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다녀왔습니다. ‘언제 또 오겠나’ 싶은 곳에서 강행군하며 과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내를 말없이 가만히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같이 가는 여행의 기본 마음가짐이라고 하더군요.
그날은 파리 북부 ‘어느 곳’에 있는 벼룩시장부터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따라갔으니 지명이 기억에 남을 리 없지요. 벼룩시장에 벼룩 한 마리 사지 못하고 몽마르뜨로 향했습니다. 언덕을 올라 성당과 인근의 피카소가 살던 집, 고흐가 살던 집 등을 확인(기념사진)하고 미술관이 된 모로의 집까지 둘러봤습니다. 대부분의 일정을 걸어 다녔으니 해가 기울 무렵 몸에 힘도 기울었습니다. ‘생 라자르역’. 그때 기차역 이름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지도를 보니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여행 와서 제 의지로 찾아간 첫 장소이자 아마도 마지막 장소입니다. 역과 함께 떠올린 이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입니다. 애초에 역을 떠올린 것이 그와 연관됐기 때문이지요. 브레송의 사진 미학인 ‘결정적 순간’의 대표작이 ‘생 라자르역 뒤에서’(1932)이지요. 종교인들이 성지를 찾는 것보다는 덜 절실하지만 뭐 비슷하다 생각했습니다. 거장 브레송이라는 걸출한 사진가의 대표작이 찍힌 곳. 바로 그 현장이 제겐 성지가 아니겠습니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932
역을 보자마자 살짝 설렜습니다. 브레송의 옛 사진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사진의 배경을 유심히 살핀 뒤 그 배경을 찾아 역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84년이 흘렀지만 이곳 파리에서는 그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사진 배경과 비슷한 기차 역사의 지붕과 지붕 위의 시계탑을 발견했습니다. 브레송이 섰던 바로 그 위치는 아니지만 비슷한 배경을 찾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가 저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고 80여년이 지나 내가 그 자리에 섰구나.’ 그는 기다림 끝에 ‘무용수 포스터와 같은 동작으로 물 위를 뛰는 남자’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했고, 저는 ‘그냥 그 순간’을 찍었습니다.
생 라자르역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설렘을 경험하면서 ‘사진이라는 업’을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설렘은 여행 중 유일하게 ‘나의 의지’가 관철된 장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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