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진정성을 가르쳐 준 시인

나이스가이V 2013. 10. 14. 08:00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강조되는 만큼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라는 얘기겠지요. 뜻을 알고도 모호한 이 단어가 사전이 아닌 한 사람의 표정과 몇 마디의 말로 각인됐습니다. ~ 이게 진정성이라는 것이구나하고 말이지요.

 

지난 주 남원 만행산 귀정사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투쟁 현장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사회연대쉼터인 인드라망이 있는 곳입니다. 개원을 앞둔 이 쉼터 구성원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중에 거리의 시인이라 불리는 송경동 시인이 있었지요. 희망버스 기획으로 투옥되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낸 그는 올 2월 이곳에 와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를 현장에서 여러 차례 봤지만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눈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뒤 서울 간다며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그가 따라 나왔습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오셔서···" 송 시인은 취재차량에 바짝 붙어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얼굴에 새겨진 미안함이라는 표정이 그렇게 구체적이고 또렷할 수가 없었지요. 서너 시간 남원으로 달려왔다가 금세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야하는 것이 모두 자기 탓인 것처럼 말이지요. 송 시인은 잠깐만요라고 하더니 공양간 같은 곳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허겁지겁 다시 뛰어 나오더니 더 안타깝고 미안한 표정으로 지난번에 따 둔 감이 하나도 안 남았네요.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 나눠줘 버려서···”

 

차가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송 시인은 홀로 오랜 배웅을 하고 서있었습니다. 그때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인드라망 구성원을 취재하고 서울로 가는 저의 작은 수고로움에도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정성과 배려에는 진실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 침잠된 감수성의 크기를 짐작했습니다. 그런 그가 노동자와 철거민 등 이 사회를 살아가는 약자들의 내몰린 삶에서 느꼈을 연민과 고통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연민의 인간, 연민의 시인 송경동. 그의 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화하는 것이겠지요.

 

거리에서 그가 시를 낭독하던 모습을 기억하지만 정작 그의 시를 알지는 못합니다. 시집을 읽어봐야겠습니다. 그의 시에서 다시 한 번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사진 김기남 기자

 

그의 시 한편을 붙여 봅니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스물여덟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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