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경향신문
“삶의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어린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친 늦깎이 학생들에게 ‘야학’은 삶의 소중한 에너지였다. 서울 천호동 강동야학. 시장골목 내 한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캄캄한 주변에 비해 유난히 환한 불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가방을 들거나 맨 4,50대 주부들이 서둘러 교실로 들어섰다. 교실안의 대화가 교실 밖까지 들렸고 수업 내내 웃음이 흘러나왔다. 89년 문을 연 이 야학은 현재 중학교 과정인 가람반과 고등학교 과정인 동녘반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섯 평 남짓한 교실에 꽉 들어찬 20여개의 책상은 주로 나이 지긋한 중년 주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앉은 학생들의 자식뻘 쯤 돼 보이는 교사의 높은 목소리가 좁은 교실 가득 울리고 있었다. 교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나이든 학생들은 “예”라는 대답과 함께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와 학생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수업은 꼭 신명나는 장단을 보는 듯 했다. 웃음까지 더해져, 수업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직장을 다니며 밤에 중학교 과정 수업을 듣는 이정애(51,고덕동)씨는 “없는 살림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게 ‘한(恨)’이 돼, 아들 대학졸업 시키는 날 달려와 야학에 등록했다”면서 “영어와 수학이 까다롭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게 뿌듯하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년 동안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장태호(20,항공대) 교사는 “학교생활과 야학수업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만 어머님들의 적극적인 수업태도와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강동야학은 현재 구지원금과 개인후원금, 일일호프 수익으로 운영되고 있다. 야학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남기송(48,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교장은 “임대료 등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어렵다”며 아쉬워했다. 남 교장은 “교육수준이 높아졌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 교육으로부터 소외받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며 “야학이 교육에서 소외된 마지막 한 명까지 보듬어야 하며 그것이 야학 존재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1년 동안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다”며 자랑하는 유명숙(55,암사동)씨는 “대학가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훗날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수줍은 듯 꿈을 얘기했다. 공부하지 못한 게 ‘한(恨)’이 됐고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이제야 늦은 배움의 길에 들어선 늙은 학생들. 간절했던 시간만큼이나 배움에 대한 열정과 기쁨은 더 없이 커보였다.
〈강윤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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