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달콤 씁쓸한 탄핵

나이스가이V 2017. 3. 13. 16:18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됐습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날, 저는 헌재 인근 안국동 거리에서 선고 생방송을 지켜보는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가 무대 위에 설치된 화면에서 흘러나왔지만 잘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휴대폰을 통해 방송을 지켜보는 세월호 가족과 주위에 모인 시민들의 표정으로 선고 상황을 짐작했습니다.

 

처음 얼마간 환호로 시작한 선고가 탄식과 함께 무겁게 변해갔습니다.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세월호 관련 선고 내용이 간간이 들려왔고 유가족들은 얼굴을 묻었습니다. 기각인가? 이어지는 선고 결정문에서는 문장마다 환호가 터졌습니다. 그 속에서 비교적 또렷하게 이 재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눈물짓고 얼싸안은 시민들과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보며 뭉클했습니다. 어깨를 걸고 함께 이룬다는 것은 무엇이든 감동이지요. 그게 국정농단으로 엉망이 된 나라를 바로 잡는 큰 걸음이라면 그 무게와 감동의 크기는 차원이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청와대 행진을 따라갔습니다. 오가며 마주치는 사진기자 선후배들과 그간 노고를 격려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료들이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박사모 등 친박 단체의 탄핵 반대 집회에서 연합뉴스 동기가 누군가 내리치는 사다리에 머리를 맞았다 했습니다. 누가 다치고 누군 실려 갔다는 소식이 속속 알려졌습니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는 순간 박사모 등 반대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이 시작됐습니다. 마주보고 선 사진기자들은 가장 가까운 공격의 대상이었지요. 기자를 골라서 폭행을 가했다고 하니, 카메라를 든 사진기자는 명확한 공격 대상이기도 했지요. 일부는 사다리와 쇠파이프를 휘둘렀습니다. 동료기자들이 찍히고 밟히고 집단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카메라를 훔쳐 달아나는 이도 있었답니다. 도대체 이 폭력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뭡니까


 

  세계일보 하상윤 기자 sns

 

이제 막 비정상 권력의 불의를 도려내는 성취를 맛보았습니다. 외신들도 일제히 수준 높은 한국의 시민의식, 평화적 시위, 민주주의의 모범에 찬사를 보냈지요. 그러나 한쪽에서는 집단 광기와 감정적 배설의 폭력 시위를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제 동료를 향한 철제사다리 폭행 영상을 수차례 봤습니다. 운 좋게 크게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지만, 이는 명백한 살인미수지요. 그 살벌한 공격은 바로 저를 향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언론에 항의하고 비난하는 것은 보장된 자유지만 기자를 대상으로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것은 용납도, 용서도 되어서는 안 되지요.

 

친박 단체 사이에서 사진기자 선후배들이 폭행을 당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쯤 저는 촛불시민들 사이에서 한 참가자로부터 막대 사탕을 받았습니다. 그는 탄핵이 되었으니 달달하게 마무리 하자며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사탕을 돌렸습니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사탕과 폭행.

간극이 커 보이는 두 단어에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진기자들의 달콤하고도 씁쓸한 현실이 들어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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