꼭 잡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을 양쪽에 쥐고 도란도란 얘기하며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전교생 두 명, 교사가 한 명인 산골학교의 하루는 평온하게 시작됐다.

 

교실 가운데는 널찍한 책상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앉았다. 오붓하게 진행되는 수학시간. 교사는 바로 옆에서 아이들의 세 자릿수 뺄셈을 지켜보다 가끔 교탁 앞으로 나가 수식을 써서 설명했다. 선생님의 자리는 교탁이 아니라 아이들 사이였다. 수업에 속도감은 없다. 하지만 딴 짓하는 아이도, 수업에서 소외되는 아이도 없는 이상적인 수업이었다. 이어진 음악시간에 아이들은 장구의 옆줄을 조이면 달라지는 소리를 신기해하며 선생님의 ~더 쿵 덕장단에 맞춰 흥을 돋웠다.

 

 

 

음악시간이 미처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교사와 학생들이 교실을 나서고 있었다. 그제야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챘다. 겨울을 밀어내는 포근한 바람이 간질이자 아이들이 조른 모양이다. 즉흥적인 야외수업. 손에 책은 없었다. 초록으로 올라오는 새순을 만져보고 주위로 날아든 나비를 소리쳐 반겼다. 개울가에서 잠 깬 개구리도 쥐어 보았다. 신이 난 아이들은 다가오는 봄을 오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해발이 높고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의 실내는 싸늘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송사리를 잡으러 갔다 온 선빈이가 교실에 들어서며 한쪽 구석에 깔려있는 전기장판으로 파고들었다. 세욱이도 선생님도 한 이불을 덮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국어수업. 책 속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보다 괜찮은 분위기는 없을 듯했다.

 

 

낯선 수업 풍경이지만 놀이 안에 공부가 있다는 오세황 교사의 교육관이 수업 곳곳에 반영돼 있었다. “아동시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이 충분히 누리면서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오 교사의 바람처럼 아이들의 말과 표정과 행동에서 행복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내게 선빈이는 손수 예쁘게 색칠한 솔방울을, 세욱이는 고로쇠 물 한 통을 선물로 내 놓았다. 아이들의 따뜻한 정을 받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따라붙는 긴 여운은 아이들에게 감염된 행복 바이러스가 아닐까.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