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제주의 바람이 된 김영갑에 빠지다

나이스가이V 2017. 7. 18. 13:14

사진가 김영갑(1957-2005)의 에세이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 앤 북스, 2015)를 읽었습니다. 그의 사진과 삶을 살짝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삶과 사진에 빠져들었습니다.

 

김영갑은 스스로를 고독과 외로움 속으로 밀어 넣은 사람입니다. 오직 사진만을 생각하도록 삶을 몰아붙였습니다. 좋은 사진은 그러한 조건에서 건질 수 있다는 듯 말이지요. “(사람과) 어울리면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하는 그는 사람보다 사진에 몰입해 있는 시간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무료함을 끌어안고, 그 무료함을 극복하기 위해 사진에 푹 빠져든 것이지요.

 

 

그는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사진은 수행의 도구였지요.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정신 나갔다고 혀를 찬다. 그래도 나는 웃는다.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밥벌이를 못한다고 핀잔을 주어도 웃는다. 그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뭐했냐고 다그쳐도 웃는다.” “마음이 무겁다. 필름도 인화지도 끝이 났다. 쌀도 바닥났다. 한바탕 크게 웃어본다. 벼랑은 아직 멀었다고 위로한다.” 정말 웃음이 나와 웃었을까 싶습니다. 실은 고통이며 심한 갈등이었으나 글에만 반어적으로 웃는다고 쓰지 않았을까 의심도 해봅니다. 사진가의 삶에서 사진이 그 정도까지 일 수 있을까, 거기까지 가야하나, 묻게 됩니다. 답답하고 미련한 그를 이해하려 노력해야했습니다.

 

신문도 텔레비전도 없이 사진만 찍고 살았는데도 보여줄 것이 없다. 남들이 굳이 보여 달라고 보채면 세상을 보았고 삶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대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사람들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돈이나 명예다.”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며 사진에 목매는 그를 안타까워했고 그는 만족하지 못한 자신의 사진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뭍사람인 김영갑은 제주도에 빠져 눌러앉았습니다. 20년 동안 제주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사진에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주의 바람이 사진에서 훅~하고 불어나옵니다. 궁금했습니다. ‘바람을 표현한 것일까. 그의 앵글 속으로 바람이 끼어든 것일까.’

 

그는 답합니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 안개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그는 셔터를 누르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순간을 위해 같은 장소를 수없이 찾아갔습니다. “사진 속 표현된 분위기는 사진가의 감정(마음)을 통과한 선택된(해석된)분위기라는 그의 사진은 시인이 고통 속에 만들어내는 시어와 다르지 않습니다.

 

김영갑은 1999년 루게릭병을 얻습니다. “이제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 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아마 그에겐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 몸이 굳어가는 육체의 고통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아팠을 테지요. 신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무언가에 빠져있을 시간의 총량을 정해놓은 것일까.

 

사진 갤러리를 만들기로 작정한 그는 폐교를 개조해 2002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열었습니다. 사진의 장인 김영갑은 투병 6년만인 2005년 제주에 안겨 잠들었습니다. 그의 유골은 갤러리 마당에 뿌려져 그가 사랑했던 아니, 바로 그였던 제주의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신화가 된 사진가 김영갑. 그의 갤러리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그가 자신의 삶과 영혼의 기록이라는 사진을 보고 싶습니다. 또 제주의 자연에서 그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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