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한 보도채널에서는 태풍(카눈)피해와 태풍이 동반한 많은 비 소식을 주요뉴스로 전하며 호들갑이었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빗발은 잦아들었고, 바람은 나무 잔가지를 겨우 흔들고 있었습니다.
피해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TV에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 앵커, "현장에 기자를 연결하겠습니다.(기자가 연결되자) 바람이 많이 부는군요"
현장 기자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살랑살랑 날리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뉴스에 의해 계속 조장되는 긴장.
양재천 일대 도로 일부가 침수돼 교통이 통제됐다는 기사를 보고 나섰습니다.
반바지 갈아입고 장화 신고 우비를 걸치고 카메라엔 레인커버까지 씌웠습니다.
보기 드문 완전무장이죠.
양재천에 도착하자 해가 내려쬐기 시작했습니다.
비 한방울 맞지 않은 우비 안에서는 땀이 배기 시작했지요. ㅎㅎ 제 복장이 과했습니다.
천변 주차장까지 찼던 물은 조금씩 빠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날이 개자,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어르신이 물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넘쳐난 물에 떠내려온 '자라' 한 마리가 움츠리고 있었지요.
어르신의 개는 난생 처음보는 '자라'를 경계하듯 거리를 두고 이리저리 어슬렁거렸지요.
어느 '건강원'에서 키우는 개가 아니라면 '자라' 볼 일이 있었겠습니까.
'자라'라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미심쩍은 마음에 지나는 말로 "이게 자란가?"했더니,
어르신은 "지난 초파일날 방생한 자란데 이만큼 컸다"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지요.
어른신은 깊은 물로 향하려는 자라를 우산으로 은근히 밀어 얕은 곳으로 수차례 옮겨 놓았습니다.
놓아주자니 아깝고, 잡자니 주위에 보는 눈이 있고... 갈등하시는 모양이었습니다. ㅎㅎ
초면인 어르신의 양심을 믿어 보기로 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재밌는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에 조금 신이 났지요.
'자라보고 놀란 개' '개가 난생처음 자라를 만나던 날'...사진 제목을 머릿속에 그리며 회사에 도착,
사진을 작업해 올렸습니다.
마감시간 쯤,
인터렉티브팀(제 블로그의 방문자 수를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권한을 가진 조직^^) 후배의 문자,
"선배 똑똑한 네티즌들이 양재천 사진보고 자라가 아니라 붉은귀거북이라고 지적해줬네요.ㅋㅋ"
경향신문의 페친들의 '릴레이 지적'이 있었더군요.
'자라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부터 '사진'에 '백과사전'까지 올린 것을 후배를 통해 확인했지요.
민망했습니다.
양재천 어르신을 이제와 원망해 본들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얄팍한 짐작으로 확인없이 설명을 써서 올렸으니...
설명을 잽싸게 고쳤고, 다음날 신문에는 다행히 '붉은귀거북'이라고 나갔습니다.
신문에까지 '자라'로 나갔더라면 두고두고 민망할 뻔 했던 것이지요.
경향신문 페친, 트위터 팔로워 여러분, '욕'대신 '친절한 지적'에 두고두고 감사하겠습니다.
기자 하나 살리신 겁니다!!! ^^
그나저나 '붉은귀거북'은 양재천으로 무사히 돌아갔을까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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