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6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일

한노아씨는 사진다큐를 하며 만났습니다. 그는 상업사진을 찍는 작가입니다. 코로나 이후 일거리가 줄자, 지난 4월부터 배달노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스쿠터에 올라 음식배달을 하다 보니,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됐습니다. 노아씨는 시대를 기록하겠다는 소명으로 배달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간 작업을 모아 사진전을 열기도 했지요. 그는 필름으로 찍고 직접 현상·인화하는 아날로그방식을 고집했습니다. “더 무겁게 책임을 지기 위해 선택한 자세”라고 하더군요. 한 컷 한 컷 셔터를 누를 때마다 질문을 던진다고 했습니다. 노아씨를 취재하면서 ‘내가 찍는 사진에 난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기자가 사진작가를 카메라에 담는 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사진을 통..

사진이야기 2021.09.27

"그건 '니오타니' 예요"

아내가 (필립 퍼키스·박태희 옮김, 안목, 2014)라는 책을 내밀었습니다. 잘 알려진 책이고 사진이 제 밥벌이니 ‘사진강의’ 한 번 들어보라는 것이었지요. 필립 퍼키스는 사진가이며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쳤습니다. 50년간의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라는군요. 공군에서 기관총 사수로 복무하며 사진을 찍었다는 이력이 재밌습니다. 사진 셔터와 기관총의 방아쇠는 여러 의미로 잘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필립 퍼키스 책에는 사진과 삶에 대한 그의 경험과 철학을 담았습니다. 밑줄을 그은 문장이 여럿이었습니다만, 제 현실과의 거리 또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일부만 적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그의 당부입니다. “보여 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

사진이야기 2018.04.12

'밑줄을 긋다보니...'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장은 너무 많아지고 격랑의 파도 속에서 밑줄을 긋다 보면 글이 좋아 밑줄을 긋는 것인지 밑줄을 긋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기도 한다 (134p) 자기의 인생관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거나 지금껏 보고 들어 알고 있었어도 느끼지 못했던 통찰의 획이 마음속에 그어지는 순간이 있다.(135p) 사진가 허영한의 에세이 (새움)를 읽으며 제가 딱 그 지경이 되었습니다. 책은 그의 깊은 사유와 통찰이 녹은 ‘사진인문학에세이’입니다. 그는 이런 ‘말의 규정’을 싫어할 것이 분명합니다. ^^ 저와는 평소 소주 한 잔 하는 사이인지라, 그의 깊이는 진작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 경험하는 것은 새삼스럽습니다. 책을 읽으며 줄을 많이 그었습니다. 동시대에 카메라를 들고 밥벌이를 하다 보니, 그..

사진이야기 2017.11.13

세계적 사진가와 그냥 사진기자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존 스탠마이어는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흥미롭게 본 것은 한국의 일상과 도처에 널린 ‘다양한 색’이었습니다. 두루마리 휴지가 걸린 포장마차, 그릇에 담긴 반찬들, 화장실 소변기 위에 놓인 꽃, 비닐봉지 등에서 발견한 색들을 그의 개성적인 앵글로 보여줍니다. 정말 흥미롭다는 것을 그는 천진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 'Signal'로 World Press Photo (WPP·세계보도사진전) ‘2013 올해의 사진상’을 받았고, 세계의 식량위기, 민주화 운동, 빈곤과 환경 문제 등 선 굵은 작업을 하는 그의 눈에 한국의 사소한 것들은 특별했던 겁니다. 식량위기에서 포장마차 두루마리 휴지까지 그의 관심과 그것을 포착하는 시야는 대단히 넓..

사진이야기 2014.10.26

'4시간 16분 동안의 사진전'

함께 슬퍼했고 함께 분노했던 세월호가 잊히고 있습니다. 사진가들이 나섰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를 사진으로 기록해 온 사진가들입니다. 자신의 사진 한 장을 들고 ‘4시간 16분’ 동안 서울 여의도를 출발해 광화문 광장까지 걸었습니다. ‘4시간 16분 동안의 전시’라는 소위 ‘걷는 사진전’이었지요. 기록되어 기억되는 것이 사진의 본질입니다만, 기억에서 잊히는 세월호 앞에서 새삼 ‘우리는 무엇을 찍는가’, ‘왜 사진을 찍는가’,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이 사진가들을 거리에 세웠던 것이지요. 사진기자인 저 역시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진가들은 현수막 천에 출력한 사진을 각목에 고정해 어깨에 얹고 걸었습니다. 전시 소개글에 ‘사진가들이 각자의 십자가인 ..

사진이야기 2014.08.14

사진가 노순택

어떤 현장에서는 사진가 노순택을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까맣게 탄 얼굴에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스윽 나타난 그는 참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지요. 용산, 평택, 제주 강정, 밀양에서 그를 만났고 쌍용차 해고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보였습니다. 그의 카메라는 대한민국 갈등의 현장에서 권력을 조롱하고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어루만집니다. 언론이 뜨겁게 모였다 빠져나간 곳에서도 그의 카메라는 머물러 있습니다. 어느 밀양 송전탑 관련 문화제에서 사회자가 “노순택 사진가도 함께하고 계십니다”라는 멘트를 할 정도입니다. 사진을 ‘업’으로 하는 직업인이지만 활동가이기도 한 것이지요. 금세 떠나버리는 사진기자보다 머물러 함께하는 사진가의 카메라가 더 ..

사진이야기 2014.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