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카메라를 내려놓다'

나이스가이V 2016. 11. 24. 14:20

어제(23) 국방부 청사에 모인 사진기자들은 취재를 거부하며 일제히 카메라를 내려놓았습니다.

 

이날 사진기자들은 ·일 군사정보보호협정공식 서명식의 일방적인 비공개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방부에 항의했습니다. 장소가 협소한 이유라면 풀 취재(POOL, 대표 취재해 전체가 공유하는 취재형식)’를 하더라도 언론 공개, 즉 기자 입회를 요구했지요. 국방부 측은 "일본 측의 요구다. 사진을 제공해주겠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협정에 대한 기자들의 해석과 표현을 원천차단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제공하겠다는 의미죠. 공보 담당자들은 계속되는 기자들의 항의에 맘대로 하라” "사진 제공도 하지마"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즉시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밀실 서명일본 측 대표인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들어설 출입문 앞에 사진기자들이 줄지어 섰습니다. 그리고 발 앞에 카메라를 내려놓았습니다. 사진기자가 된 후 사진으로 이런 식의 집단항의를 두어 번 본 적이 있습니다만 직접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일본대사도 이런 상황 처음이었겠지요. ‘이건 뭔가?’하는 당황한 표정이 스쳤습니다.

 

 

이 사진은 대부분의 언론매체에서 인용·게재되었습니다. 협정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지요. 감추려했던 졸속·밀실 서명식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셈입니다.

 

사실 H신문의 K선배가 이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저 일본대사가 청사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만 찍고 조용히 흩어졌을 겁니다. K선배는 협정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가적 사안의 협정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되는 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국방부에서 설치한 포토라인 뒤에서 곱게 자리 잡고 있던 후배들에게 왜 이 부당함에 가만있느냐라 꾸짖는 것이었지요. ‘언론 통제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진 후배들을 흔들어 깨웠던 것이지요. 사진기자가 왜 존재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사각 프레임에 현장을 담아야 하는 기자들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현장을 기록해 사진뉴스를 생산해야 할 자들이 뉴스의 대상이 된 씁쓸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지요. 모든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놓고 있는 중에도 바로 그 현장을 기록하는 한 대의 카메라는 셔터소리를 냈습니다. 기록이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조차 2016 어느 날 한·일 양국의 역사가 되겠지요.

 

카메라를 내려놓고 벌인 무언의 항의는 어떤 격앙된 발언보다 훨씬 더 강한 메시지로 또 그만한 무게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진기자들이 취재를 거부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존재 이유인 취재의 권리, 현장 기록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던 겁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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