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든 혜윤씨

나이스가이V 2017. 8. 22. 08:00

혜윤씨가 눈에 띄었습니다. 묵직한 디지털카메라와 앨범 사진을 펼친 나이 든 사진사 아저씨들 사이에서 가벼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든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경희대 후기 졸업식장. “폴라로이드 사진 찍으세요~” 혜윤씨가 외쳤습니다. 인파 속에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습니다. 즉석사진을 내밀 때마다 활짝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졸업식장에선 낯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든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뭣이 됐든 가벼운(?) 온라인 기사 하나 쓸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생각보다 인기였습니다. 다시 인화할 수 없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사진이라는 매력때문일까요.

 

 

 

 

 

혜윤씨는 이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전화 통화에서 그녀는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젊은 취향의 꽃다발을 팔려다 폴라로이드를 선택했습니다. "‘중고나라에서 카메라와 필름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쓴 다음 다시 내다팔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장 당 1000원쯤 하는 필름을 판매자와 흥정해 가격을 절반쯤으로 떨어뜨렸다고 했습니다.

 

 

 

 

목에 걸고 다니던 사진 가격표가 인상 깊었다고 하니, “게시 기간이 지난 공모전 포스터를 떼어다 어제밤에 급히 그렸다"고 했습니다. 문구점에서 종이를 사려다 비 소식이 있어 포스터 종이를 재활용 하게 됐답니다. 

 

 

이 개성적인 가격표를 목에 건 혜윤씨의 사진이 문득, 사진가 임응식 선생(1912~2001)1953년 작품 구직을 호출합니다. 전쟁 후 일자리를 찾는 청년의 모습에서 60년 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이 겹쳐보였지요. ‘구직이라 써서 가슴에 묶은 남루한 모습의 남성에게서 절망이 읽힙니다. 그러나 혜윤씨의 모습에서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힘들고 아픈 이 시대를 건너가는 청춘의 패기와 발랄함이 느껴졌습니다. 혜윤씨의 모습이 2017년을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가 임응식 '구직'(1953) 

 

 

혜윤씨는 개강을 앞두고 부산 집에 가 있을 거라 했습니다. 시간이 되면 부산 지역 후기 졸업식장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을까 하더군요. 부딪쳐보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이 시대를 견뎌내는 청춘을 응원합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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