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 4

먹고 사는 일

시골장터에서 나물을 팔던 상인이 좌판 뒤 저만치 떨어져 앉아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손님이 나물 3000원 어치를 싸달라고 하자, 나물을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나물값을 받으려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손이 앵글 안에 들어왔고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습니다. 햇볕에 그을린 손이 거칠었습니다. 손등의 살갗은 터서 갈라졌습니다. 좀 전까지 나물 다듬던 손은 흙투성입니다. 손톱 사이에 까만 흙이 또렷합니다. 나물값을 받으려 내민 손은 밥 먹던 젓가락을 움켜쥐었습니다. 카메라 모니터로 사진을 확대해 보는 동안, 가슴이 저릿해지고 눈자위가 시큰해졌습니다. 살아가는 일에 대한 강한 은유로 다가왔습니다. 세월이 내리고 억척이 스며든 ‘어머니’의 거친 손을 공경과..

'향수 DNA'

지난 추석에 이어 설을 앞두고 5일장 취재차 다시 전남 신안군을 찾았습니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동일한 장소에 간다는 게 살짝 민망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가야했던 이유가 여럿입니다. 장이 열리는 날이 출장일정과 맞았고, 지난해 B컷(쓰지 못한 사진)이 되고 말았던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 좀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잠깐씩 스쳤던 사람들의 따스함이 끌어당겼던 것이지요. 장날에 맞춰갔지만 사실 5일장 자체를 찍으러 간 것은 아닙니다. 설 대목장에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뭔가 설 앞둔 ‘설렘’과 ‘고향의 정’ 같은 걸 찍어낼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명절의 설렘과 정을 굳이 멀리까지 가서 찍어야 하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골의 정서가 얼마나 가 닿을까?’하는 물음이 없진 않았습니..

사진이야기 2018.02.19

'밀가루는 어디갔나?'

매년 반복되는 취재를 가는 길엔 보통 ‘뭐 좀 다른 거 없을까?’ 생각합니다. 이 생각조차도 버릇처럼 반복되어 온 탓에 딱히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드믑니다. ‘뭐 별거 있겠어?’하고 말지요. 나름의 경험으로 머릿속에 많은 그림을 그려보지만 대게 현장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일쑤입니다. 만약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에 가까운 사진을 매번 찍을 수 있다면 카메라를 놓고 점집을 차려야지요. ^^ 오랜만에 여고 졸업식을 찍었습니다. 졸업장 수여 순서가 되자, 한 명씩 호명된 졸업생들이 단상 중앙에서 졸업장을 받아들고 자리로 걸어갑니다. 단상을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선 담임선생님이 일일이 축하와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식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팔을 벌리고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고, 단체로 거수경례를 하고, 하트를 그..

사진이야기 2018.02.13

'1억 배우'보다 빛나는 '사진기자'

‘누적관객 1억 배우’라는 수식어가 익숙한 ‘배우 오달수’의 인터뷰 사진을 찍었습니다. 영화 의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라운드인터뷰’였습니다. 라운드인터뷰는 4~5개 매체를 묶어서 동시에 진행하는 집단인터븁니다. 인터뷰하려는 매체가 무지 많기 때문이지요. 대게 1시간쯤 진행되는 인터뷰에 앞서 4~5개 매체의 사진기자들도 무리지어 사진을 찍습니다. 10분쯤 시간이 주어집니다. 각기 조금씩 다른 위치에 선 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배우가 시선을 골고루 주는 식이지요. 저같은 경우 대체로 시간에 쫓기며 말없이 찍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관계가 지워지고 셔터소리만 가득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그저 카메라가 되어버렸구나'하는 자괴감도 살짝 들지요. 제 나름의 요구와 표현으로 다시말해 '1대1'로 ..

사진이야기 2018.02.05