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찰나를 기록한다는 것

나이스가이V 2013. 3. 13. 12:52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딱 그때 그 순간이 아니면 언제 다시 찾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있지요. 사진 찍기를 업으로 하는 저는 바로 그 순간에 카메라가 없으면 두고두고 아쉬워합니다. 카메라가 있음에도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그 아쉬움은 더 하지요.

 

카메라를 들고 일부러 찾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이, 카메라가 없을 때 눈에 들어와 박혀 애타게 하는 경우가 잦은 것을 보면 사진은 마음 비우기에서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82일간 미국 체류를 끝내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던 날.

입국장을 바라보며 사다리를 밟고 서서 안 전 교수를 기다리다 곁눈질에 들어온 장면입니다.

재밌네하고 서너 컷을 찍었습니다. 판단하고 찍는데 2초쯤 걸렸을 겁니다.

 

 

광고판 속 구두 신은 여성들의 다리 위에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들이 서서 입국장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일부러 그리 선 것처럼 정확히 여성의 다리 위에 섰습니다. 그들이 밟고 있는 곳도 공항 내 2층 이쪽에서 저쪽을 잇는 다리지요. 다리 위에 다리 위에 다리라. ㅎㅎㅎ혹시 저만 재밌는 겁니까? ^^

 

조금 오버하겠습니다. ^^ 저는 이 사진을 보며 결정적 순간의 미학,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대표작 <생 라자르 역 뒤에서>를 떠올렸습니다. 아시죠? 물웅덩이를 폴짝 뛰어넘는 남성을 찍은 작품. 들인 정성이나 명성이나 앵글은 그의 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다시 반복되기 힘든 우연한 상황인 것은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순간을 잘라서 기록한 것도요.

 

 

세월이 흘러 '안철수'라는 이가 대한민국 정치사에 굵은 족적을 남길 때, 다시 이 사진을 꺼내 본다면 재미를 넘어 훨씬 더 많은 얘기가 딸려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록하지 못해 아쉬웠던 상황들이 떠오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기록되지 않고 흘러가버리는 '결정적 순간'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겠지요. 생각만 해도 안타깝고 아깝습니다. 이쯤되면 병이지요? ^^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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