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맘때면 철새 사진을 한 번씩 찍습니다. 이왕이면 스케일이 크면 좋겠지요. 개인적으로 한 번도 찍지(성공하지) 못한 석양 속 가창오리의 군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해봤습니다. 수일 전 올라온 어느 블로그 영상에서 새들의 멋진 군무를 볼 수 있었지요. '그래 가창오리 한 번 찍어보자.'
영상 속의 장소인 전북 고창으로 향했습니다. 미세먼지에 황사가 더해져 제대로 보일까 걱정이 들더군요. 이 상태로 저물녘에 군무가 펼쳐진다면 ‘가창오리떼가 미세먼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군무를 펼치고 있다’고 설명을 쓰기로 했습니다.
오후 4가 못 돼 도착한 동림저수지는 바람이 불었고, 그래선지 걱정보다 하늘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석양은 더없이 좋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망원렌즈를 장착해 저수지 이곳저곳을 살펴봤습니다. 저물녘 주변의 빛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무를 펼쳐야 할 가창오리가 없었습니다. 곳곳에 작은 무리를 지어 있었지만 군무로 장관을 이룰 개체수는 아니었습니다. '왜 없지? 어디로 갔나?'
당황했습니다. 새가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새가 없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습니다. 지나가는 주민들에 물었더니, 군무를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물 위에 새카맣게 앉았다가 해질녘에 일제히 날아오르는 장관을 물가에 사는 주민들이 모를 리가 없지요. 뭐가 잘못됐나, 그제서 복기를 했습니다. 영상을 의심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날에 올라온 영상이지, 그날 찍었다는 어떤 설명도 없었던 것을 희미하게 기억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묻고 따지지도 않고 서둘러 고창으로 왔던 겁니다.
찍고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망연해져서 물을 바라보고 섰습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동안 산과 물 주변이 물들어가는 게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석양 위에 무수한 가상의 점들을 찍으며 까맣게 날아올라 군무를 펼치는 가창오리를 상상합니다. 눈앞 현실의 풍광에 공허한 셔터를 몇 차례 눌렀습니다. 보기 좋은 석양 위로 새 한 마리도 없는 풍경. 새는 없지만 평온하고 그래서 위안이 되는 풍경.
생태사진은 인내가 미덕인데 조급해져 덤볐으니 경고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사진을 찍지 못해 무의미한 하루가 되었지만, 또 그런 이유로 의미를 갖게 된 날이라 할 수 있겠지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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