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해외 출장 중 부서 단체 카톡방에 안부 인사를 남겼습니다.
경향신문 ‘지구의 밥상’ 기획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에서 일정을 소화한 뒤 에티오피아로 출발하기 전날이었습니다.
케냐 일정을 끝낸 뒤 사진을 정리하며 골라낸 몇 장의 기념사진을 안부문자와 함께 보냈습니다. 뉘앙스를 알 수 없는 “(포토)다큐 하나 하자”는 K선배(보조데스크)의 답글이 즉시 돌아왔습니다. ‘건강 잘 챙겨라’는 통상적인 인사대신 말이지요. 그저 ‘잘 지내고 있구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쯤으로 이해했습니다. 국내 메르스 취재로 장기간 시달리던 터라 제가 보낸 한가한 기념사진에 골이 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 기획에 집중해야 하는데 또 다른 기획을 도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거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애초에 계획이 없었기에 사실 안 해도 그만인 다큐인데 에티오피아로 향하는 길 내내 “다큐하나하자...다큐하나하자”라는 문자가 환청처럼 들려왔습니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금세 고민에 빠져들었지요.
뉘앙스를 알 수 없는 ‘안부인사 같은 지시’를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문자를 보낸 이의 권위보다 그 짧은 문자 안에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해외출장에 나선 사진기자가 기존 기획에 기획 하나를 더 챙겨온다면 이 얼마나 고효율적인 취재인가. 또 그간 포토다큐가 대체로 국내용 소재로만 다뤄지다 보니 다양성 측면에서 해외 다큐 하나 할 만한 타이밍이다.' 거부했던 다큐를 스스로 이런 합리화 과정을 거쳐 진행하게 됐습니다. 조직에 참 잘 길들여진 저를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밥상기획' 취재지역의 초등학교를 섭외해 사진을 엮어보자 생각했습니다. 이미 방학이 시작됐더군요. ‘그럼 아이들이 방학에 뭘 할까’로 방향은 급전환됐습니다. 본 기획 사이에 곁다리 기획을 한다는 것은 조급해지고 산만해지는 일입니다. 몇 차례 더 방향이 흔들리며 틈틈이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큐 마감을 앞두고 아이들의 사진을 꺼내 이리저리 모아보며 ‘왜 이 순간에 이 아이의 사진을 찍었을까’하고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냥 찍었더라도 ‘그냥 찍은 그 이유’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를 찾는다면 수많은 아이들 사진 중에 몇 장을 골라내는 기준이 될 것이었지요.
아이들의 ‘눈망울’이었습니다. 그 거부할 수 없이 맑은 눈빛이 카메라를 들게 한 것이었지요.
[포토다큐] '가난도 빼앗지 못한 눈빛'
아이들의 눈망울은 투명하고 깊었다.
먼 이국땅의 피부색 다른 동양인을 보는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370km 떨어진 시다마 존(Zone) 훌라 지구
(Woreda)는 한국월드비전(국제구호개발 NGO)이 지역 아동의 행복과 마을의 자립을 위해 후원 사업을 하는 곳이다.
훌라 지구의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의 주요 일과는 집안일을 돕는 것이었다.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초원에서 가축을 먹이거나 우물물을 긷는 모습이 흔했다. 듬성듬성 떨어진 농가를 잇는 거친 비포장 길을 걷는 동안 소를 치던 아이도, 나무를 타던 꼬마도, 삼삼오오 어울려 놀던 녀석들도 어느새 우리 일행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궁금증 가득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리서 온 손님의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를 신기한 듯 지켜봤다. 눈이 마주쳐 “살람(안녕)”하고 손이라도 흔들어주면 정말 재미난 일이 벌어진 듯 “까르르” 넘어갈 듯 웃었다.
아이들의 남루한 옷을 보고, 먹고 사는 것의 궁핍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 아이들이 몰려왔을 때 ‘무엇을 달라’는 의미라 짐작했다가 즉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맑은 눈망울에 순박한 수줍음과 따뜻한 관심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수하고 천진한 표정 앞에서 가난을 전제로 한 선입견들은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대신 아이들의 그 ‘눈빛’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야 했다. 예쁜 눈에 어려 있는 꿈과 희망을 온전히 가꾸며 자라나길 바랐다.
월드비전이 2007년부터 훌라 지역의 교육 사업을 지원한 뒤 초등학교 입학률이 41.5%에서 98%로, 문해율(읽고 쓰는 능력)은 34%에서 54%까지 올랐다. 한 교실 당 아이들이 85명에서 62명으로 줄었고, 책상 하나당 5명에서 3명, 교과서 한 권당 7명에서 2명까지 보급되는 등 교육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2014년 기준)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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