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470

반려견과 꿀잠대회...'개'의 사전적 의미는 바뀌겠지요?

꽤 오래전 지하철 안에서 한 여성이 "우리 아가~"라며 애지중지하던 대상이 '개'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라는 따가운 눈총을 그 혼자 다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그 '아기'가 아기띠에 폭 안긴 채 그와 함께 지하철에서 내릴 때 수많은 불편함의 시선이 일제히 그의 뒤통수에 박혔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개'를 "개"라고 부르는 일보다, '반려견'이라고 부르는 일이 더 많아졌지요. 반려동물의 대표인 개는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온 지 오랩니다. 아침저녁으로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건, 끼니마다 밥을 챙겨 먹는 것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지난 5월31일 반려견과 함께하는 '개꿀잠'대회가 서울숲에서 열렸습니다. 사전 행사로 진행된 반려견..

사진이야기 2026.06.01

"나무를 죽이는 건 그 마음을 죽이는 일입니다"

죽어가는 나무 한 그루를 위해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회견 장소로 향하며 속에서 슬그머니 이런 말이 올라왔습니다. ‘그깟 나무 한 그루가 뭐길래, 이게 얘기가 돼?’ ‘은행나무 독살 주범 환기미술관 규탄 기자회견.’ 서울 부암동 주민들이 미술관 담벼락 앞 200년 수령의 은행나무 앞에 모였습니다. 회견은 미술관 측이 이 나무에 제초제를 뿌려 죽이려 한 것에 대한 공개 사과와 책임 있는 복원을 요구하는 자리였습니다. 주민들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골목을 지키는 나무가 주는 위로가 커보였습니다. 개인의 추억과 사연이 이어졌고, 나무를 죽이려 한 미술관 측을 규탄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의 업적을 기리고 소개하는 미술관의 행태라는 것에 더 화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발언자들은 목이 메는 듯..

사진이야기 2026.05.27

고모부의 일기장

“아버지 일기 중에서...” 출근길에 사촌형의 카톡 문자와 사진 석 장이 전송돼왔습니다. 무심히 사진을 띄워보고 먹먹해졌습니다. 얼마 전 고모부가 돌아가셨습니다. 대구에 살던 어린 시절에 고모댁으로 가끔 놀러 가면 교사였던 고모부는 무뚝뚝하게 앉아 계시곤 했습니다. 책을 읽으셨던 것도 같습니다. 그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조카를 반기며 활짝 웃어도 주셨을 테지만 그런 기억보다는 ‘무뚝뚝하게 앉아’있던 모습이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이후 자라면서 부산으로, 다시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고모부를 뵐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래전부터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도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결국은 돌아가신 후에야 영정사진을 들여다보며 후회를 했지요. 한 통의 전화가 그렇게 ..

사진이야기 2022.04.26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일

한노아씨는 사진다큐를 하며 만났습니다. 그는 상업사진을 찍는 작가입니다. 코로나 이후 일거리가 줄자, 지난 4월부터 배달노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스쿠터에 올라 음식배달을 하다 보니,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됐습니다. 노아씨는 시대를 기록하겠다는 소명으로 배달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간 작업을 모아 사진전을 열기도 했지요. 그는 필름으로 찍고 직접 현상·인화하는 아날로그방식을 고집했습니다. “더 무겁게 책임을 지기 위해 선택한 자세”라고 하더군요. 한 컷 한 컷 셔터를 누를 때마다 질문을 던진다고 했습니다. 노아씨를 취재하면서 ‘내가 찍는 사진에 난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기자가 사진작가를 카메라에 담는 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사진을 통..

사진이야기 2021.09.27

나와 매일 친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제주 제주” 노래를 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오게 된 제주였습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저 역시 그 노래의 대열에 합류할 이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와서 며칠은 그저 ‘한달살이’라는 유행을 좇아 온 것인지 스스로 묻다가, 느슨한 ‘루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제주살이’가 만들어졌(다고 믿)습니다. 일어나면 동네 바닷가를 산책하고, 마음 가는 대로 걷거나 걸으며 사진을 찍고, 평소 무심히 지나치던 것에 시선을 던지고, 음악을 듣게 되고…. 다 열거할 수 없는 것들이 여기 제주에서 저의 삶에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생활의 가능성에 대한 발견이기도 하고, 내 안에 잠재된 무언가를 더듬어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제주로 오던 날, 나와 더 친해지는 시간을 보내라는 친구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사진이야기 2021.06.21

매일 걷고 있습니다

한 달을 지내보겠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제주로 왔습니다. 먼저 ‘한 달 살기’를 했던 이들의 경험담을 검색하면 참고할 정보들이 줄줄이 나왔겠지만, 그냥 외면했습니다. 하루의 시작은 눈 뜨면 바닷가를 거닐면서 ‘오늘 뭘 할까’ 생각합니다. 답은 뭐 정해져 있지요. 걸어보자는 겁니다. 아침을 간단히 차려먹고 느긋하게 시작합니다. 하루는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하루는 북쪽으로, 어떤 날은 올레길로, 또 다른 날은 오름을 향해 걸었습니다. 사실, 걷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습니다. 왕복 거리를 감안해 적당히 걷다가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긴 시간 걷는 일이 익숙하진 않지만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와서는 타인과 대면해 얘기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만, 걷는 순간에는 온전히 ‘나와의 대면’이..

사진이야기 2021.06.11

하늘과 바다를 매일 보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주에서 한 달 휴가를 보내게 됐습니다. 근속 휴가에다 연차를 보탰습니다. 쉬고 싶어 긴 휴가를 낸 것이 아니라 써야 할 휴가가 생기니 길게 쉬고 싶어 졌습니다. 제주 구좌읍의 한적한 마을에 독채 민박을 구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길을 걸어 주소지에 닿았을 때는 해거름이었습니다. 짐가방을 풀기도 전에 민박집 지붕 위에 드리운 하늘을 보며 ‘잘 왔구나’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작정한 휴가였지만, 막상 와서 보니 그 ‘아무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몸 가는 대로, 마음 시키는 대로 느슨하고 즉흥적인 하루하루 살아보자는 정도에 합의를 봤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간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매일 하늘과 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

사진이야기 2021.06.08

문 앞에서

'바로 저 문이었구나' 눈앞의 문은 앞서 출장을 경험했던 동료들이 얘기했던 바로 그 문이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기자들이 바짝 붙어 섰습니다. 들었던 말에 의하면 선한 얼굴을 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미국 기자들에게 속아선 안 됩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 띤 표정으로 인사를 합니다만 딱 고만큼만 받아서 웃어주되,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닫힌 문 너머에는 한미 양국의 정상들과 참모들이 회담을 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기자들이 먼저 자리를 잡지만, 이곳에서는 회의 중에 잠깐 문이 열리고 기자들이 들어가 취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 출장을 하루 앞두고 한 동료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 전화였지요. 그는 트럼프 시절 문 ..

사진이야기 2021.05.29

컵라면을 먹으며

늦은 밤, 서울공항에 내려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았습니다. 면봉이 코 깊숙이 들어오자, 역시나 기침이 났습니다. 예상보다 덜 아팠지만 꾹 참으려다 터진 재채기에 면봉을 든 간호사에 민망하고 미안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하루 전 워싱턴에서도 진단 검사를 받았습니다. 백악관에서 나온 의료진이었습니다. 면봉이 콧구멍으로 들어올 때 반사적으로 긴장을 했지만 서너 차례 간질이다 말더군요. 설마 이게 다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스크를 내려 입을 벌리려는데 검사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 음성이라고 통보를 하더군요. 제대로 된 검사일까, 의심이 들면서도 같은 검사라면 왜 굳이 면봉을 깊이 쑤셔 넣어 고통스럽게 하는 걸까,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서울공항을 떠난 버스는 집이 아니라 김포의 한 호텔로 ..

사진이야기 2021.05.26

'꽃 한 송이 놓지 못했구나'

'입양의 날'(5월11일)이라고, 양부모 학대에 숨진 정인이가 묻힌 경기 양평의 한 공원묘원으로 향했습니다. 묘원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달력에도 없는 '입양의 날'과 '평일 낮'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정인이의 묘소를 떠올리는 발상이 지극히 '사진기자적'이라는 생각했지요. 묘원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군데군데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팻말만이 햇볕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정인이의 자리를 찾아 보도를 통해 익숙한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다가, 묘역을 느릿느릿 한 바퀴 돌았다가, 축대 벽에 붙은 나태주 시인의 추모시를 읽다가, 방문객들이 놓고 간 선물을 훑어보다가, 몇 장의 사진을 찍다가, 반가운 인기척을 들었습니다. 60대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쓰레기봉투를 든 채 익숙하게 묘소 주변 오래된 음식물..

사진이야기 202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