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하면 굶주림을 떠올립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아이의 축 늘어진 몸과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는 눈이 함께 생각나지요. 지난달 며칠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앞으로 커피를 함께 떠올릴 것 같습니다. 커피를 그저 단맛으로 흡입했던 저는 예가체프니, 시다모니 하는 것이 에티오피아 커피 브랜드였다는 사실을 현지에 가서야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커피 맛을 알게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커피의 멋을 경험했습니다. ‘커피 세리머니’라는 건데요. 에티오피아에서 귀한 손님을 맞는 전통의례랍니다. 처음 들었을 때 ‘설마 커피를 뿌려대는 것은 아니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현지 일정 중 방문했던 월드비전 사무소와 숙소였던 시골의 로지에서 커피 세리머니의 호사를 누렸습니다.
저를 포함한 일행을 반겨주는 행사였습니다. 흑인 여성이 화로에 숯불을 피운 뒤 생두를 작은 프라이팬 위에 놓고 서서히 볶았습니다. 연두색 생두가 까만 원두로 변할 때까지 느긋하고 정성스럽게 굴렸습니다. 색이 변해가며 풍기는 향이 또렷해서 참 좋았습니다. 볶은 원두를 절구에 빻고 다시 끓인 뒤 조그만 잔에 담아 건네 왔습니다. 차와 우유, 설탕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취향에 따라 타서 마시라는 것이지요. 제 싼 입맛에는 설탕 넣은 커피가 제일이었습니다.
최근 ‘무시럽 아메리카노’에 겨우 익숙해졌는데 다시 설탕 듬뿍 넣은 ‘달달한 아프리카노’의 맛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참 쉽게 먹던 커피를 거의 한 시간쯤 진행되는 의식의 끝에 마시니 그 맛이 더 특별한 것 같았습니다. ‘슬로우 푸드’이며 ‘소울 푸드’라 할 만 하지요.
세리머니의 과정에는 현대식 기구와 기계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통 의례라고 하니 에티오피아에서 커피의 깊은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환영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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