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포토다큐는 이왕이면 밝고 희망적인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한 10년 전쯤 새해에 한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를 다큐지면에 썼던 기억도 났습니다. 소재를 고민할 즈음해 장안의 화제 고졸사원 장그래의 분투를 그린 드라마는 못 보고 대신, 만화 <미생>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만화를 덮자마자 이거다 싶었습니다. ‘고졸 신입사원’을 다큐 소재로 결정한 것이지요.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두 곳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한 곳의 취업학생 명단과 담당교사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이미 사회인이 된 세 친구를 섭외했습니다. 각기 다른 직업이어야 할 것 등 나름의 기준으로 엄선(?)한 친구들입니다. 다큐 취재를 하면서 결국 ‘성공’한 친구들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취업하지 못한 더 많은 친구들의 아픈 상황을 외면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쓰였습니다.
흔히 농담하듯 '첫사랑에 성공했다면...' 고 또래였을 나이의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이 조금 부담되기도 하고 한편 설레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기획의도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고졸 사원을 응원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흡족할 만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종일 지켜봐야 한다면 신입사원에겐 가시방석이자 엄청난 스트레스겠지요. 그래서 사진은 아예 연출해서 찍기로 했습니다. 직업을 짐작할 수 있는 배경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머리에 그렸습니다. 적당한 조명으로 얼굴이 배경보다 조금 더 돋보이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표정에 자신감까지 담기면 그 이상의 사진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만날 세 친구를 지면을 통해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꽤 괜찮은 입사 축하 선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포토다큐 2015.1.17>
#그래, 해보는 거야...은행장까지
특성화고 출신 은행장 꿈꾸는 초보행원 한선영
“201번 고객님~” 고객을 부르는 한선영씨는 잔뜩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은행 서울 상일역지점. 오후 4시 영업종료시간인데 창구는 북새통이다. 선영씨는 숨 돌릴 틈 없이 고객을 상대했다. 자리 앞에는 노란병아리 그림 아래 ‘초보행원’이라 적힌 팻말이 놓여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그녀는 취업을 위해 인문계가 아닌 특성화고(서울 성동글로벌경영고 글로벌MD과)를 선택했다. 선영씨는 3학년이던 지난해 우리은행 고졸 채용시험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하루를 어떻게 버틸까’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요즘은 출근해 모니터를 켜며 ‘오늘은 어떻게 지낼까’하는 기대로 시작합니다.” 얘기하는 얼굴에 설렘이 가득하다. 가끔 까다로운 고객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객의 따뜻한 한마디에 감동하고 치유 받는다고 했다. “‘한선영’이란 이름만 들어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의 최종목표는 특성화고 출신으로 은행장이 되는 겁니다.” 그녀의 당찬 포부다.
#그래, 미쳐보는 거야...우리 회사니까
스펙초월 전형으로 입사한 신입사원 이강현
이강현씨는 중학생 시절 대졸 청년실업 문제를 접하고 대학 아닌 취업을 결심했고 마이스터고(서울 수도전기공고 에너지기계과)에 진학했다. 지난해 스펙초월 전형으로 한국남동발전의 신입사원이 됐다. 스펙초월 전형은 소셜리쿠르팅을 통해 온라인 과제를 수행한 지원자의 비전과 창의성을 보는 전형이다. 강현씨는 연수원 교육과 사업소 인턴 과정을 밟은 뒤 지난 12월 말 정식 입사식을 가졌다. 강릉 한국남동발전 영동화력발전처에서 신입교육을 받고 있는 그는 발전설비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발전운전원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그는 요즘 출근길에 회사 건물이 눈에 들어오면 ‘내 직장이구나’하고 행복해 진다. “막내 사원으로 팀에 도움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강현씨는 “전문지식을 쌓아 회사가 신재생 에너지를 선도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맛을 보여주겠어...난 천생 요리사니까
퓨전요리 대가 꿈꾸는 신입사원 김성후
‘엄마 음식’을 흉내 내 동생에게 맛보이며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는 김성후씨는 고민 끝에 특성화고인 서울관광고등학교 조리과에 지원했다. 롤 모델을 묻는 입학 면접관의 질문에 당연히 “엄마”라고 답했다. 성후씨는 롯데시티호텔 김포공항점 주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저녁 메뉴 준비로 분주한 주방에서 만난 성후씨는 조리사 복장이 잘 어울렸다. 인턴 생활을 거쳐 현재 불을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핫 파트’에서 근무한다. 그의 손을 거치는 음식은 새우볶음밥, 쇠고기버섯볶음, 전가복, 갈비찜 등 10~15가지다. “제 새우볶음밥은 항상 발전합니다. 매일 작은 변화를 줘 음식을 ‘창조’하고 있어요.” ‘창조’라 말하며 크게 웃었다. 자신감이었다. 그는 “맛이 좋다”는 손님의 칭찬에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는 천생 요리사다. “맨날 혼나지만 선배들 충고 새기면서 흠잡을 데 없는 사회인이 되고 싶어요. 훗날에는 퓨전요리에서 누구나 알만한 이가 되어 제 이름을 내건 식당을 열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성공한 앳된 세 명의 청년이 도전을 시작한다.
학교라는 보호막을 벗고 거친 사회에 힘찬 첫 걸음을 내딛는 이 시대 고졸 신입사원들에게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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