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지면을 위한 출장을 오랜만에 떠났습니다. 부담을 안고 갑니다. 지면에 크게 들어가는 사진은 여전히 부담입니다. 지금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매거진X’의 간판이기도 했던 여행면에 대한 기억도 한 몫 합니다. 당시 전면으로 썼던 사진은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했었지요. ‘나는 언제 선배들처럼 저런 사진을 찍어보나’하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행지는 곰탕으로 유명한 전남 나주입니다. 볼거리가 아닌 먹거리로 지역을 설명하는 게 수월한 그런 세상이지요.^^ 옹관이 매장된 거대한 고분군과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입니다. 고분을 잘 찍어보려 마음먹었습니다. 출장 가는 제게 "낮에 찍는 고분은 그림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밤 사진을 찍어보라"는 정모 선배. "매거진X에서 사진에 눈을 떴다"는 이 분의 조언을 깊이 새겼습니다. 고대 고분과 그 위로 쏟아지는 별들의 궤적. 상상만으로 신비감이 느껴지는 사진, 흐뭇했지요. 여행사진은 상당 부분 날씨에 기댑니다. 불행하게도 지역 일기예보는 출장기간 내내 흐림이었지요. 그럼에도 ‘내가 카메라를 든 바로 그 시간에는 기적같이 맑아지길···’바랐습니다.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고분군 앞에서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때까지 기다렸습니다만 구름이 걷히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난감하고 막막했습니다. 해질 녘 노을이라도 붉게 드리웠으면 했지만 희뿌연 기운은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별 볼일 없는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을 기약하며 구름 대신 제가 물러섰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늦은 밤부터 눈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동틀 녘 고분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별과 여명의 붉은 기운에 다시 집착하며 눈이 그쳐주길 순진하게 또 고집스럽게 바랐습니다. 날은 밝아오는데 눈발은 이어졌고 뿌연 안개는 고분과 하늘의 경계를 지웠습니다. 기대한 그림은 물건너 갔습니다. 똘똘한 한 장의 사진이 없을 땐 두어 장을 붙여 쓰는 차선책을 택합니다. 나주곰탕으로 아침을 먹으며 동행한 여행담당 소뎅기자와 의논해 전날 찍어 놓은 저물녘의 고분 사진과 밤에 찍은 나주 목사내아(지방을 관장하던 목사의 살림집) 야경사진 두 장을 붙여 쓰기로 했습니다.
아쉬웠지만 더이상 방법이 없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식사 후 고분군 앞에 있는 국립나주박물관 투어를 했습니다. 두 시간쯤 전시장을 돌아본 뒤 건물 밖으로 나왔더니, 그새 날은 개었고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습니다. 하늘과 고분의 경계가 또렷했고 생각지 못한 순백의 멋진 풍광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소뎅기자의 눈썰미로 썩 괜찮은 앵글을 잡았습니다. 들떠서 사진을 마구 찍어댔습니다. 결국 이 사진이 지면에 게재 되었지요.
자연은 처음부터 제가 보려했던 것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내리는 눈은 사진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쳤었지요. 하지만 결국 쌓인 눈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세상사가 그러하지만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합니까. 여행사진은 자연 앞에서 카메라를 든 자를 작아지게 또 겸손하게 합니다.
경직된 생각에 꽂혀 허둥대는 것이 나이 듦의 증거가 아니기를......! ^^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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