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청와대 제공사진 유감

나이스가이V 2017. 1. 3. 17:17

새해 블로그 첫 포스팅은 국정농단 사태에서 아주 먼 얘기, 다소 희망적인 어떤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보는 시야가 워낙 좁다보니 안 되는군요. 여전히 어수선한 세상과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신년 첫 신문에 직무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신년인사회를 하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이날 간담회 참석 기자들에게 카메라와 노트북, 휴대폰을 들고 오지 말라고 했다지요. 참 가지가지 합니다.

 

사진은 청와대 전속 사진사가 찍어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모두 6컷을 제공했습니다. 사진을 보니 기자의 카메라를 통제한 이유가 보였습니다. 하나같이 널널하게전체를 보여주는 사진이었습니다. 한 장이면 족할 사진을 여섯 장이나 올려놓고 다양하게 제공했다고 우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청와대의 철저한 검열을 통해 제공된 사진이겠지요.

 

  <청와대 제공>

  <청와대 제공>

 

당번제로 취재하는 출입 사진기자가 간담회를 이런 식으로 찍어서 올렸다면 각사의 항의가 빗발쳤을 테지요. 사진기자라면 이날 대통령의 표정을 중심으로 여러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그리며 다양한 사진을 챙겼을 겁니다. 얼굴에 주사 바늘 자국까지 까발려지는 카메라에 대한 공포였을까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 드러났을 때 각종 의혹에 대한 이날 대통령의 반박들이 묻힐 수 있다는 우려를 원천차단하자는 계산이 깔렸을 것도 같습니다.

 

사진 속 대통령은 두 손으로 제스처를 써가며 얘기하고 주위에는 참모들과 기자들이 둘러서서 대통령을 바라봅니다. 사진은 난 여전히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청와대가 사진을 통해 그리 말하더라도 상식있는 국민들은 대통령의 뻔뻔함으로 읽겠지만요.

 

대통령에 대한 취재는 경호 등의 이유로 기본적으로 제한적이고 통제적입니다. 이미지와 영상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라 통제가 한층 더 노골적이라 느껴집니다. 제공사진에는 지가 아쉬우면 쓰겠지하는 심보가 느껴집니다. 그 기저에는 사진은 다루기 쉬운 것, 부수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공사진은 합리적으로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로 국한 되어야지요. 입맛에 맞는 몇 컷을 주고 쓰라는 것은 보도통제이자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시대를 거스르는 이런 발상들이 지금 국정농단 사태를 견인하지 않았나요.

 

박 대통령이 퇴진한다고 이러한 통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 대통령이 됐을 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통제가 작동한다면 그 안에 국정농단의 싹은 언제든 자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촛불 이후의 바뀐 세상을 얘기합니다. 사진기자들이 대통령을 향해 자유롭게 카메라를 들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사진기자가 찍은 그 사진이 무슨 얘기를 하든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더 바랄 것 없겠습니다.

 

  <청와대 제공>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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