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24

머물러 있는 사진

몇 달 전 어느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후배 사진기자가 술기운(?)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형님 사진은 늘 그대로에요.” “이 새끼 주글래?” 웃음 띤 채 말하기에 장난처럼 받았지요. 늦은 밤 “형님,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그저 웃자고 했던 말이 아니었음을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친하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평소 느낌을 말한 것일 테지요. 며칠 전엔 한 친구가 제 사진에는 저만의 색이 있다고 하더군요. ‘너다운 사진’ ‘너니까 찍는 사진’ 같은 평가도 덧붙었습니다. 과찬이지요. ‘내 사진에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고마웠고 한편 부끄러웠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칭찬과 돌직구가 엉켰습니다. 익숙한 시선과 몸에 새겨진 버릇이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반복적으로 찍어댔겠지요. 고민하는 척(그거라도 해야 할..

사진이야기 2018.07.31

"얘들아, 아저씨 신기하지?"

“앗살라말라이쿰” 엉성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이 웃습니다. 수줍은 듯 혼잣말 같은 답인사가 돌아옵니다. 피부색과 옷차림이 다른 아저씨의 등장에 아이들의 호기심이 커졌습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비행기로 40분 거리의 라즈샤히주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빠져들었습니다. 크고 또렷한 눈에 시선을 뺏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요. 게다가 그 안에 궁금증이 잔뜩 들어앉았습니다. 카메라는 반사적으로 작동합니다. “척! 척! 척!”셔터 소리는 “아, 저 눈 좀 봐”하는 감탄사처럼 울려 퍼졌지요. 꼬마들의 눈에 사진을 찍고 있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있지요. 때 묻지 않은 선한 눈에 ‘사진 찍는 아저씨’에 대한 느낌이 드러나는 것 같아 재밌습니..

사진이야기 2018.05.01

이별의식

새 카메라가 들어왔습니다. 이 밥벌이 도구가 도착하자, 사무실에 있던 부원들은 박스를 뜯어 카메라와 부속 장비를 꺼내 살펴보고 정리하느라 부산했지요. 앞서 쓰던 카메라는 반납돼 한쪽으로 치워지고 있었습니다. 새 장비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지요. 저는 마감을 핑계로 그 부산함의 대열에 끼지 않았습니다. 또 다음날부터 사흘간 외부교육이 있어 박스를 뜯고 정리할 시간이 없었지요. 잘 됐다 싶었습니다. 원래 새 물건을 좀 묵혔다 쓰는 버릇이 있어, 최종 반납 독촉 때까지 시간을 끌었습니다. 니콘D4. 제 손에 들려 지난 5년의 시간을 새긴 카메라입니다. 제 40대 전반을 온전히 함께 했지요. 취미 아닌 밥벌이를 책임졌다는 사실에 좀 짠해 집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뉴스현장에서 저의 눈이 되고, 시선을 ..

사진이야기 2017.11.26

낯설게 카메라를 본다

김선우 시인이 쓴 책 ‘김선우의 사물들’(단비)을 읽다가 19번째 사물 ‘사진기’에 대한 글에 유독, 아니 당연히 관심이 쏠렸습니다. 시인의 눈에 사진기란 어떤 것일까. 굳이 ‘사진기’라고 쓴 것은 ‘카메라’라고 했을 때 떠올려지는 다양한 기계를 배제한 채 아날로그적 감성 유지를 위함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탁자 위에 올려둔 사진기 렌즈와 무심하게 눈이 부딪혔나 보다. 커다랗고 둥근 눈, 맑고 깊지만 심중을 헤아릴 수 없는 건조한 광택을 지닌 눈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그는 좀체 자신의 표정과 체온을 들키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내 손 안에서 외부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던지던 사진기는 손에서 놓여나 탁자 위에 섬처럼 앉은 순간 자신의 내부를 향해 오래도록 면벽한 자의 얼굴로 돌변한다. 그는 손안에서..

사진이야기 2017.09.06

정작 '꿀잠'은 내가 잤다

공사 중인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에 대한 사진다큐 기사가 지난 29일자 지면에 실렸습니다. 전날 미리 온라인에 뜬 기사를 본 노순택 작가께서 격려의 메시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사와 함께 올렸습니다. 지난 6월15일 열린 노순택 작가의 사진전 작가와의 만남 뒤풀이 자리에 합류해 막걸리를 마시다 다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이니, 그의 지분도 들어있는 것이지요. 계획된 다큐 게재일이 한 달이나 남은 6월 말쯤, 분위기나 보려 ‘꿀잠’ 공사현장을 처음 찾은 것을 시작으로 주중 2~3차례 오후시간에 공사현장을 찾았습니다. 물론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를 고민하며 다녔습니다만, 막상 현장에서는 카메라를 놓고 일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사진 정택용 일하는 장면 하나 메인 컷으로..

사진다큐 2017.07.30

마네킹...좀 짠한

가끔 카메라를 든 현장에서 무언가 ‘훅’하고 꽂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곧 이러저러한 생각과 연결되기도 하고 그 이유를 찾다 때론 비약으로 흐르곤 합니다. 어제는 현장에서 ‘마네킹’에 꽂혔습니다. 소방기술경연대회에 소품으로 동원된 마네킹이었지요. 부상자 대역의 묵직한 마네킹이 '참 고생이 많다' 싶었습니다. 참가자들은 흙바닥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마네킹을 안아서 끌고 저만치 약속된 구역까지 가서 버리듯 내려놓았습니다. 실제 사람이었다면 그리했을 리 없겠지만, 시간측정으로 순위를 매기다보니 마네킹을 패대기 칠 수밖에 없어보였지요. 흙먼지 속에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꼬였습니다. 대회 진행요원들이 제자리로 가져다놓기를 반복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짠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겠지요. 마네킹을 카메라에 ..

사진이야기 2017.05.03

카메라를 내려놓을 용기

시리아발 사진 한 장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진기자 때문에 그 메시지가 더 부각되었지요. 주인공은 시리아 한 매체의 사진기자 압둘 카디르 하바크입니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현장에서 오른손에 카메라를 손에 쥔 채로 부상당한 아이를 안고 달려 나오는 사진이었습니다. 일상적인 것이 그러하듯 시리아 테러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특히 한국 언론의 관심에서는 더 멀지요. 그런 중에 현장의 위험을 무릅 쓴 사진기자의 정의로운 행동이 기록된 사진이 널리 공유되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리아의 참상이 이 피사체인 사진기자 덕에 드러나고 관심의 영역으로 잠시 들어왔습니다. 만약 구조대원이 아이를 안고 뛰어나왔다면 역시 일상성의 범주 안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짐작도 해..

사진이야기 2017.04.24

긴 겨울 지나 이제 봄

봄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여느 때보다 길게 느껴지는 겨울이지 않습니까. 이른 꽃소식이 지면에 몇 차례 소개됐지만 개의치 않고 남도로 향했습니다. 만개한 꽃보다 꽃이 피기 전의 모습을 담고자 했습니다. 왠지 이 시국에 정의로운 국민의 바람이 개화를 앞둔 꽃눈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억지 최면을 걸었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 종일 내린 지난 22일 전남 완도군에 있는 완도수목원을 찾아갔습니다. 빗속엔 제법 따스한 기운이 스며있었지요. 카메라에 접사렌즈를 끼웠습니다. 사실 여의도 벚꽃, 구례 산수유, 광양 매화 등 규모 있는 꽃 축제 사진은 수차례 찍어보았습니다만, 그때도 접사렌즈를 장착하지는 않았습니다. 접사렌즈를 이용해 꽃사진을 찍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지 않았었지요. 그런류의 사진은 따로 취미를 둔..

사진이야기 2017.02.28

플래시와 대통령

‘정치인은 카메라 플래시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인은 카메라를 꺼려서는 크지 못하고 카메라 플래시를 즐길 줄도 알아야합니다. 정치인의 인지도가 카메라를 모으지만 플래시 세례를 많이 받는 이의 인지도가 올라가기도 합니다. 초선 의원들이 처음엔 어색해하지만 카메라 플래시에 곧 익숙해지는 모습을 봅니다. 검찰 포토라인이 아닌 다음에야 그 맛이 싫을 리 없지요. 플래시의 빛은 ‘내가 주목받고 있구나’ ‘뉴스 안에 내가 있구나’ 느끼게 합니다. 어느 은퇴한 정치인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카메라 플래시 세례라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도 있습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발언도 발언이지만 저는 대통령의 주위에 번쩍이는 플래시 빛이..

사진이야기 2016.12.05

'카메라를 내려놓다'

어제(23일) 국방부 청사에 모인 사진기자들은 취재를 거부하며 일제히 카메라를 내려놓았습니다. 이날 사진기자들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공식 서명식의 일방적인 비공개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방부에 항의했습니다. 장소가 협소한 이유라면 ‘풀 취재(POOL, 대표 취재해 전체가 공유하는 취재형식)’를 하더라도 언론 공개, 즉 기자 입회를 요구했지요. 국방부 측은 "일본 측의 요구다. 사진을 제공해주겠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협정에 대한 기자들의 해석과 표현을 원천차단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제공하겠다는 의미죠. 공보 담당자들은 계속되는 기자들의 항의에 “맘대로 하라” "사진 제공도 하지마"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즉시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밀실 서명’ 일..

사진이야기 2016.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