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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기사] [포토 르포]웃음이 가득한 강동야학

나이스가이V 2006. 3. 19. 17:41
출처 : 경향신문

돋보기 너머 불타는 향학열 책을 볼 땐 돋보기안경을 써야 할 나이. 수업 중에 수십 번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한다. 김형래(57,암사동)씨가 돋보기 너머로 강의하는 교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초롱초롱한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삶의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어린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친 늦깎이 학생들에게 ‘야학’은 삶의 소중한 에너지였다.

서울 천호동 강동야학. 시장골목 내 한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캄캄한 주변에 비해 유난히 환한 불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가방을 들거나 맨 4,50대 주부들이 서둘러 교실로 들어섰다. 교실안의 대화가 교실 밖까지 들렸고 수업 내내 웃음이 흘러나왔다. 89년 문을 연 이 야학은 현재 중학교 과정인 가람반과 고등학교 과정인 동녘반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섯 평 남짓한 교실에 꽉 들어찬 20여개의 책상은 주로 나이 지긋한 중년 주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앉은 학생들의 자식뻘 쯤 돼 보이는 교사의 높은 목소리가 좁은 교실 가득 울리고 있었다. 교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나이든 학생들은 “예”라는 대답과 함께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와 학생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수업은 꼭 신명나는 장단을 보는 듯 했다. 웃음까지 더해져, 수업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직장을 다니며 밤에 중학교 과정 수업을 듣는 이정애(51,고덕동)씨는 “없는 살림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게 ‘한(恨)’이 돼, 아들 대학졸업 시키는 날 달려와 야학에 등록했다”면서 “영어와 수학이 까다롭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게 뿌듯하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년 동안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장태호(20,항공대) 교사는 “학교생활과 야학수업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만 어머님들의 적극적인 수업태도와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강동야학은 현재 구지원금과 개인후원금, 일일호프 수익으로 운영되고 있다. 야학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남기송(48,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교장은 “임대료 등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어렵다”며 아쉬워했다. 남 교장은 “교육수준이 높아졌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 교육으로부터 소외받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며 “야학이 교육에서 소외된 마지막 한 명까지 보듬어야 하며 그것이 야학 존재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1년 동안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다”며 자랑하는 유명숙(55,암사동)씨는 “대학가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훗날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수줍은 듯 꿈을 얘기했다. 공부하지 못한 게 ‘한(恨)’이 됐고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이제야 늦은 배움의 길에 들어선 늙은 학생들. 간절했던 시간만큼이나 배움에 대한 열정과 기쁨은 더 없이 커보였다.
장바구니 옆에 놓고…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교실에 들어선 한 주부 학생은 책상 옆에 장바구니를 내려 놓자마자 책을 펼쳤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학생, 집으로 돌아가면 주부의 역할까지 해낸다


노트 필기도 꼼꼼히 중요한 부분에 빨간 밑줄을 긋고 별표를 그려가며 꾹꾹 눌러 필기를 하고 있다. 필기구를 꼭 거머쥔 손에 열정이 배어 있다.


딸 또래의 선생님 “어머님, 안경 새로 하셨네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수업을 시작한 과학담당 배혜영(23,서울시 과학전시관 탐구교실)교사가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늦깎이 야학생들 수업중 전 시간에 쳤던 쪽지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이경자(48,천호동)씨와 유명숙(55,암사동)씨가 동료학생들의 박수를 받자,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시험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노트 필기도 꼼꼼히 중학교 과정을 배우는 가람반. 늦은 시간임에도 자리를 가득 메운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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