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자정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습니다. 의정부교도소 앞에서 최 회장은 “국민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모은 두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있었습니다. 교도소를 나서고 기자 질문에 답하고 준비된 차량으로 향하는 동안 그의 손에서 성경책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진 정지윤 기자
성경이 상징하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감 생활 중 성경책을 옆에 두고 읽었다는 메시지가 읽히지요. 그 안에는 회개와 뉘우침의 의미도 있고 조금 더 나가면 ‘새사람 됐어’ '나 달라졌어'라는 선언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진정성을 믿고 싶습니다만, 여하튼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궁금했습니다. 홍보담당 직원이 “회장님, 성경책을 왼쪽 손에 들고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했을까요. 최 회장 스스로 결정한 것일까요.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 같은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취재진 앞 발언이나 행동, 옷차림, 표정은 어느 정도 계산됐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성경을 몇 차례 통독했다고 해서 성경을 끼고 나올 이유는 없지요. 여하튼 결연한 의지의 시각적 표현입니다. 포토라인에 서서 허리굽힌 인사와 발언과 성경이 어우러지는 이미지를 미리 고려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진 정지윤 기자
2년7개월 전 최 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두하던 모습이 기억났습니다. 최 회장이 애초 약속과 달리 바닥에 표시된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법정으로 향하는 바람에 취재진과 SK직원들이 엉겨 현장이 엉망이 됐습니다. 나올 땐 반드시 포토라인에 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SK측의 약속을 믿고 포토라인에서 다시 최 회장을 기다렸지요. 그날 최 회장은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14일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출소해 포토라인에 선 겁니다. SK측의 약속이 2년7개월 만에 지켜진 셈이지요.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며 스스로 낮아진 예수의 가르침을 성경에서 배우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조직과 사회에서 성경의 배움을 실천한다면 재벌 총수 특사, 황제면회 등에 대한 국민 다수의 반감도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경책을 들고 나왔다는 상징적 사진이 앞으로의 행보를 더 주목하게 만들고 또 압박을 가하는 이미지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득 제 결혼식이 떠올랐습니다. 주례를 서주신 목사님이 건네준 성경책을 들고 결혼행진을 했습니다. 최 회장은 성경을 들고 감옥에서 나왔고 저는 성경을 끼고 ‘결혼이라는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던 겁니다. ㅎㅎㅎ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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