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 출장 왔습니다. 패럴림픽 개막 사흘 전에 와서 이제 일주일쯤 지났습니다. 보통 출장이 그렇듯 하루가 참 깁니다. 회사 출근시간보다 일찍 일을 시작하고 마감시간을 넘겨 일해서겠지요.
10년 전 베이징패럴림픽을 취재한 경험이 있어 패럴림픽 취재는 두 번쨉니다. 하계와 동계의 종목이 다르니 낯선 취재이긴 마찬가집니다.
‘어떻게 찍을까.’ 보이는 대로, 셔터가 눌리는 대로 찍히겠지만, 적어도 스포츠에서 장애인과 장애를 어떻게 드러내고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해 볼 좋은 기회지요. 쉽게 할 수 있는 취재가 아니라서 이번이 아니면 고민해 볼 기회가 다시 없을 지 모릅니다.
10년 전에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일정을 촘촘히 짜서 하루에 되도록 많은 경기(아마도 4종목쯤)를 보려고 애썼습니다. 당시 절단장애든, 시각장애든 장애인의 장애가 가장 잘 드러나는 사진을 찍으려 혈안이 됐었습니다. 장애 정도가 덜한 선수보다 심한 선수를 향해 셔터를 눌렀습니다. 장애가 클수록 ‘인간 승리’의 크기가 더 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지금 평창에서 ‘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질문을 해봅니다. 절단된 팔과 다리 등의 장애를 드러내고 강조하는 것이 여전히 전부일까. 그런 사진들이 ‘승패에 관계없이 장애를 뛰어넘은 승자’라는 비장애인 시선이 다분한 상투적인 메시지를 전하는데 적합할까. 다른 접근으로 감동을 자아낼 수 없을까.
주목받았던 앞선 평창동계올림픽에 비해 취재진의 규모도, 매체에 반영되는 기사의 양도, 방송 중계 시간도 대폭 줄었습니다. 무관심이 매체에 반영되고 매체의 외면이 다시 무관심을 키우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무관심은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그리하여, 패럴림픽 사진에 대한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와 정리됐습니다. ‘많이 찍어서 여러 통로로 자주 보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저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미투’와 MB소환 등으로 서울은 떠들썩하리라 짐작하고 남습니다. 몸이 좀 피곤해서 그렇지 평창에서 저는 평화롭습니다. 게다가 패럴림픽은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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