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올린 글 ‘새가 없는 풍경’에 이어지는 얘깁니다. 있어야 할 곳에 새가 없었으므로 당황했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다른 철새를 수소문했습니다.
순천만 습지의 흑두루미. 고창의 아름다운 석양을 아쉬워하며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흑두루미는 가능할까?’ 불안했지요.
순천의 한 모텔에서 잠을 설쳤습니다. 인근 나이트에서 나온 유흥객들 취기 섞인 말소리가 잠결에 들려왔습니다. 불편했던 잠은 다음날 일정의 불안감을 가중시키지요. 전날 꺾인 전의는 회복 기미가 없었습니다.
순천만생태공원. 취재지원을 하는 직원분은 때마침 해외출장 중이었지요. 난감했습니다. 전망대 망원경으로 멀찌감치 앉아 있는 흑두루미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고맙게도 전망대에서 만난 명예습지안내인이 저를 대신 안내했습니다. 그는 순천만 습지의 기초생태조사와 자료수집 등의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논에 앉아 낙곡을 먹는 흑두루미는 너무 멀었습니다. 들고 간 망원렌즈로는 모자랐습니다. 새에 직접 다가갈 수도 없었습니다.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나 차량 출입이 멀리서부터 통제됐습니다.
안내인은 철새사진은 인내를 갖고 지켜봐야 된다며, 조바심에 독이 오른 제게 얘기했습니다. 11시경 혹시 독수리가 날아오면, 흑두루미떼가 일제히 날아오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독수리를.
그때 방역차량이 들어왔습니다. 방역차량을 얻어 타면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하는 순간, 흑두루미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올랐습니다. “방역차량이 들어옵니다.” 정탐 담당 흑두루미가 무리에게 알린 모양입니다. 독수리가 아니라 방역차량이 군무를 유도한 것이지요. 정신없이 찍었습니다.
거리가 있어 점처럼 보였습니다. 하늘에 검은 점들이 찍혔습니다. 검은 점들의 군무. 저 배경이 석양이었으면... 석양에 대한 집착은 남았습니다. 안내인이 새들의 움직임을 보더니, 갯벌로 이동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흑두루미들이 날아가 버린 텅 빈 하늘에 이번엔 1500여마리의 가창오리들이 군무를 펼쳤습니다. 전날 물 먹인 것에 대한 위로일까요?
물때가 맞아 관광객들과 생태체험선을 탔고, 30분정도 순천만 물길을 둘러봤습니다. 갯벌로 날아와 쉬고 있는 흑두루미떼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전날 좌절이 없었다면 이날의 성취도 없었겠지요.
철새의 군무를 가까이서 처음 본다는 관광객들의 탄성에 덩달아 “참 좋네요”를 연발했더니, 철새의 종과 개체수를 체크하던 안내인이 가만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볼 땐 멋진 군무지만, 쟤네들한테는 그저 스트레스죠.”
yoonjoong
'사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현수와 사골블로그 (0) | 2019.02.15 |
---|---|
'한 번 해볼까요' (0) | 2019.02.09 |
새가 없는 풍경 (0) | 2018.11.29 |
'동건'이와 '정우' (0) | 2018.09.04 |
폭염 스케치 (0) | 2018.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