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일까. 다음날 신문 1면에 일찌감치 편집된 사진을 보며 든 첫 반응이 그랬습니다. 오른손에 권총을 쥔 남성이 왼손을 높이 들고 검지로 하늘을 찌르며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고 그의 왼쪽에 한 남성이 큰 대자로 누워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설명을 읽고서야 총격 살해 직후의 장면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외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이런 극적인 사진은 잔인하고 끔찍한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사진은 터키 경찰관인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가 앙카라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던 안드레이 카를로프 러시아 대사를 쏜 뒤 “신은 위대하다. 알레포와 시리아를 잊지말라”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관련 기사엔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에 반발한 범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에르도안 대통령을 반대하는 쿠데타 진영의 짓이라는 해석도 있다는군요.
AP Photo/Burhan Ozbilici
AFP PHOTO/Sozcu daily/Yavuz Alatan
영화 장면이 아님을 확인한 후 곧바로 어떻게 이런 장면을 찍을 수 있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현장에 사진기자들이 있었기에 찍혔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사진기자가 총성이 울린 현장에서 총 든 범인의 눈앞에서 어떻게 흔들림도 없이 또렷하게 찍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지요. 총격 앞에 대담하고 침착한 셔터를 누를 수 있는 간 큰 사진기자가 궁금했습니다.
AP Photo/Burhan Ozbilici
AP Photo/Burhan Ozbilici
AP 사진기자 버르한 오즈빌리치는 퇴근길에 러시아 대사가 축사를 하는 앙카라 현대미술관에 잠시 들렀다는군요. 당장의 뉴스보다는 자료용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지요. 대사가 발언하는 중 총성이 들리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벽 뒤에 몸을 살짝 숨긴 채 두려움 속에서 셔터를 눌렀다고 하는군요. 그는 뒤에 AP웹사이트에 “그 순간, 내가 총을 맞거나 다치거나 심지어 죽더라도 나는 저널리스트이고...”하는 글을 올렸답니다. ‘그 순간’에 그러한 생각을 한가롭게 떠올릴 수 있었는지 사실 좀 의심이 갑니다만, 본인이 그러했다고 하니 믿어야지요. 분명한 건 이 충격적인 사진은 ‘퇴근길에 잠시 들러’ 찍을 수 있었던 겁니다. 특종은 그렇게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진 한 장이 시리아를 둘러싼 주변국의 갈등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사진이 찍힌 공간이 ‘터키인의 눈으로 본 러시아’ 사진전 행사장이라니 전시 주제에 가닿는 또 하나의 사진이 추가된 셈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 사진을 보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총격을 야기한 갈등을 어떻게 줄일 수 있나?’를 생각하기보다 ‘잘 찍었다’ ‘어떻게 찍었을까?’를 먼저 궁금해 하는 것은 즉각적이고 솔직한 직업적 반응이지만 이내 민망해지는 부분이지요.
그럼에도 ‘범인의 총구가 대사를 향하고 있고, 대사가 쓰러지고 있는 모습이었다면 더 극적인 사진이 아니었을까’하고 일말의 아쉬움을 생각합니다. 제 안에 그렇게 ‘악마’가 살고 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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